영웅과 멍청이 롤러코스터
넥스트의 기계공학 디렉터 켄 헤이븐과 함께 마그네슘 큐브의 산화 피막 표면을 살펴보는 스티브 잡스.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1987년.
팀의 법적 승리 후, 대니얼과 그의 아내 수전은 스탠퍼드 컴퓨팅 담당 디렉터 마이클 카터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원래는 작고 조용한 금요일 저녁 자리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저녁 준비가 한창일 때, 스티브가 소송 종결을 축하하기 위해 대니얼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대니얼이 마이클의 집에 있다는 것을 듣자, 스티브는 자신과 여자친구 티나 레드세도 이 아늑한 모임에 스스로 초대했다. 그러더니 다시 전화해서, 자신의 선불교 스님 고분 오토가와도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마이클은 당시의 아내에게 몸을 돌렸다. “스님이래. 뭘 드시지?” 하고 물었다. 아내는 파테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의 스님은 일반적으로 채식을 하는 일본 선종 전통에 속해 있었다. “이런.” 하며 마이클이 냉장고를 확 열었다.
마이클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날 밤이 끝나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허둥지둥 채소 파에야를 만드는 와중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별빛 아래, 선불교 스님이 황토색의 흘러내리는 가사를 입고 도착해 있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작은 무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
대부분의 불교 전통에서 스님들은 흡연이나 음주 같은 삶의 과잉을 삼가고, 자신을 공경하는 재가신도들과 떨어져 검소하게 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의 스님은 자신만의 깨달음의 법도를 따랐다. “존자”와 같은 종교적 존칭으로 불리기를 거부했고, 자기 때문에 어떤 파티의 전통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이클은 허겁지겁 준비한 것을 차려냈다. 닭고기와 조개를 빼낸 채소 파에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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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과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일본 선에 대한 스티브의 헌신은 그의 디자인 접근 방식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도 반영되었다. 회의에서 스티브는 이미 회사 컴퓨터의 형태를 허공에 양손으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같은 모양을 계속 그려냈으니, 바로 정육면체였다.
스티브는 1985년에 공개된 커넥션 머신이라는 1.5미터짜리 검은 정육면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에 나오는 검은 모노리스처럼 서 있었고, 반투명 패널 사이로 수천 개의 빨간 LED가 거대한 두뇌의 시냅스처럼 깜빡였다. 그 기계는 MIT 컴퓨터과학자 대니 힐리스의 발명품으로, 그는 6만 4,000개의 프로세서를 자신이 “20차원 하이퍼큐브”라 부르는 것으로 연결하여 인공지능을 구축하고자 했다. “언젠가, 어쩌면 곧, 우리는 인간 정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 사고하는 기계를 만들 것입니다”라고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적었다. 디자이너 타미코 티엘과의 협업을 통해 그는 이 수학적 개념을 인상적인 물리적 형상으로 만들었다. 여덟 개의 작은 큐브가 융합되어 하나의 큰 큐브를 이루는 형상이었다. 그것은 미술 작품처럼 보였고, 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지만, 커넥션 머신은 실제로 과학 실험을 위한 슈퍼컴퓨터로 기능했다.
스티브는 조안나 호프먼을 통해 커넥션 머신을 알게 되었고 강박적으로 빠져들었다. 여기에, 컴퓨터의 형태가 단순한 기능과 함께 감성적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증거가 있었다. 정육면체 형태는 법적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애플과의 소송 합의에 따르면 넥스트는 모니터를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이것이 스티브를, 디스플레이 아래가 아니라 옆에 놓이는 완벽한 정육면체 설계로 이끌었다.
스티브는 조안나에게 커넥션 머신을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아내라고 했다. 넥스트 컴퓨터를 그 사람이 디자인해주기를 원했다. 조안나가 타미코의 행적을 추적했을 때, 그녀는 이미 예술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나 있었다.
대신 스티브는 유럽의 한 디자인 회사를 고용하여 완벽한 정육면체를 디자인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화해서 말하더군요. ‘다음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오세요. 우리가 만든 것을 보셔야 합니다. 요구하신 대로 큐브도 만들어봤습니다.’” 스티브가 회고했다. “‘그리고 컴퓨팅의 형태를 영원히 바꿀 훨씬 더 좋은 무언가도 있습니다!’”
스티브는 유럽으로 날아가 “정말 환상적인 빌드업”에 자리했다. 5년 안에 모든 컴퓨터가 이렇게 생길 것이라고 디자이너들은 약속했다.
“그리고 그들이 커튼을 걷어냈죠.” 스티브가 말했다. “그것은 사람 머리 모양이었어요.”
경악한 스티브는 디자이너들을 해고했다.
세 번째 시도로, 그는 애플과 함께 일하던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라는 디자이너에게 연락했다. 하르트무트는 곱슬머리에 굵은 콧수염을 가진 키 큰 남자로, 우상파괴적 회사 프로그 디자인을 운영했다. 초기 컴퓨팅의 차갑고 기술적인 세계에서 하르트무트는 이단아였다. 그의 만트라는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였다. 그는 컴퓨터가 인간적이고 직관적이며, 심지어 관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르트무트는 1982년 애플과 일하기 위해 독일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 협업은 디자인 경연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여섯 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하고, 각각 10만 달러를 주고, 다섯 개의 제품을 디자인해달라고 했습니다.” 스티브가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말했다. 하르트무트와 프로그 디자인의 12인 팀이 경연에서 우승하여 애플과의 계약을 따냈다.
하르트무트는 먼저, 애플의 기존 제품이 투박하고 영감이 없다는 평가를 제시했다. 이에 스티브는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실험할 전권을 주었다. 하르트무트의 첫 번째 성과는 애플 IIc였다. ‘스노 화이트’라 명명된 깔끔한 흰색 미학이 특징이었다. 이 외관은 애플의 다음 세대 기술을 위한 시각적 청사진이 되었다. “하르트무트가 우리를 구해주었고, 세계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라고 스티브는 넥스트에서의 그의 작업에 대해 말했다.
1986년 무렵 하르트무트는 존의 영혼 없는 컴퓨터 제조 방식에 환멸을 느꼈다. 애플과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한 뒤, 그는 넥스트와 새 계약을 체결하고 자기 부엌 테이블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마침내 철학적 깊이를 가진 디자인을 추구할 자유를 느꼈다.
하르트무트는 스티브의 큐브 디자인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자연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형태죠”라고 하르트무트는 말했다. 순수하고, 흠 없고, 추상적이었다. 하르트무트는 어떤 산업 제품이든 그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큐브가 사용자에게 도전하고 사색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
하르트무트는 고대 기하학에서 영감을 얻었다. 훗날 이슬람 건축에서 카바에 반향된 그리스의 입방체 형태였다. 카바는 메카에 있는 신성한 검은 돌 구조물로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향하는 곳이다. 큐브에는 다른, 더 실용적인 장점도 있었다. 스티브는 후에, 여러 형태를 검토한 결과 큐브가 “마더보드, 칩, 하드웨어 기능 같은 것들을 넣는 데 있어서 단연 가장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1.3기가바이트(GB)까지 넣을 수 있고, 내년까지는 3GB도 가능합니다. PC보다 작은 면적의 30센티미터짜리 큐브에 넣을 수 있는 것이 꽤 놀랍습니다.”
하르트무트와 스티브는, 카바와 커넥션 머신처럼 큐브를 검은색으로 만들기로 했다. 학자들을 위해 설계된 기계인 만큼, 검은색이 진지함과 힘, 신비감을 부여할 것이라 느꼈다. 또한 애플의 밝은 흰색과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것이기도 했다.
스티브는 새 컴퓨터를 “학자의 워크스테이션”이라 부르며, 사업 계획서에 이 기계가 “향후 5년간 학습에 혁명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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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로고도 필요했다. 네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스티브에게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는 그들의 작업이 평범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때, 넥스트의 10번째 직원으로 이전에 애플에서 데스크톱 아이콘을 디자인한 인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전 케어가, 스티브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디자이너 폴 랜드에 관한 책과 기사 모음을 건넸다. “가장 명쾌하고 탁월한 작가이자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고 그녀는 후에 회상했다.
폴은 미국 디자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스티브처럼, 로고가 회사의 가치에 대해 본질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단순함은 미학적 이상일 뿐 아니라, 내용이든 형식이든 쉽게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함축합니다”라고 그는 1985년의 유명한 저서 《디자이너의 예술(A Designer’s Art)》에 적었다.
일흔둘의 폴은 다부지고 안경을 쓴 인물로 브루클린 억양에 미술사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 그리고 스파게티에 케첩을 뿌리는 것 같은 괴팍한 습관의 소유자였다. 그는 IBM과 UPS, 웨스팅하우스, ABC의 상징적 로고를 만들었다. 예일 대학교에서 강의했고(예일 대학교 출판부 로고도 그가 디자인했다), 인근 코네티컷주 웨스턴에 자신이 설계한 모더니즘 주택에서 작업했는데, 그 집은 색종이와 테이프로 만든 책과 모형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그가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고들 가운데 몇 개를 만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디자인 작업에 컴퓨터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스티브가 후일 넥스트 기기를 그에게 보내자, 폴은 상자를 열어보고 조수에게 말했다. “이걸로 뭘 하라는 거야? 차고로 가져가.”
폴은 어리석은 사람을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일에서 교수로 있을 때 그의 비평은 너무 잔인하여, 한 학생이 못 참고 그의 귀를 주먹으로 친 적도 있었다. 포드 자동차가 폴에게 로고 재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그는 50명의 임원이 모인 회의실에 들어서서 즉시 물었다. “여기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러고는 나머지 49명이 보고 있는 가운데, 그 한 사람에게만 발표를 했다.
IBM에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할 때, 한 동료가 적은 바에 따르면, 폴은 영국 팀의 결과물이 “IBM에서 만든 최악의 작업으로, 구상도 형편없고 만듦새도 형편없으며, 체계도 없고 그저 싸구려 같다”고 평했다. 한번은 IBM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포트폴리오 리뷰를 마치면서, 폴이 디자이너에게 나이를 물었다. “서른둘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 배울 시간이 많군요”라고 폴은 말했다.
디자이너가 떠난 뒤, 폴은 동료 톰 하디에게 돌아서서 물었다. “제가 그 친구한테 너무 심하게 했나요?”
“그는 비판이 탁월함에 도달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라고 톰은 설명했다. 폴의 생각에는, 잔인할 정도의 정직함이 일종의 친절이었다.
스티브는 폴의 디자인이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열망과도 부합했다. “폴의 작품은 나에게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지적입니다”라고 스티브는 회고했다. “그의 작품 중 어떤 것이든 그 내면을 뜯어보면, 그 안에서 일어났던 지적 문제 해결의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스티브가 처음으로 폴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바로 넥스트 로고 옵션을 몇 가지 제시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닙니다”라고 폴은 말했다. “제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대가를 지불하시게 될 겁니다.”
폴의 가격은 10만 달러였다. 넥스트가 로고를 사용하든 안 하든.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스티브는 동의했다.
“보통 어떤 심벌을 회사 이름과 연결시키는 데 10년이 걸리고 돈도 1억 달러가 듭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스티브는 도전적으로, 처음부터 상징적인 로고를 선택하여 그 대기 기간을 건너뛰고 싶었다. 폴은 코네티컷의 자기 디자인 팀에게, 넥스트 프로젝트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스티브가 위대한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좋은 클라이언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잠재적 걸림돌이 있었다. 폴은 IBM과 독점 계약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와 일하려면 IBM의 허가가 필요했다. 스티브는 IBM CEO 존 에이커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예외를 요청했다.
그 통화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자, 스티브는 부회장 폴 리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며칠간 끈질기게 밀어붙이자, 폴 리조는 스티브에게 저항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실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 장애물이 제거되자 스티브는 폴 랜드와 계약할 수 있었다.
폴은 스티브를 만나기 위해 팰로앨토의 넥스트 사무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날아왔고, 스티브는 폴에게 회사의 비전과 첫 번째 제품인 큐브가 어떻게 보일지를 설명했다.
폴은 주의 깊게 들었다.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리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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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의 거액 로고 지출은 넥스트 내부에 우려를 자아냈다. 애플 소송이 이미 시간과 상당한 자원을 소진시킨 터였다. 이제 회사에는 투자자도, 판매할 제품도 없는데, 스티브가 로고에 여섯 자릿수를 쏟아부은 것이다. 21세기 기준으로도 신생 스타트업이 쓰기에는 큰 금액이었다.
스티브가 자기 돈 700만 달러로 넥스트를 출범시켰기에 회사 재무팀은 그가 애플 시절보다 더 검소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는 심지어 직원들에게 규율과 통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익숙해진 샴페인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CFO 수전 반스는 말했다. 옛 습관이 다시 나타나면서 회사의 자금 소진율이 올라갔다. 호화로운 지출, 집착적 디테일, 비타협적 취향. 스티브는 넥스트 이미지의 모든 면이 완벽하기를 원했다. 뉴욕의 광고 대행사를 원했다. 일류 홍보 회사를 원했다. 회사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과 얼굴, 직책을 기억할 수 있는, 명문대 출신의 리셉션 데스크 안내원도 원했다. 하지만 10만 달러짜리 로고 비용은 그 모든 것의 정점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넥스트 직원들 사이에서 내부 농담을 낳았다. 밀리로고(milli-logo)라는 새로운 비용 측정 단위였다. 1밀리로고는 100달러였다. 고급 컴퓨터 모니터는 20밀리로고 정도, 디자이너 소파? 70이나 80밀리로고. 스티브가 우연히 이 농담을 엿들었는데, 그는 웃지 않았다.
사무실 화장실 타일 줄눈이 잘못된 색으로 시공되었을 때, 스티브는 모든 타일을 다 걷어내고 약 2만 달러를 들여 교체했다. 이 에피소드는 또 다른 단위를 탄생시켰다. 밀리그라우트. 20달러.
스티브의 사치스러움이 완전히 무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사업의 메커니즘을, 거의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꿰뚫고 있었다. 애플에서 그는 현금 흐름을 마스터했다. 고객에게는 빨리 받고 공급업체에게는 천천히 지불하는 것이었다. “저는 누구보다 대차대조표를 잘 만들 수 있어요”라고 그는 수전에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검소함으로 이루어낸다면, 그 공은 절대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넥스트에서 그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수전의 재무 분석가 중 한 명이 이 전환을 포착했다. “재무팀인 우리 모두는 오렌지의 조각들을 보고 있는데, 스티브는 오렌지 전체를 계속 보고 있어요.” 다시 처음부터 만드는 대신, 스티브는 비싸더라도 확실한 기반에 계산된 베팅을 하고 있었다. 수전에 따르면, 그는 넥스트의 잠재력을 너무나 강하게 확신했기에, 더 싼 대안을 거짓된 절약으로 보았다. 폭스바겐을 메르세데스로 바꾸려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메르세데스를 사는 것이 낫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수전의 재정적 감독에 대한 스티브의 개방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책임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그는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기 돈이었으니까.
그의 지출 우선순위는 또한 팀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 타일 시공처럼 일상적인 것에도 회사의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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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 코트 호텔에 틀어박혀 로고 작업에 돌입했다. 스티브는 전화로 자신의 비전을 더 상세히 설명했고, 폴은 들으며 낙서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 며칠간 호텔 메모지와 냅킨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폴은 ‘NEXT’를 원 안에 양식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한번은 검정으로 한번은 흰색으로. X를 강조하여 E와 T에 스며들게 했다. 심지어 X 주위의 공간을 채워 나비넥타이처럼 보이게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허츠 렌터카 브로슈어의 뒷면에, 폴은 ‘NEXT’를 대문자로 큐브 안에 대각선으로 배치했다. 폴에게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느껴졌다. 그는 큐브 그래픽을 가지고 노는 발상 작업을 재미있어 했고, 스티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문제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면 대문자 ‘NEXT’가 ‘EXIT(출구)’라는 단어로 쉽게 오인될 수 있었다. 이상적이지 않았다.
그는 문자 E에 관심을 돌려 연관 개념들을 끄적였다. 교육(education), 전문성(expertise), 탁월함(excellence), 계몽(enlightenment), 심지어 ‘e=mc²’까지. 결국 소문자로 하기로 결정하여 ‘NeXT’를 만들었다.
“소문자 ‘e’는 좋은 대비를 이루고 더 독특하다”고 그는 후에 메모했다. 폴은 해결책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적절한 서체와 색상을 선택할 시간이었다. “서체는 다소 중립적으로 유지하고, 메시지는 어떤 의미 있는 개념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적었다. 그는 강렬한 색상을 선택했다. 글자당 하나씩, 주홍과 노랑, 초록, 그리고 체리 핑크의 인상적인 색조인 세리즈. 회사의 젊은 에너지를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 결과물을 “대비의 연구”라고 묘사했다. 큐브 안의 다채로운 글자들은, 그가 적었듯이, “크리스마스 실의 격식 없고 친근하며 자발적인 분위기와 함께 고무 인장이 풍기는 권위”가 넘쳤다.
폴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의 인쇄소 모스버그사에 교정쇄를 보냈다. 모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결정적인 마지막 변경이 거의 우연히 일어났다. 폴의 조수 밥 번스가 기억하기로, 폴이 봉투 뒷면의 스탬프 형태로 큐브 로고를 무심코 28도 기울여놓은 적이 있었다. 인쇄소 주인의 아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했다. 폴도 동의했고, 그 미묘한 각도가 로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폴이 우연의 산물로 본 것을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는 우주적 운명으로 보았다. 로고의 28도 기울기는 하르트무트가 주장하기로 신비로운 조화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피타고라스 철학에서 28은 “완전수”로, 그 약수들의 합과 같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수가 우주 질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었다.
몇 주 뒤, 폴은 로고를 스티브에게 프레젠테이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다시 날아왔다. 재클링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은 뒤, 폴은 스티브에게 최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의 창작 여정을 추적한 정성스럽게 준비된 소책자를 건넸다. 스티브는 바닥에 앉아 각 페이지를 천천히 읽었다.
소책자에는 폐기된 옵션들과, 최종 디자인으로 이어진 각각의 진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스티브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그의 미소가 커져갔다. 마침내 정확히 28도 기울어진 검은 큐브, 그 안에 ‘NeXT’가 두 줄로 나뉘어 쓰인 최종 디자인에 도달했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 폴을 꼭 껴안았다. 폴은 놀란 표정이었다.
폴은 스티브를 좋아했고 그들의 파트너십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보적이었다. 그가 밥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 친구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는 가혹한 감독관이야.” 밥은 생각했다. ‘오십보백보군.’
폴의 판단은 옳았다. 폴이 스티브를 위한 최종 교정쇄를 마무리할 때, 그는 소책자에서 스티브에게 보여준 정확한 노란색 음영, 팬톤 115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차이를 거의 감지할 수 없었는데, 스티브는 즉시 그걸 알아챘다. “스티브가 그 노란색을 싫어합니다”라고 수전 케어가 폴에게 적었다. “이건 주황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당신이 로고 책에서 사용한 것과 비슷한 ‘진짜 노란색’을 원합니다. (하지만 소소한 자비에라도 감사하세요. 그가 빨강, 초록, 세리즈는 마음에 들어 합니다.)”
스티브의 꼼꼼함은 넥스트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와 브로슈어, 사무실 진입로 표지판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회사 레터헤드에 전화번호와 팩스번호가 정확히 정렬되기를 원했다. 전설적인 제지회사 크레인의 카드지에 인쇄된 회사 명함이 충분히 두껍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요, SJ가 더 두꺼운 것을 원합니다”라고 수전이 폴에게 적었다. “모호크 슈퍼파인에서 나온 것이면 어떨까요?”
넥스트 팀도 스티브의 눈에 띌 것을 대비해 높은 미적 기준을 유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경력에서 가장 공들인 작업이라 불렀으며, 한 줄의 기울기나 캡션의 형태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그들은 내부 문서조차, 어색한 줄 바꿈이나 들쭉날쭉한 여백을 피하기 위해 다시 쓰곤 했다.
그의 강렬함을 통해서든, 그의 취향을 통해서든, 혹은 규율에 대한 강요를 통해서든, 스티브는 직원들이 결코 잊지 못하는 디자인 문화를 창조했다. 많은 이들이 높은 기준과 탁월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자부심을 사랑했다. 수년이 지난 뒤에도 다수는, 넥스트가 자신이 일해본 가장 마법 같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어디도 가까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스티브의 피드백은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려웠으며, 신랄했다.
광고 대행사 프레젠테이션 도중, 스티브는 이미 긴장한 임원들의 말을 자르며 요청했다. 전화번호부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전화번호부가 도착하자 그는 몇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게 여러분에게 듣고 있는 그 헛소리보다 더 재미있는 읽을거리군요.” 방 안이 얼어붙었다.
그는 또한 변덕스러웠다. 넥스트 팀원들은 그것을 ‘영웅-멍청이 롤러코스터’라 불렀다. 그 전에 같은 경험을 했던 애플 출신들로부터 물려받은 표현이었다. 스티브는 어떤 작업을 한참 칭찬해놓고, 다음 순간 돌아서서 방 가득한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었다. 뭐가 맞는 건지 절대 알 수 없었다.
폴은 스티브의 변덕에서 위험 신호를 느꼈다. 스티브가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난 뒤, 이 로고 디자이너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보게, 지금부터 제품이 나올 때까지는 자네 자신이 곧 제품이야. 그러니 사람들에게 잘하게.”
허를 찔린 스티브가 힘없이 대답했다. “글쎄요, 노력해볼게요.”
방 건너편에서 넥스트의 리셉션 데스크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력이란 없습니다, 스티브.” 그녀가 말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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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 팀의 첫 번째 수련회로부터 4개월 뒤, 넥스트 직원들은 두 번째 모임을 위해 버스를 타고 다시 페블비치로 향했다. 스티브는 다시 한번 파도가 보이는 회의실 앞에 섰는데, 이번에는 검은 터틀넥 위에 체크무늬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뒤편 스크린에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빛을 비추었다. 첫 번째 슬라이드를 클릭하자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허니문은 끝났다.’
“우리가 회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그 가운데 4개월은 소송에 시달렸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결론은, 세상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상이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적시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가입니다.”
출시까지 15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팀은 여전히 뚜렷한 제품 비전 하나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자물쇠가 달린 박스에 담아온 엉성한 워크스테이션 시제품 하나가 가진 전부였다. 회사의 힘겨운 디자인 프로세스가 현실의 데드라인과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좌절감이 표면으로 올라왔다. “도대체 우리가 뭘 한다는 건지, 어떤 기능이 있고 이게 무슨 물건인지, 누구한테서도 명확한 그림을 못 받고 있어요”라고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 버드가 수련회 중 어느 시점엔가 말했다.
스티브는 팀 프레젠테이션 도중 폭발했다. “아, 이건 정말 화가 나는군요.” 그는 팀이 시장 출시 일정을 논의하는 동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스티브는 무력감의 결과를 예견했다. 또 한 달이 지나갈 것이고, 그가 우려하기를,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도 개발 중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고 또 한 달, 그 후 또 한 달.
수전이 출시 날짜를 미루자고 제안하자, 스티브가 폭발했다. “아뇨, 일정 미루는 건 잊어버리세요… 그저 출시만 보세요!” 그가 좌절할 때 그는 추해 보였다고 넥스트 직원들은 회상했다.
진짜 전투는, 그가 말했다, 단순했다. 제품이 나오기 전에 돈이 바닥나지 않는 것. 아이러니한 것은, 스티브의 무절제한 지출이 넥스트를 위태로운 길로 이끌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큰소리를 쳤기 때문에, 수전이 말한 바로는 거래업체들이 넥스트의 은행 잔고가 2,000만이나 3,000만 달러는 될 것이라 추정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수련회에서 수전은 지출 문제를 제기했다. 어쩌다 보니 10만 달러가 회사의 표준 지출 단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스티브의 로고가 정상적인 경비의 기준선을 설정한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브는, 팀이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새 장비를 사는 것을 비판했다. “우리가 작은 돈을 아끼는 걸 하지 않는데, 그게 다 쌓입니다… 그 스타트업 정신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두 달 뒤, 재정적 규율에 대한 스티브의 의지는 매우 개인적인 과속 방지턱에 부딪혔다. 애플이, 스티브를 모든 사람이 알게 만드는 데 일조한 바로 그 광고 대행사 차이엇데이를 해고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존 스컬리는 애플의 5,000만 달러 광고 예산을, 오랫동안 흠모해온 격식 있는 대행사 BBDO에 넘겨버렸다.
“스티브는 차이엇데이가 받은 처우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라고 수전은 회상했다. 이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그는 자기 돈 2만 2,000달러를 들여 〈월스트리트 저널〉에 전면 광고를 냈다. 일반 노동자의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스티브의 전면 광고는 빈정대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차이엇데이. 진심으로.” 그리고는 순수한 도발로 전환했다.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이제 ‘건설자’에서 ‘보호자’에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카피는 이어졌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 산업을 창조하고 키운 개인들에게서, 산업을 현 상태로 유지하며 미미한 미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일할 사람들에게로.” 광고는 개인적 메모로 끝났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애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언제나처럼, 스티브의 지출은 그의 우선순위를 반영했다. “넥스트에서 스티브의 동기의 상당 부분은 애플을 까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스컬리를 까는 것이었죠”라고 대니얼이 회고했다.
스티브가 개인적 원한을 갚는 데 자기 돈을 쓰는 동안, 넥스트에 투입한 스티브의 시드 자금 700만 달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수전의 판단으로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가 되었고, 그녀는 빨리 움직이고 싶었다. 절박해지기 전에 자금 조달 계약을 확정하면, 공동 창업자들이 나쁜 조건에, 어쩌면 회사 통제권을 넘기는 나쁜 조건에 내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라고 수전은 설명했다. “등을 벽에 대고 싶지는 않잖아요.”
스티브와 수전이 마침내 투자자 유치 작업에 나섰을 때, 그들이 내건 청사진은 거창했다. 그들은 투자 제안서에 “이례적으로 재능 있고 경험 많은” 팀과 획기적 기술, 그리고 4,000만 달러의 기업 가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은 거의 없었다. 개발된 제품도 없었고, 언급할 만한 매출도 없었다.
일관되게 거절당했다. “한 월스트리트 증권사는 심지어 우리를 뜯어먹듯이 비난하며, 애플이 그를 고소했으니 스티브는 중범죄자라고 비난했습니다”라고 수전은 회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