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회사 야유회에서 비치볼을 차며 미소 짓는 스티브 잡스. 휴식을 즐긴다기보다 격식 없는 상사 역할을 연기하는 듯하다.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 1987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니지먼트사 윌리엄 모리스가 큐브를 사고 싶어 했다. 이 에이전시가 넥스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개월 전 픽사의 단편 〈틴 토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면서였다. 이 작품은 넥스트 기기에 기본 탑재된 소프트웨어 렌더맨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영업 매니저 마크 헤이스는 할리우드 임원들이 스타 파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스티브가 직접 프레젠테이션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1989년 8월의 어느 아침, 스티브가 넥스트 본사 회의실에 걸어 들어왔다. 15분 늦게. 마크가 정장을 입으라고 조언했음에도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실력 있는 에이전트 팀과 딜로이트 앤드 투시의 회계 컨설턴트들이 앉아 있었다.
“여러분의 요구 사항을 살펴봤습니다,” 인사를 나눈 뒤 스티브가 시작했다. “완전히 핵심을 놓치고 있더군요.”
윌리엄 모리스의 컨설턴트들은 넥스트든 애플이든 IBM이든 상관없이, 기본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춘 표준 개인용 컴퓨터를 구매해야 한다고 사양을 정해놓았다. 스티브에게 이 요구 사항은 시작부터 틀린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의 요구 사양에 맞춰 자기 제품을 찌그러뜨리는 것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회의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하더니, 회계사들을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당신들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스티브가 말하는 동안 마크는 불안해졌다. 그들의 권위 있는 거래를 위한 최고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건 아닌가?
하지만 에이전트들은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어요.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직접 확인하며, 그의 진면목을 목격하게 된 것이니까요.”
당시에 윌리엄 모리스는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에이전시는 PC 혁명의 흐름을 제때 타지 못했고, 소속 에이전트들은 까다로운 고객들과 끝없는 통화 및 협상을 이어가며 할리우드 계약의 대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 업계에서는 전화 한 통을 제대로 성사시키기 위해 보통 네다섯 번씩 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이 에이전시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월터 지프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전화를 걸면 상대방이 바쁘고, 그들이 다시 전화를 걸어올 때면 우리가 바쁘기 때문이죠.” 컴퓨터는, 에이전트들이 이처럼 밀려드는 폭발적인 업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평범한 매킨토시나 PC로도 그 업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스티브는 그것들의 화면이 더 조잡하고 픽셀화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가 특별히 큐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컴퓨터의 미적 존재감 때문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그 기계들은 섹시해 보였어요”라고 넥스트 시스템 엔지니어 앨런 데니슨은 회상했다.
넥스트는 이제 대학뿐 아니라 비즈니스랜드를 통해 기업에도 판매하고 있었다. 교육 시장만으로는 규모가 충분하지 않았다. IBM은 11개월 전 넥스트스텝을 라이선스했지만, 소프트웨어가 미완성 상태를 벗어나길 기다리며 아직 아무것도 출하하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 넥스트는 가능한 어디든 매출이 필요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 컴퓨터가, 자기들의 대리인이 자기 예술만큼이나 첨단이기를 기대하는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에게 인상적이기를 바랐다. CNN은 윌리엄 모리스의 클라이언트인 팀 버튼 감독이 자기 직원들을 위해 넥스트 기기 5대를 구입하고 그중 한 대를 영화 촬영장에도 끌고 다녔다고 보도했다.
스티브는 거래를 성사시키기로 결심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래된 탤런트 에이전시와의 제휴는 넥스트에 신뢰성과 화려함을 주입할 것이었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에이전시가 추적하는 셀럽들의 비디오와 소리를 저장하는 특별히 설계된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제안했다.
넥스트는 그 맞춤 소프트웨어를 오클랜드 소재의 소규모 회사 아다메이션에 외주하기로 했다. 형제인 스테판과 윌리엄 애덤스가 설립한 아다메이션은 큐브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다.
스티브는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하기로 했다. “우리는 농담 삼아, 모든 컴퓨터에 100달러 지폐를 감싸 줬다고 했어요. 말 그대로 제품을 팔면 우리가 돈을 잃는 구조였으니까”라고 마크는 말했다. 3주 뒤, 두 회사는 공식적으로 거래를 확정했다. 넥스트의 첫 주요 기업 판매였다. 거래 금액은 250만 달러로 발표되었지만, 실제 가격은 훨씬 낮았다. 첫 30대의 컴퓨터는 2개월 뒤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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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과 윌리엄의 회사는 이제,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탤런트 에이전시를 위한 주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개발하게 되었다. 두 형제는 넥스트 플랫폼에서 작업하면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한 흑인 개발자였다. 당신의 배경보다 제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인종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할 수 없어요.” 스테판이 말했다. 압도적으로 백인 중심인 실리콘밸리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형제는 생존 전략을 개발했다. 인종 이슈가 혁신에 의해 무력화될 정도로 새로운 플랫폼을 찾는 것이었다. 먼저 뛰어들어 뛰어난 코드를 출시하는 것이다. 올드보이 네트워크와 벤처 캐피털이 도착할 때쯤에, 이미 배제하기에는 너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 거래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정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에이전트들은, 소프트웨어 사양을 변경하면서 아다메이션에 많은 요구를 했다. 게다가 에이전시는 에이전트들이 경쟁 에이전시로 이탈하는 것에 대한 편집증적 우려가 있었고, 이는 보안 악몽을 만들었다. 모든 디지털 정보는 각 사람마다 다른 열쇠가 달린 잠긴 금고에 보관되어야 했다.
진짜 문제는 기술 사양보다 더 깊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넥스트의 프로그래머가 직접 자기네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라고 윌리엄은 회상했다. 그들은 스티브의 “스타 견인력”을, 넥스트 자체가 시스템을 구현한다는 화려한 상징성을 원했다.
아다메이션이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성했을 때,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에 직접 전화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직접 해주기를 원합니다.” 넥스트가 프로젝트를 인수했지만, 에이전시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받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넥스트가 계약을 넘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아다메이션의 평판을 보호해주었다. 그는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대외적으로 그들을 단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넥스트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청과, 이후에는 알랭 피넬 부동산이라는 고급 부동산 중개업체 같은 거물급 고객들을 그들에게 계속 소개해주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고객이 되어, 할리우드 전역에 기꺼이 넥스트에 대한 찬사를 퍼뜨렸다. 이 에이전시는 자신들이 진짜 원했던 것, 바로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의 곁에 가까이 머무는 특권’을 얻은 셈이었다. 정작 컴퓨터 그 자체는 그저 아주 비싼 소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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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10일 일요일 밤 10시, 심신이 완전히 지쳐버린 버드는 그의 팀이 주말 내내 매달린 끝에 인쇄 기능이 다운되는 오류를 마침내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월요일 아침까지 다른 곳에서 또 터지는 문제만 없다면, 그들은 드디어 ‘넥스트스텝 1.0’을 정식 출시하게 될 것이었다.
“수프가 됐어요!!!” 마케팅 프로그램 디렉터 줄리 웰치가 수요일에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립턴의 유명한 “수프 다 됐나요?” 광고를 재치 있게 빗댄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준비됐다는 뜻이었다.
거의 1년간의 지연 끝에, 제품 매니저 밥 프레이크가 넥스트의 대표 소프트웨어 첫 번째 완제품 포장본을 비즈니스랜드 임원에게 직접 전달했다. 몇 달 동안 버그투성이 베타 소프트웨어와 씨름해온 고객들을 구원하기 위해, 200개의 업그레이드 패키지가 뒤따를 것이었다. 넥스트 컴퓨터를 산 모든 사람이 마침내, 개발자들이 찰흙을 빚듯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운영체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넥스트 창립 이래 4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어요”라고 대니얼은 팀에게 말했다.
넥스트스텝은 역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기술적 성취였다. 스티브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점은, 그것이 정말 사용하기 쉽다는 사실이었다. 넥스트 사내에서 돌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패러디 텍스트 밈이 그 점을 잘 포착해 보여주었다. 이 밈 속에서 앨리스는 우연히 어느 기술 콘퍼런스장에 굴러떨어지게 되는데, 컴퓨터 회사들의 동물 버전, 코끼리 IBM과 곰 썬, 그리고 스티브를 가리키는 ‘잡스 참새’가 앉아서 끔찍한 맛의 커스터드가 담긴 컵을 돌리며 각각 “잘못된 맛”이라 외치며 옆자리로 넘기고 있었다. 그 커스터드에는, 대부분의 워크스테이션의 토대가 되는, 강력하지만 사용자 친화적이지는 않은 소프트웨어 유닉스(Unix)가 표기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길들이려 노력하던 시스템이었다.
넥스트스텝은 유닉스를 달콤하게 만들려는 스티브의 시도였다.
“무슨 운영체제로 돌아가는지 누가 신경 쓰나요?” 그는 〈맥위크〉에 말했다. “여러분은 매킨토시가 어떤 운영체제로 구동되는지 들어본 적이 결코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그저 일반 대중도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운영체제와 정교한 개발 도구에도 불구하고, 넥스트의 개발자 커뮤니티는 여전히 소규모였고, 이는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라이브러리가 적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스티브는 특유의 허세로 상황을 묘사했다. “모든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넥스트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스티브는 〈맥위크〉에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만 빼고요.”
2주 후, 스티브는 빌 게이츠를 직접 만나 그간의 답답함과 불만들을 쏟아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 두 숙적은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에서 열린 개인용 컴퓨터 산업 패널 토론회에 나란히 초대받았다. 행사 주최 측은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 장치로, IBM의 임원인 짐 카나비노를 무대 위 두 사람의 정중앙 자리에 전략적으로 배치해두었다.
패널의 주제는 폰트 렌더링, 즉 컴퓨터 화면에 서체를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어도비 시스템즈가 글꼴 기술을 독점하여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모두를 분노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두 회사 사이에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애플과 손을 잡았다. 반면, 넥스트는 어도비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무대에서 빌이 애플과의 새 동맹을 발표하자, 스티브가 즉각 공격에 나섰다. “빌, 제 생각에 당신은 이보다 더 최악의 타이밍을 고를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라고 그가 쏘아붙였다.
이에 빌이 맞받아쳤다. “스티브, 우리가 가져온 이 폰트 기술은 당신도 꼭 봐야만 할 겁니다. 훨씬 더 뛰어나니까요.”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스티브와 빌은 패널 내내 “기회만 있으면 독설과 분노 섞인 시선을 주고받았다.” 둘 사이에 앉아 있던 짐은 베이루트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포화 속에 끼인 것이다. 토론 어느 시점엔가 콘퍼런스 후원자인 스튜어트 올솝이 호소했다. “이제 정치적 게임을 그만하고, 우리 사용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 모든 기술을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청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지만, 두 라이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자신들이 멈췄던 그 지점에서 다시 설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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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를 성사시키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영업을 위한 출장을 싫어했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인 회의실과 심포니 무대에서 연극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역 영업 매니저 딕 맨로스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방문은 해볼 만할 것이라 설득했다.
스티브에게는 높은 자리의 한 팬이 있었다. 에릭 셀레스테는 오하이오 주지사 딕 셀레스테의 아들이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와 켄트 주립대학교의 넥스트 컴퓨터 사용자 그룹 회장인 재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넥스트 큐브를 오하이오의 주립대학들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하이오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10월 17일, 스티브는 콘퍼런스 참석차 머물고 있던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가 미시간 대학교 총장 자택에서 열린 저녁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월드 시리즈 3차전 경기 도중 북부 캘리포니아에 규모 6.9의 강진이 강타했다. 스티브는 오하이오행 일정을 연기하고,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넥스트 팀과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현지 주민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느라 발신 통화가 몰리는 바람에 전화선은 온통 먹통 상태였다. 지진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다행히 넥스트 사옥이나 자산에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스티브가 묵기로 한 콜럼버스의 주지사 관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였다. 에릭은 스티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저녁 내내 진입로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스티브가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지만, 몇 시간 뒤 셀레스테의 고양이가 그의 위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
스티브는 아침에 익숙하지 않은 영토에서 눈을 떴다. 가족의 아침 식탁이었다. 셀레스테 가정은, 에릭의 말로, “평소처럼 꽤 혼란스러운 무리”였다. “정치와 논쟁, 내부 농담으로 가득한” 여섯 명의 아이들. 주지사의 아이들은 유명인 손님에 익숙했고 연예인에 면역이 있었다. 그들은 가족 가운데 유일한 컴퓨터광인 에릭이 자신의 영웅 앞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동안, 논쟁하고 욕설을 했다.
철저하게 통제된 고객 관계에만 익숙했던 한 남자에게, 그 상황은 하나의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여기, 아침 식사를 하며 서로 오렌지 주스를 건네고, 격식 없이 투덜거리며 논쟁을 벌이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식탁을 서로 간의 유대감을 쌓는 공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서로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에릭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 온전한 ‘우리 가족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죠.”
견과류와 과일을 먹으며 스티브는 그저 그 모든 것을 흡수했다. “자신만의 매우 엄격한 규칙을 따르면서, 새처럼 먹으면서”라고 에릭은 회상했다. 그러고 나서 딕과 그의 상사 밥 롱고가 리무진을 타고 스티브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설 장소로 데리러 왔다.
차에 타자마자 스티브가 밥을 붙잡고 말했다. “밥, 방금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식탁에 둘러앉아 정치를 이야기하고 아침을 먹는 가족과 함께했어요. 밥, 당신은 아내를 어떻게 만났어요?”
딕은 스티브가 배우자를 찾고 가정을 꾸리는 방법에 대해 세부 사항을 캐물으며 머릿속이 돌아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보면 즉시 그런 종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고 싶어 했어요”라고 딕은 말했다.
스티브는 최근 여자친구 티나 레드세에게 청혼했지만, 그녀가 그를 거절한 상태였다. 티나와 스티브는 끊임없이 다투었다. 동료들은 그녀를, 아름답지만 어딘가 그에게 맞지 않는 “백설공주”라 묘사했다. 그녀는 그의 미래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이 ‘정상으로부터의 시선’ 강연 시리즈의 일환으로 스티브를 초대했다. 스티브를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에 협소한 강의실은 금세 찼다. 교수들이 통로에 앉은 학생들에게 통로를 비워달라고 하자, 한 여성이 스티브의 수행원을 위해 예약된 앞줄 빈자리로 빠르게 옮겨 앉으며 그의 눈에 띄었다.
로렌 파월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MBA 학생. 그녀는 후에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친구가 자기를 행사에 끌고 갔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넥스트에서 일하고 있었고, 제게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전 별로 열광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열광적이었기에 같이 갔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스티브가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다 사고의 흐름을 잃었다. “그녀를 응시하면서 제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가 회상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던 중간에 할 말을 잊어버렸거든요.”
관객석에서 지켜보던 넥스트의 젊은 영업사원 데이비드 베르트하이머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가 집중력을 잃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데이비드는 말했다. “무대에 오르면 그는 가장 집중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거든요.”
강연 후, 스티브는 주차장에서 로렌을 찾아 그 주말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녀는 좋다고 답하고 자기 전화번호를 주었다. 이어 스티브는 차로 걸어가 기다리고 있던 넥스트 팀에게 돌아갔다. 그날 저녁 시간에는 학술 자문위원회 만찬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를 멈추게 했다. “차로 걸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만약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중요한 고객들과 저녁을 먹겠는가, 아니면 그녀와 먹겠는가?’” 스티브는 한 이메일에 적었다.
그는 로렌의 차로 달려가 물었다. “오늘 밤 저녁 어때요?”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스티브는 자신을 데리러 온 차로 돌아와 말했다. “전 오늘 회의에 안 들어갑니다.”
“예? 뭐라고요?” 데이비드가 물었다.
“응, 그냥 기분이 내키지 않아요. 그냥 안 갈 겁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신 스티브와 로렌은, 세인트 마이클스 앨리라는 레스토랑에서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렌은 뉴저지주 웨스트밀퍼드에서 자랐다. 숲과 접한 집이었다. 그녀가 겨우 세 살이었을 때, 해병대 비행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공중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학교에 갔는데 사람들이, 제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내 안에 상실이 있다는 것을”이라고 그녀는 〈보그〉에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불행한 재혼을 했으며, 로렌은 일찍부터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두 개의 학위를 받기 위해 장학금을 받는 법, 월스트리트로 가는 법 등. 스탠퍼드에서 MBA를 시작할 무렵, 그녀는 이미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에서 경력을 쌓은 뒤였다. 한 동료가 〈보그〉에 표현한 대로, 그녀는 “노동자 계급의 딸이며,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티브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을 바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계획할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