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자리
스티브 잡스는 1986년 조지 루카스로부터 픽사를 인수해 아카데미상 수상 스튜디오로 키워냈다.
1995년 봄, 스티브는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마케터들과 함께 하며 그의 안식을 찾았다. 그는 친구이자 넥스트의 전 마케팅 총지휘자였던 폴 바이스를 자기 메르세데스 세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나갔다.
스티브가 카세트테이프를 대시보드에 밀어 넣고 재생을 눌렀다. 경쾌한 재즈 앙상블이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팝 가수 랜디 뉴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에겐 내가 있잖아/너에겐 내가 있잖아(You've got a friend in me).”
“이거 어떻게 생각해?” 이것이 〈토이 스토리〉의 주제곡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스티브가 물었다.
“잘 모르겠는데”라고 폴이 말했다.
그때 폴에게 그 질문의 진정한 의미가 떠올랐다. 픽사든, 넥스트든, 애플이든, 스티브의 모든 작업에는 그 모두를 관통하는 더 깊은 비전이 있었다. 그가 신경 쓴 것은 단순히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기술도 나쁜 이야기를 좋은 이야기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스티브가 후일 회고했다.
“스티브가 정말 생각하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라고 폴은 말했다. “넥스트는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훌륭한 스토리텔링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 그것이 그의 가장 강력한 통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토이 스토리〉는 이 통찰의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그것은 픽사 팀이 4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우디 한 캐릭터에만 723개의 제어점(애니메이터가 인형의 줄처럼 잡아당기는 보이지 않는 디지털 관절)이 필요했다. 한 점을 당기면 그의 눈썹이 올라갔고, 다른 점을 조정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애니메이션 나무는 1만 개의 잎사귀를 가졌다. 81분 분량의 영화에는 11만 4,000개의 프레임이 들어 있었고, 회사의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렌더맨에서 생성된 파일은 34테라바이트에 달했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 정도 규모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예술적 창의성과 컴퓨터 과학 기술의 훈련일 뿐 아니라,” 스티브가 말했다,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에서 매우 보기 드문 규모와 복잡성을 관리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스티브의 동료들은 이 성취 뒤에 숨겨진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넥스트에서 그는 모든 세부 사항과 모든 결정에 집착했고, 그 결과 회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픽사에서는 매우 다른 역할을 맡았다. 1990년 하드웨어 부문을 접은 뒤, 그는 회사의 생존을 〈트론〉의 획기적인 컴퓨터 그래픽스를 만든 애니메이터 존 라세터에게 맡겼다.
존과 픽사 사장 에드 캣멀은 효과적으로 스티브를 창작 과정에서 배제시켰다. 회사의 창작 의사결정자들의 브레인 트러스트 미팅에 참석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로 인해 존과 그의 팀이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스티브는 비즈니스 측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티브로서는 큰 결정을 한 셈이었다. “스티브는 영화 만들기가 자기 장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고 도미니크는 설명했다.
스티브와 에드, 존은 1991년 7월 디즈니와 주요 영화 세 편의 계약을 체결했다. 스티브가 재정 부분의 협상을 진행하고, 창작적 사안은 총괄 프로듀서인 존에게 맡겼다. 스티브가 루카스필름으로부터 회사를 산 후 픽사 팀이 그의 리더십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존은 다른 방식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티브는, 이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픽사의 창작 인재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스티브는 픽사의 명목상 CEO로 남아 있었다. “두 회사의 CEO를 하는 것이 좀 이상했다고 느꼈던 기억이 나요. 그 때문에 욕을 먹기도 했고요”라고 폴은 말했다.
막후에서는 두 회사의 경계가 가장자리에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넥스트 이사회실에 나타날 때, 때때로 픽사와 디즈니의 창작자들을 데려와 〈토이 스토리〉의 스토리보드를 작업했다. 애니메이션 장난감 그림이 야심찬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의 회의실에 걸려 있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1995년 8월, 스티브는 컴퓨터 그래픽스 전문가들의 연례 모임인 시그래프의 무대에 올라 〈토이 스토리〉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청중은 그들이 알아온 진지한 소프트웨어 리더와는 다른 스티브를 보았다. 그는 내면에서 빛이 나는 듯 보였고, 영화의 역사를 만드는 것에 대한 흥분으로 들뜬 소년 같았다.
“이 놀라운 발명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라고 그는 청중에게 말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 영화가 나온 지 100년 뒤, 그리고 월트 디즈니가 〈백설공주〉로 컬러 영화에 도박을 건 후 수십 년 뒤, 픽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영화의 다음 진화를 이룩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이 스토리〉는 최초의 완전한 컴퓨터 생성 장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청중에게 선언했다.
픽사는 스티브가 다시 한번 우주에 흠집을 남기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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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원래의 열정을 되찾으면서, 스티브의 동료들은 그가 다른 면에서도 성숙해가는 것을 목격했다.
1996년 3월, 회사의 부법률 고문인 크리스 팔레르모는 모든 부모에게 최악의 악몽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크리스는 9개월 전 부법률 고문으로 넥스트에 합류했다. 그는 이전에 브라운 앤드 베인 로펌의 잭 브라운 밑에서 일했었는데, 그 로펌은 넥스트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애플을 공격적으로 대리했던 곳이었다.
면접에서 스티브가 그의 이력서를 보고 물었다. “그래서, 왜 그 멍청이 같은 잭 밑에서 일했어요?”
크리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그곳을 떠날 만큼 좋은 판단력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부터 둘은 호흡이 맞았다.
그러다, 크리스의 가족에 비극이 닥쳤다. 뉴올리언스에서 음주운전자가 그의 두 어린 딸과 베이비시터를 쳤다. 도미니크가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즉시 스티브에게 전화했다.
도미니크에 따르면, 스티브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10분 안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다시 전화했을 때는, 모든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다. “스탠퍼드에 그 애들을 돌볼 의료팀을 준비시켰어요”라고 스티브가 말했다. “비행기를 보내서 가족 전부를 데려올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은,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이것은 이례적인 호의였다. 크리스는 입사한 지 겨우 9개월이었고, 스티브의 세 단계 아래 직급이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일반 직원 수준”에 불과했다.
크리스는 의료 후송을 수락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대륙 횡단 비행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응급한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제안은, 새롭게 발견된 스티브의 관대함의 정신을 드러냈다. 도미니크는, 그 행동과 스티브가 비밀을 지켜달라는 요구에 감동받았다. “아마도 자기 이미지에 그러한 면모가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고 그는 말했다.
두 아이 모두 살았다. 크리스의 큰딸은 툴레인 대학교에서 6시간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2주 뒤, 상태가 안정되고 마침내 캘리포니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티브가 그런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크리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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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의 북부에서는 넥스트 영업사원 짐 다이아몬드의 처형의 친척이 치명적인 유방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스물일곱 살의 이 여성에게는 몇 주, 어쩌면 며칠이 남아 있었고,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두 살 된 딸과 함께 〈토이 스토리〉를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 스티브는 거절했다. 영화가 아직 개봉 전이었고, 내용이 유출되어 개봉에 차질이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며칠 뒤, 스티브는 마음을 바꾸고 뉴욕으로 팀을 보냈다. 고급 승용차가 그 여성의 집 앞에 도착했고, 비디오테이프와 〈토이 스토리〉 굿즈를 든 픽사 직원 두 명이 내렸다.
젊은 엄마는 거실의 환자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픽사 직원들이 우디와 버즈 장난감을 설치하고 방을 개인 시사회장으로 꾸몄다. 어린 딸이 엄마와 장난감과 함께 침대에 올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직원들은 비디오테이프를 챙겨 차에 올라 사라졌다. 영화의 비밀은 지켜졌고, 딸은 그날 밤 우디를 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닷새 뒤,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에게는 그런 연민이 있었습니다”라고 짐은 말했다.
에드는 후에, 이것이 스티브에게는 드문 행동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픽사 직원이 심각한 병에 걸리면, 스티브는 병원을 방문하고 최고의 전문의를 연결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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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추수감사절 전야, 디즈니와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비평가와 대중의 찬사 속에 개봉했다. 영화는 곧 미국 대중문화의 반열에 올라갔다. 이는 단순한 혁신가가 아닌 문화 창조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는 스티브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인정이었다. 미국 영화 협회는 후에 이 작품을 미국 역대 최고의 영화 99위에 올렸다.
〈토이 스토리〉의 극장 개봉 6일 뒤, 전 세계에서 3억 7,300만 달러 흥행이 예상되는 가운데, 픽사는 주식 시장에 상장할 준비가 되었다. IPO는 3개월 전부터 계획되었지만, 그 타이밍은 의도적으로 영화 개봉에 맞춰졌다. 투자자들이 회사에 자금을 대기 전에, 픽사로서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강력한 첫 주말 흥행 실적은 픽사의 투자자들에게 회사 상장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스티브와 픽사 팀은 투자 은행 로버트슨 스티븐스의 사무실에 모였다. 그리고 오전 9시 30분, 그들은 나스닥에서 픽사의 690만 주 거래 시작을 알리는 개장 벨을 지켜보았다.
픽사에는 수년 전 애플의 IPO 때 설정한 것과 같은 가격인 주당 22달러가 매겨져 있었다. 에드에 따르면 가격이 같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스티브는 기억하지 못했다. 넥스트와 픽사 모두에서의 끝없는 고군분투 끝에, IPO는 마침내 그 노력의 정당성을 입증해주었다.
한 시간 안에, 픽사 주가는 49달러로 로켓처럼 치솟았고, 주당 39달러로 마감했다.
스티브는 자리를 비우고 은행의 옆방에서 전화를 들었다. 브렌트 슐렌더와 릭 테첼리 기자가 그들의 책 《비커밍 스티브 잡스》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이러했다.
“여보세요, 래리?” 스티브가 물었다. 래리 엘리슨이었다.
“제가, 해냈어요”라고 스티브가 말했다. 픽사의 주가가 주당 39달러로 마감되면서, 픽사의 스티브 지분 가치는 이제 약 12억 달러가 된 것이다. 그는 방금 억만장자가 되었다.
이 역전의 규모는 에드에게 경이로웠다. 1986년, 스티브는 조지 루카스에게서 픽사를 겨우 500만 달러에 인수했고, 이것은 좋은 거래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9년간, 픽사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고전하는 동안, 스티브는 계속 수표를 써서 자금을 댔다. IPO 직전까지, 그가 쏟아부은 돈은 총 5,4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에드는 “스티브 순자산의 상당 부분”이라고 했다.
그가 그 힘든 시절에 쓴 수표 하나하나는 자기 팀에 대한 신뢰의 행위였다. 이제, 단 하루 만에, 그 신뢰가 그의 가장 대담한 예상을 뛰어넘어 보상받은 것이다.
방에 있던 동료들은 그의 목소리에서 거의 안도감에 가까운 무언가를 들었다. 항상 돈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공언하던 남자가, 10억 달러 자산가 클럽에 입성했음을 알리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티브가 이 돈을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점수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IPO가 마침내 스티브에게 레버리지를 준 것이다. 그는 픽사에서 팀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강력한 위치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
에드는 스티브가, 이 순간까지 이어진 4년간 “상당히 중대한 변화”를 겪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기간은 1991년, 로렌과의 결혼, 리드의 탄생이라는 개인적 이정표로 시작되었다.
스티브는 또한 타이밍에 대한 힘든 교훈도 배우고 있었다. 그의 비전은 종종 현실보다 앞서 나갔다. 넥스트에서 그는 큐브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포함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기술적으로는 플로피가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옳았지만, 당시로서는 상업적인 관점에서 재앙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컴퓨터를 가진 거의 모든 사람이 플로피 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었다. “곡선을 너무 많이 앞서갈 수 없었다”고 에드는 관찰했다. “스티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컴퓨터 산업은 너무 일찍 옳았던 회사들의 잔해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픽사의 IPO를 통해 스티브는 마침내 타이밍의 교훈을 깨달았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주류 관객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토이 스토리〉가 시장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이번에, 스티브는 곡선보다 너무 멀리 앞서 뛰지 않았다. 곡선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정확히 거기에 올라탔다.
파트너십 내내, 에드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했던 폭발적 대립을 피하는, 스티브와 일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개발했다. “저는 스티브와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논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라고 에드는 말했다. 비결은 스티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었다. “스티브는 자신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유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는 무언가의 토대가 될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어요.”
에드는 한번 스티브와 3개월에 걸친 의견 불일치를 겪었다. “그가 그냥 틀렸었습니다”고 에드는 말했다. “그가 강력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나보다 더 빨리 말하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옳다는 것은 아니었죠.” 에드는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 자기 논거를 제시하고 기다렸다. 결국 스티브가 말하곤 했다. “아, 당신 말이 맞아요.” 그리고 그걸로 토론은 끝났다.
변화는 실제적이고 지속적이었다. “95년 말까지 스티브와 함께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의 여생 동안 함께했습니다”라고 에드는 관찰했다. 1995년 11월쯤에, 스티브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따르고 싶어 하는 종류의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겸손해졌다. “재능 있는 직원들을 올바르게 대우하지 않으면, 10분 안에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잖아요, 맞죠?”라고 그는 후에 인터뷰어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 권력의 위계가 뒤바뀌어, CEO가 실제로는 맨 아래 있게 돼요. 그래서 저는 이 사람들 대부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는 건 그들이니까요.”
에드는 스티브의 궤적을 “영웅의 여정에 더 가까운 것”으로 회고했다. “그는 돌아왔고, 경험과 실수에서 배웠습니다.” 1995년 11월에 나타난 남자는 달랐다. 여전히 까다롭고, 여전히 비전가였지만, 실패와 성공을 대등한 가치로 여기며 단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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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후, 스티브는 래리 엘리슨과 함께 하와이에 갔다. 대화는 다시 애플의 인수 가능성으로 돌아갔다. 스티브가 이전에, 억지스럽게 복귀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이를 거부했지만, 지금은 적어도 돈이 있었다. 래리의 자산은 47억 달러로 평가되었고 스티브에게는 픽사에서의 횡재가 있었다. 처음으로, 두 사람의 돈을 합치면 현실적으로 애플 인수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스티브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주저함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스티브는 인수 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전 넥스트 CFO였던 수전 반스를 고용했다. “그와 래리는 애플을 인수한 뒤 비상장 회사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어요”라고 수전은 설명했다. “적대적 인수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위임장 대결 사례들을 조사하고, 이사회 구조를 검토하고, 주주 간 대결의 메커니즘을 도식화했다.
“스티브는 이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고 수전은 회상했다. “그는 애플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보며, 회사가 무너지기 전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1985년에 애플에서 쫓겨나갈 때의 스티브 잡스였다면, 공격을 감행하고 강제로 복귀할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10년간의 고군분투가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래리와 지난번에 인수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저는 적대적 인수 타입의 사람이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라고 그는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그들이 저에게 돌아와 달라고 했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제록스 파크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가져오고, 대담한 행보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 올렸던 기업 사냥꾼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발견한 것이다. 힘으로 애플을 장악하는 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거기 속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며, 그는 영원히 기다리는 편을 택했다.
결국 그는 넥스트에 남아 더 많은 웹오브젝트를 팔기로 했다. 그가 겪었던 추락으로부터의 구원을 원했지만, 자기 방식으로 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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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 중에서, 스티브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큰 사고와 창조적 반항, 기업적 안주에 대한 혐오와 같은 가치를 체화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폴 랜드였다.
1996년 3월, 두 사람이 넥스트 로고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한 지는 10년이 지나 있었다. 스티브와 폴은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폴이 예술과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다룬 논고인 차기 저서 《폴 랜드, 미학적 경험: 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를 곧 출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정을 되살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스티브는 “안녕하세요(Howdy)”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작성했다.
폴에게,
친구로부터 방금 당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어, 바로 이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과 미리언 모두 잘 지내고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두 분이 집에서 차갑고 황량한 코네티컷 들판을 창밖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8월에 딸 에린이 태어나면서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에린은 기쁨 그 자체이고, 이 모든 기적이 가끔 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리드는 네 살 반이고, 놀라울 정도로 호기심 많은 아이입니다. 리사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하버드에 갑니다. 리사가 곧 둥지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리드와 에린도 곧 떠날 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찰나예요…
폴, 당신이 디자인한 넥스트 로고는 우리 회사를 잘 정의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아직 로고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여전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몇몇 신제품들이 매우 유망해 보여서, 어쩌면 내년 이맘때쯤이면 우리가 마침내 로고에 걸맞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
폴은 옛 친구 스티브의 소식에 기뻐하며 답장을 보냈다.
우리 둘 다 건강해요. 이제 손주가 둘이에요. 하나는 컴퓨터를 붙잡고 놀고, 다른 하나는 길을 막는 모든 것을 붙잡고 놀아요.
폴이 자기 책 한 권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스티브는 수락하며 답장을 보냈다.
사람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자신의 모든 비밀과 특별한 관점을 다 나눠 주기로 결심하나 봅니다,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저는 당신이 적어도 150살까지 살 거라고 확신하므로, 경쟁자들에게 비밀을 공개하는 그 나눔을 너무 일찍 시작한 게 아닌지요…
8개월 뒤, 1996년 11월, 폴은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처음에 궤양으로 오진되었던 것이었다.
여든한 살에,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