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인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참혹한 비극을 마주했다. 9·11테러는 기존 국가 안보 시스템이 새로운 위협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발간된 9·11 위원회 보고서가 지적했듯, 이 재앙은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가 ‘연결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었다. 당시 CIA, FBI, NSA 등 정보기관들은 테러범의 입국 기록이나 비행 훈련 사실 같은 결정적인 ‘점Dot’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연결해 하나의 ‘선Line’으로 잇지 못했다. 이 뼈아픈 교훈, 즉 ‘연결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기업이 바로 팔란티어다.
이 장에서는 9·11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팔란티어가 어떻게 가장 어둡고 복잡한 대테러 작전에서 시작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생산 라인과 공급망을 움직이는 핵심 운영체제로 진화했는지 그 여정을 추적한다. 이는 단순히 ‘정부용 소프트웨어GovTech’가 ‘기업용 소프트웨어Enterprise Tech’로 확장된 표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피터 틸이라는 자유지상주의 사상가와 알렉스 카프라는 네오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의 이질적인 결합이 어떻게 ‘데이터를 통한 현실의 재구성’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목표로 수렴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던 기술이 어떻게 에어버스의 비행기를 만드는지,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던 ‘존재의 지도’가 어떻게 비즈니스의 위기를 해결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온톨로지라는 개념이 왜 팔란티어의 철학이자 최고의 도구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팔란티어 로고
스파이 기술의 양지화: CIA의 비밀 병기가 기업의 심장이 되기까지
팔란티어의 창립은 9·11 테러가 남긴 ‘데이터 단절의 교훈’에 대한 실리콘밸리의 응답이었다. 페이팔PayPal 창업자 피터 틸은 자사의 결제 시스템에서 금융 사기 거래를 잡아내던 기술이 테러리스트를 찾는 데도 적용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9·11 테러가 본질적으로 페이팔의 사기꾼들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데이터 분석 문제임을 직감했다. 국경을 넘나들며 익명으로 돈을 주고받는 테러 조직의 패턴이 금융 범죄 네트워크의 패턴과 구조적으로 같았기 때문이다. 틸은 이 기술이 미국의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틸의 기술적 확신은 알렉스 카프라는 예상치 못한 인물과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이들의 만남은 독특하다. 자유지상주의자 피터 틸과 네오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렉스 카프, 정반대 성향의 두 사람이 ‘기술로 서구 문명을 방어한다’는 목표 아래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틸은 기술이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고, 카프는 강력한 기술을 윤리적이고 투명하게 통제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의 결합은 기술의 힘으로 문명을 방어한다는 사상적 동맹에 가까웠다.
알렉스 카프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대테러 작전 플랫폼 '고담'이다. 특히 고담은 오사마 빈 라덴 추적 작전에 사용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팔란티어는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지만 부인하지도 않았다). 당시 미 정보 당국은(CIA) 10년 가까이 빈 라덴의 행방을 쫓았지만, 수집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 문제는 데이터의 부족이 아니었다. 드론이 촬영한 페타바이트급의 항공 영상, 감청된 수백만 건의 통화 기록, 현장 요원들이 수집한 첩보 보고서, 그리고 전 세계 금융망을 흐르는 의심스러운 자금 이체 내역 등 데이터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다른 포맷과 저장소에 격리된 채 거대한 ‘소음’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팔란티어의 고담은 이 흩어진 데이터들을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로 통합했다. 고담은 먼저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비정형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객체로 정의했다. 예를 들어 이라크의 알카에다 은신처에서 발견된 쪽지의 ‘부분적인 전화번호’, 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포착된 ‘흰색 SUV 차량’의 위성 사진, 그리고 런던의 한 은행에서 발생한 ‘익명의 송금 기록’을 각 노드Node로 생성하고, 이들 사이의 숨겨진 연결선을 시각화했다.
고담은 빈 라덴의 연락책으로 알려진 ‘아부 아흐메드 알 쿠와이티Abu Ahmed al-Kuwaiti’라는 인물의 미약한 신호를 포착했다. 나아가 고담은 수천만 건의 데이터 속에서 알 쿠와이티가 사용하는 특정 전화번호의 패턴과 그의 차량 이동 경로가 빈 라덴의 예상 은신처와 겹치는 ‘이상 신호’를 찾아냈다. 고담의 위력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위치한 의문의 저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 저택에는 전화선도,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으며, 쓰레기를 밖으로 배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소각하는 등 일반적인 주거지와는 판이한 생활 패턴을 보였다. 고담은 오히려 이런 ‘데이터의 부재’가 고도로 은폐된 고가치 표적High Value Target의 단서임을 포착해냈다.
결국 고담은 분석가를 대체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제공했다. 분석가들은 고담이 그린 직관적 관계망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수많은 데이터 사일로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는 인간 분석가의 직관을 데이터 위에서 춤추게 만드는 ‘인간-기계 공생’의 정점이었다. 인간의 ‘직관’과 기계의 ‘연산력’이 결합했을 때, 모래사장 속의 바늘을 찾는 불가능한 미션이 논리적인 ‘추론’ 게임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성공은 특수부대의 무력 이전에, 흩어진 데이터의 점들을 연결해보이지 않는 적을 드러낸 ‘온톨로지’의 승리였다.
팔란티어의 두 번째 도약은 이 전장의 기술을 ‘기업’의 영역으로 이식하는 결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정부용 플랫폼 고담에 이어 기업용 플랫폼이자 핵심 제품인 '파운드리Foundry'를 선보였다. 표면적으로 고담은 테러리스트, 무기, 은신처, 자금책 등 전장의 객체들을 다루고, 파운드리는 공장, 부품, 공급사, 재고 등 비즈니스의 객체들을 다룬다. 즉, 분석의 '대상'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두 플랫폼의 작동 원리는 완벽하게 같다. 두 플랫폼 모두 '복잡성이라는 안개 속에서 최적의 의사결정 경로를 찾아내는 운영체제'라는 본질을 공유한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과정이 수만 개의 파편화된 첩보 속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찾는 일이었다면, 에어버스의 A350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는 것 또한 수만 개의 부품 데이터 속에서 '생산 지연의 원인'이라는 신호를 찾는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환은 현대의 시대적 요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21세기 글로벌 기업 환경은 마치 전쟁터와도 같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의 붕괴, 세계화의 붕괴와 지역적 다극화,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의 급등,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 등은 과거의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장의 안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기업들이 수십 년간 의존해 온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툴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무력하다. 이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과거의 데이터를 요약하고 정적인 보고서를 생성할 뿐, 급변하는 실시간 변수에 대응하여 미래의 위험을 예측하거나 즉각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생존 경쟁에 내몰린 기업들은 과거의 '기록 시스템'이 아닌,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즉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생존 도구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에어버스 A350 생산 라인에 도입된 ‘파운드리’ 사례는 전장의 기술이 어떻게 제조 현장의 난제를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사례다. 항공기 제조, 특히 A350과 같은 최첨단 기종의 양산은 인류가 수행하는 공학적 과제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영역에 속한다. 비행기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250만 개에서 400만 개에 달하며, 이들은 전 세계 30개국, 4,000여 개의 공급업체로부터 조달된다. 과거의 에어버스는 설계 도면상의 부품과 실제 납품된 부품의 사양이 미세하게 다르거나, 특정 공급사의 파업으로 나사 하나가 부족해질 때마다, 거대한 조립 라인 전체가 멈춰 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문제는 이 멈춤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엔지니어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설계팀, 구매팀, 생산팀의 엑셀 시트와 이메일 수천 통을 뒤져야 했고, 이들이 ‘데이터의 늪’에서 며칠 밤낮을 헤매는 동안 납기 지연에 따른 천문학적인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팔란티어의 파운드리는 이 혼돈 속에 투입되어 에어버스의 생산 라인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지능형 유기체로 변모시켰다. 팔란티어와 에어버스는 기존의 SAP나 오라클 같은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을 걷어내는 무리수를 두는 대신, 그 위에 ‘스카이와이즈Skywise’라 불리는 거대한 디지털 트윈 계층을 덮어씌웠다. 이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공장의 3D 모델을 보여주는 시각적 도구가 아니었다. 파운드리는 ‘3번 격납고의 왼쪽 날개 조립 공정’이라는 물리적 실체와 ‘납품 지연된 티타늄 볼트’라는 데이터 객체, 그리고 ‘볼트가 없으면 날개를 동체에 결합할 수 없다’라는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연결했다. 그것은 항공기의 모든 부품, 공정, 작업자, 그리고 공급망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동기화하는 ‘살아있는 온톨로지’였다.
이 시스템의 진가는 돌발 상황에서 발휘되었다. 가령 독일 함부르크 공장에서 특정 좌석 부품의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과거라면 이 사실이 프랑스 툴루즈의 최종 조립 라인에 전달되고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수일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파운드리 도입 후, 시스템은 결함이 입력되는 즉시 전 세계 에어버스 공장에 있는 해당 부품의 재고를 0.1초 만에 스캔한다. 그리고 AI는 ‘지금 스페인 공장에 여유 부품이 있으니 이를 툴루즈로 항공 배송하고, 그동안 툴루즈 라인에서는 좌석 조립 순서를 뒤로 미루고 배선 작업부터 먼저 진행하라’는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현장 작업자가 태블릿으로 이 지시를 받아 실행하면서, 멈춰 있던 에어버스의 생산 라인은 다시 돌아간다. 생산 속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A350의 생산량은 경쟁사보다 훨씬 가파른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는 테러리스트의 은신처를 예측하던 고담의 메커니즘이 기업의 병목 현상과 문제를 예측하고 제거하는 ‘파운드리’라는 디지털 중추신경계로 완벽하게 진화했음을 증명한다.
팔란티어가 구축해 온 핵심 무기이자 경쟁사들이 결코 단기간에 따라 할 수 없는 해자Moat는 바로 온톨로지가 그린 이 '존재의 지도' 자체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베이스나 데이터 레이크가 아니라, 현실 세계를 소프트웨어적으로 완벽하게 재구성한 '디지털 지도'다. 팔란티어는 지난 20년간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지형지물과 부족部族 관계에서부터 제약 회사의 임상시험 데이터와 화학 분자 구조, 그리고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과 컨베이어 벨트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다양한 작동 방식을 디지털 객체로 정의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지난한 작업을 수행해왔다. 이 존재의 지도 위에서는 ‘테러리스트 A가 자금책 B와 특정 시간 T에 접촉했다’는 사실이나 ‘부품 C의 납품 지연이 공장 D의 가동을 10시간 멈췄다’는 인과관계가 같은 의미론적 문법으로 기술된다.
이것이 단순히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두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데이터 통합만으로는 AI가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한 곳에 거대하게 쏟아붓는 데이터 레이크 방식은 정보의 '검색'은 용이하게 해주지만, 그 정보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의미Semantics'를 갖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AI는 '펌프 압력 = 0'이라는 데이터를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가동 중단된 펌프’를 뜻하며, 이로 인해 ‘10분 뒤 전체 생산 라인이 셧다운될 것’이라는 인과관계까지는 추론할 수 없다. 반면, 온톨로지는 바로 이 '맥락'과 '관계'를 데이터에 명시적으로 부여한다. 팔란티어는 AI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나아가 직접 시스템을 제어하는 '행위자Agent'가 되게 하는 일을 해왔다. 팔란티어는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의미론적 연결' 작업, 즉 온톨로지 구축을 20년간 고집해 온 것이다.
또한 팔란티어는 지난 20년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원형Archetype'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두었다. 새로운 고객은 맨땅에서 시작할 필요 없이 이 검증된 지식의 뼈대 위에 자사 데이터만 부으면 된다. 팔란티어는 지난 20년간 다양한 산업군에서 축적한 무수한 시행착오와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제조업의 온톨로지는 이런 구조여야 한다’, ‘금융업의 온톨로지는 저러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따라야 한다’라는 산업별 표준 모델이자 '지식의 뼈대'를 미리 구축해두었다. 이것이 팔란티어가 경쟁사보다 훨씬 빠르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우위가 아닌, 20년의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린 지식의 장벽이다.
팔란티어의 서사는 단순히 한 테크 기업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이는 21세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데이터의 파편화'라는 혼돈에 맞서 ‘연결’이라는 ‘질서’를 부여하려는 철학적 투쟁의 역사다. 9·11의 비극 속에서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탄생한 이 '존재의 지도'는 이제 전장의 안개만큼이나 불확실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항해하는 정교한 나침반이 되었다. 대테러 작전을 위해 설계된 ‘고담’에서 기업 운영의 심장이 된 '파운드리'로의 진화는 본질적으로 같은 복잡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편적 운영체제의 등장을 알린다. 팔란티어가 20년간 그려온 이 지도는 이제 AI라는 선장과 함께 비즈니스의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