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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읽을거리를 확인해 보세요.[바로바로 파이썬 02] 변수란 무엇일까?
📅 2026년 11월 8일 · 👁 8
[바로바로 파이썬 02] 변수란 무엇일까?프로그래밍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개념이 바로 변수입니다. 변수가 무엇인지, 왜 사용하는지 이해하면 앞으로 배울 모든 코드가 훨씬 쉽게 읽힐 겁니다. 값에 이름을 붙여 보관한다는 감만 잡으면 전혀 어렵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봅시다.이제 본격적으로 파이썬 문법을 공부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다룰 내용은 변수Variable입니다. 사실 변수는 앞서 01장 파이썬 시작하기에서 이미 사용해봤습니다. 다음 코드를 보면 기억이 되살아날 겁니다.이 코드는 name이라는 변수에 "바로"라는 문자열을 저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값을 저장하는 행위를 ‘변수에 값을 할당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파이썬 변수에는 문자열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값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수에 값을 할당하는 것만으로는 화면에 결과가 출력되지 않습니다. 01장 파이썬 시작하기에서 해봤듯이 print( ) 함수를 사용해야 변수 안의 값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 name = "바로"는 ‘변수 name에 "바로"라는 문자열을 할당했다’라고 하고, age = 35는 ‘변수 age에 35라는 숫자를 할당했다’라고 합니다. 할당은 다음과 같이 age라는 이름표가 붙은 상자에 35라는 값을 보관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다소 상투적인 비유이지만 변수의 기본 개념을 잡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설명입니다. 이 상자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변수를 사용하는 이유와 변수의 개념을 자세히 알아봅시다.변수를 사용하는 이유변수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예를 들어 user_id = 12354151이라는 값이 있다면, 복잡한 숫자 12354151을 직접 외우기보다는 user_id라는 변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겠죠. 코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변수를 활용하면 복잡하거나 긴 값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어 유용합니다.변수에 저장한 값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꺼내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코드를 작성하면 home_address에 할당한 집 주소 하나만으로 다양한 형태의 결과를 출력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약 변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print( ) 함수마다 주소를 일일이 직접 입력해야 합니다.변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변수에 값을 한 번 할당해두면 이후에는 변수 이름만 사용하여 간편하게 반복 출력할 수 있습니다.변수에 할당한 값은 언제든 한 번만 수정하여 전체 코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작성한 코드에서 주소가 변경되었다면 주소의 값만 바꾸면 되고, 나머지 코드는 건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다음과 같이 123을 999로만 변경하면 변경된 주소가 일괄 적용됩니다. 한 번만 수정하면 나머지 코드는 손대지 않고도 주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출력하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거죠.정리하면 변수는 코드를 읽기 쉽고, 수정하기 쉽고, 재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유용한 것입니다. 상자에 이름표를 붙여 정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변수의 개념을 손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AI 시대,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01] 망치에는 ‘를’, AI에는 ‘와’
📅 2026년 11월 6일 · 👁 40
망치에는 ‘를’, AI에는 ‘와’ 망치와 계산기는 사람의 일을 덜어주었을 뿐, 판단은 늘 사람이 했다. AI는 그 선을 넘어 판단하고 만드는 과정 안으로 들어왔다. 이 전환은 도구, 사고, 구조라는 세 층위에서 한꺼번에 일어난다. 그 변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몇 년 뒤 서있을 자리가 달라진다. 파도가 도착하는 속도는 분야마다 다르지만, 오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것은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가 아니라 ‘내가 선 자리에는 그 파도가 어디까지 왔는가’다.이 장에서 저는 딱 한 가지를 말하려고 합니다. AI는 지금까지 우리가 써온 도구들과 차원이 다른 무언가라는 것입니다. 조금 빠른 도구, 조금 편한 도구가 아니라, 아예 다릅니다.이 말을 먼저 못 박아 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평소 제가 인공지능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할 때마다 자주 들은 말이 “교수님, 그거 결국 검색 좀 잘되는 거 아니에요?”, “전에 어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는 했어요”였기 때문입니다. AI를 그 정도로만 써도 충분한 사람에게는 웃으면서 “그렇죠?”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나 아직 젊은 분들에게는 그런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그 정도가 아니거든요. AI를 ‘빠른 검색기’ 또는 ‘글쓰기 도우미’ 정도로 여기고 넘어간 학생과,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챈 학생이 반년 뒤에 전혀 다른 자리에 서있는 걸 여러 번 봤습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무엇이 다른지, 그 다른 것 앞에서 왜 배우고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변화의 한복판, 이른바 전환기에 서있다는 사실도 함께 짚겠습니다.도구는 세 번 도약했다지금까지 사람은 일을 쉽고 편하게 하려고 도구를 썼습니다. 예를 들어 “망치를 사용했어요”, “계산기를 이용했어요”처럼 도구에는 조사로 ‘를’을 붙입니다. 그런데 AI는 사람이 하는 일에 깊숙이 들어와 함께 일합니다. 그래서 AI에는 “AI와 함께했어요”처럼 ‘와’를 붙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조사 하나 차이지만,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다 들어있습니다.인류가 만든 도구의 역사를 거칠게 정리하면, 크게 세 번의 도약이 있었습니다.첫 번째 도약은 몸의 확장입니다. 망치는 주먹보다 강하고, 지렛대는 맨손보다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게 해줍니다.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은 걷는 것보다 빠르고, 배는 바다를 건너게 해줍니다. 증기기관은 공장을 돌리고 철도를 놓아 대륙을 연결했습니다. 이 도구들은 모두 세상을 크게 바꿨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사람 몫으로 남은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를 갈 것인가’입니다. 크레인이 아무리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도 ‘이 건물을 여기 지을까’는 사람이 정했고, 경운기가 밭을 갈아줘도 ‘올해 뭘 심을까’는 농부가 정했습니다. 도구는 사람의 몸이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도약의 도구들은 아무리 거대해도 사람 ‘아래’에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덜 힘들게, 더 빠르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모든 생각과 결정은 사람이 했습니다.두 번째 도약은 계산과 연결의 확장입니다. 1946년에 등장한 에니악ENIAC은 최초의 프로그램 가능한 전자식 범용 디지털 컴퓨터입니다. 사람이 20시간 가까이 매달려야 했던 포탄 궤도 계산을 단 30초 만에 끝내며 계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1979년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비지캘크VisiCalc와 그 뒤를 이은 엑셀은, 회계 담당자가 손으로 며칠씩 하던 장부 정리를 몇 시간으로 줄여주었습니다. 1989년 팀 버너스리가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하고 구글 검색엔진이 널리 퍼지면서, 도서관 서가를 뒤지며 일주일씩 걸리던 자료 찾기가 불과 몇 초면 끝나게 되었습니다. 정보 혁명이었습니다.이 두 번째 도약 안에서 특별히 짚고 싶은 것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입니다. 저는 박사과정 수업을 마친 1990년에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기술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던 때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1995년 무렵에는 지금 우리가 아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CTO로 일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던 때였지만 지금 같은 모바일 인터넷 환경은 없었고, PDA와 폴더폰이 처음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조차 흐릿하던 그때, 시장과 기술을 깊게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은 처음부터 ‘정보를 빨리 찾는 도구’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위에서 전자상거래,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온라인 교육처럼 그전에는 이름조차 없던 산업이 태어났습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택시를 부르고, 방금 테이블에 올라온 음식 사진을 멀리 있는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지하철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을 검색하면서 친구와 채팅하고 음악까지 듣습니다. 모두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기능이고, 새로운 시장입니다. 스마트폰이 널리 퍼지면서 ‘모바일 앱 개발자’라는 직업도 생겼습니다. 걸 수만 있고 받을 수는 없는 무선 전화인 시티폰은커녕 삐삐조차 없던 제 대학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하던 직업입니다.누군가 “스마트폰은 전화기를 휴대용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스마트폰이 만든 세계의 절반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기술을 볼 때 학생들에게 늘 두 가지 질문을 던지라고 합니다. ‘이 기술은 기존의 무엇을 더 빠르게 만드는가’만 보지 말고, ‘이 기술은 이전에는 없던 무엇을 새로 만들어내는가’를 보라고요. 앞의 질문만 하는 사람과 뒤의 질문까지 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습니다. 새로운 도구와 기술이 나오면 전에는 이름조차 없던 일과 시장과 직업이 태어납니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하겠습니다.다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두 번째 도약의 도구들도 첫 번째 도약의 한계는 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만들까’, ‘무엇을 검색할까’, ‘어떤 서비스를 설계할까’를 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이었습니다. 도구는 일의 속도와 범위를 엄청나게 넓혔지만, 판단하고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에는 끼어들지 않았습니다.그런데 AI는 이 선을 넘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도약입니다.저는 이 세 번째 도약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를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AI의 등장은, 지금까지 인류가 하나씩 발명해온 모든 도구를 한꺼번에 발명한 천재가 내 옆에 나타난 것과 같다고요. 조금 과장해서 비유해볼까요? 서당에서 미적분과 상대성 이론을 뗀 장영실이 증기기관과 비행기까지 뚝딱 발명하고, 브리태니커 사전과 조선왕조실록을 통째로 외웁니다. 그러고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내 곁으로 다가와 “자, 뭐든 질문해보세요”라고 말을 건넵니다. 말하자면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하나씩 익혀온 것들이 압축되어 우리 옆에 도착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 존재는 가만히 놓여있는 도구와 달리, 일을 맡기면 “이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먼저 말도 겁니다. AI가 혁명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도구 하나가 더 생긴 게 아닙니다. 도구의 역사 전체가, 그것도 내가 할 일까지 알려주는 도구가 한 번에 내 곁에 왔습니다.AI에게 “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줘”라고 하면 분석을 해줍니다. 이전의 소프트웨어도 그래프를 그리고 추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AI는 한 발 더 갑니다. “여기 이런 패턴도 보이고,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보고서 초안 좀 써줘”라고 하면 백지 상태에서 문장을 써내고 논리를 만들고, 때로는 일을 시킨 사람이 미처 생각 못 한 분석과 제안까지 내놓습니다. 망치로 ‘어디를 때릴지’는 사람이 정했고, 검색엔진도 ‘무엇을 찾을지’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AI는 맡긴 일 안에서라면 묻기 전에 먼저 제안까지 합니다. “이 방향은 어떨까요?” “이 부분이 약해 보입니다.” “이렇게 바꾸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행까지 합니다.“그래도 결국 최종 결정은 사람이 하잖아요.” 강연에서 이 말이 꼭 나옵니다. 맞습니다. 최종 결정은 아직 사람이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백지 앞에서 혼자 처음부터 짜내는 것과, 누군가 옆에서 먼저 만들어준 선택지 세 개가 맞는지 확인하고 그중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선택지를 만드는 일과 고르는 일은 근육 자체가 다릅니다. 조리사가 신메뉴 레시피를 개발하는 일과, 그렇게 나온 요리 두 가지를 맛본 뒤 ‘이건 너무 느끼하다’, ‘저건 담백하고 맛있다’를 가리는 일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회사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일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합니다. 팀장이 신입 사원에게 “다음 달 신제품 마케팅 기획안 세 개만 정리해서 가져와 봐”라고 시킨 뒤, 올라온 보고서를 훑어보며 “2번은 예산이 부족하고, 1번이 현실적이니 이걸로 추진하자”라고 결정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AI가 선택지를 주면, 그중에서 고르는 판단력은 사람이 갖춰야 합니다.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핵심을 짚었는지 빗나갔는지는 결국 그 분야를 아는 만큼만 보입니다. 해당 지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같은 AI 요약을 봐도 전혀 다른 것을 읽어내는 것처럼요.저를 포함해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주 겪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학생이 AI로 만든 깔끔한 보고서를 들고 옵니다. 제가 하나 묻습니다. “내가 보기엔 여기 이 전제가 바뀌면 결론도 많이 바뀔 것 같은데? 어느 쪽으로 바뀔 것 같아요?” 학생은 한참 그 페이지를 바라봅니다. 결국 “사실 이 부분은 AI가 써준 거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도 대부분 이런 장면에서 나왔습니다.정리하면, AI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도구로만 보면 절반을 놓칩니다. 이전 도구들이 ‘사람이 하는 일의 속도와 범위’를 바꿨다면, AI는 ‘사람이 하는 일 자체의 성격’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구가 강해질수록, 그것을 쓰는 사람의 바탕이 더 중요해집니다. 여기서 바탕이란 경험으로 몸에 익힌 지식,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입니다. 이 바탕 이야기는 이 책 내내 되풀이해서 나옵니다.도구, 사고, 구조같은 AI를 써도 얼마나 깊이 보느냐에 따라 태도도, 행동도, 실력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그 깊이를 세 층으로 나눠봅니다.첫 번째 층위는 도구의 전환입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변화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AI’ 하면 떠올리는 장면입니다. ‘챗지피티로 이메일을 쓴다.’ ‘AI로 코드를 생성한다.’ ‘AI로 이미지를 만든다.’ 기존에 하던 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 검색엔진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AI를 사용하는 단계입니다.이 층위의 변화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며칠씩 걸리던 시장 조사 보고서 초안을 한 시간도 안 걸려 만들어냅니다. 한 줄 한 줄 타이핑하던 코드도 설명 몇 마디면 나옵니다. 영어로 이메일을 쓸 때 사전을 뒤지고 한 문장씩 고민하던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발표 자료를 만들 때 디자인과 구성을 동시에 고민하던 부담이 줄었습니다. 수십 페이지짜리 논문을 읽고 핵심을 정리하는 일, 회의록을 요약하는 일, 고객 문의에 답변 초안을 만드는 일처럼 누군가의 시간을 한참 잡아먹던 일들이 이제는 몇 분이면 끝납니다.이런 변화가 몇몇 분야에 그친다면 그리 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변화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코드를 짜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도,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도 모두 이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도구 하나가 이렇게 넓은 범위의 일을 한꺼번에 건드린 것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입니다. 산업혁명도 주로 육체노동과 제조업을 바꾸었을 뿐, 글쓰기나 분석이나 창작까지 건드리지는 못했습니다. 첫 번째 층위만 놓고 봐도 AI는 이전의 어떤 도구보다 넓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 머물면 AI를 ‘일 처리를 빨리하는 비서’로만 쓰게 됩니다. 매우 유용하지만, AI의 절반도 못 본 것입니다.두 번째 층위는 사고입니다. 도구가 바뀌면 그 도구를 쓰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도 바뀝니다. 이 변화는 첫 번째 층위보다 덜 눈에 띄지만,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납니다.내비게이션을 생각해보죠. 내비게이션이 나오기 전, 운전자의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경로였습니다. ‘종로 5가 사거리에서 좌회전, 그리고 두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 지도를 미리 보고, 길을 외우거나, 조수석의 누군가가 지도를 읽어줬습니다. 지금 운전자는 경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른 것을 생각합니다. 몇 시에 출발할지, 도착 시간이 늦으면 약속을 어떻게 조정할지, 길 안내가 이상하면 따를지 무시할지. 길을 외우는 일은 사라졌지만, 판단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판단이 한 층 위로 올라갔을 뿐입니다. 아래층은 도구가 맡고, 사람은 위층에서 생각합니다.AI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할 때 지금은 당연히 AI를 씁니다. 그런데 쓰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설프게 쓰는 학생은 막히면 곧장 “이거 어떻게 해?”를 던지고, 받은 답을 그대로 붙입니다. 이 학생의 생각은 아직 아래층에 있습니다. AI가 이미 맡고 있는 층에서 AI와 경쟁하고 있습니다. 깊게 쓰는 학생은 질문이 다릅니다.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봤는데, 내가 놓친 게 있을까?” “이 글의 핵심 메시지는 이러이러한데, 논리가 약한 데가 어디지?” 이 학생의 머릿속에는 몇 년 전 학생들에게는 없던 사고 습관이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직접 해야 할 일과 AI에게 맡길 일을 가르는 감각, 큰 문제를 AI가 다룰만한 크기로 쪼개는 감각, AI가 준 답에서 쓸 것과 고칠 것과 버릴 것을 가려내는 감각. 달라진 건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눈입니다. 처음엔 두 학생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한 학기만 지나면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집니다. 사고 역량은 복리로 불어나거든요. AI의 답을 검증하고 고치며 쌓인 지식과 메타인지(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조절하는 능력)는 다음번 생각의 더 불어난 ‘원금’이 됩니다. 여기서 아낀 시간을 더 높은 차원의 질문과 기획에 다시 투자하니, 성장 속도도 갈수록 빨라집니다. 반면 AI에 판단을 맡겨버린 학생은 생각하는 근육을 쓰지 않으니 원금마저 까먹습니다. 같은 AI를 쓰는데도 두 사람의 결과물이 달라지는 건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세 번째 층위는 구조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산업 단위에서 벌어지는 변화입니다. 조직 안에서는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이 남고’, ‘어떤 역할이 달라지고’, ‘어떤 역할이 새로 생기는가’의 문제입니다. 산업 전체로 보면 ‘각각의 사업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사업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어떤 시장이 새로 생기는가’의 문제가 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가장 무겁습니다. 제가 오래 몸담아 온 소프트웨어 업계가 아마 이 변화를 가장 먼저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원래 신입 개발자는 자료 조사, 초안 잡기, 데이터 정리, 간단한 코딩 같은 일부터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선배가 나눠준 일들을 하고 결과를 리뷰받으면서, 일이 굴러가는 흐름을 배우고, 실수하며 판단력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 ‘입문용 일’을 AI가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신입 개발자 채용이 줄어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취업 통계에서 비슷한 흐름이 보입니다. 직원 1,000명 이상인 국내 상장 IT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봐도, 2025년 20대 신입 사원 채용이 2023년보다 40퍼센트 이상 줄었습니다. 부트캠프에서 개발자 지망생들을 만나보면 이 딜레마가 특히 아프게 다가옵니다. 학생들을 앉혀놓고 이런 말을 해야 하니까요. “회사에서 개발자들은 이제 코드를 직접 짜는 것보다, AI가 짠 코드를 검증하고 맥락을 잡는 일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면 현명한 친구는 되묻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검증을 하려면 제가 직접 많이 짜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짜는 건 AI가 다 하는데, 저는 그 경험을 어디서 쌓죠?”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라진 경험은 모든 경험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주어지던 경험’이라고요. 예전에는 회사가 신입 사원에게 월급을 주면서 그 연습을 시켜줬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시켜주지 않으니, 그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실전에서 AI를 쓰는 것과 훈련에서 일부러 AI를 내려놓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자동조종 장치가 비행의 대부분을 맡는 시대에도 조종사는 수동 비행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습니다. 직접 해봐야 검증하는 눈과 몸에 밴 감각이 생깁니다. 그러니 훈련할 때는 자기 손으로 코드를 짜봐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도 절반의 답입니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그 훈련을 설계하고 버텨내는 부담이 전부 개인에게 넘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지금 수많은 현장에서 같은 질문이 한꺼번에 나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구조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산업 전체의 가치 사슬(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져 고객에게 닿기까지 이어지는 일의 흐름)이 다시 짜입니다. AI가 웬만한 코드를 만들어내니,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코드를 잘 짜는 능력’의 가치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코드가 푸는 문제가 진짜 풀어야 할 문제인가’, ‘이 시스템이 실제 사용자 앞에서 제대로 도는가’를 판단하는 힘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놓이는 맥락을 읽는 힘이 중요해집니다. 코딩이 쓸모없어졌다는 게 아닙니다. 코딩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겁니다. 코딩 말고 다른 분야도 다 비슷합니다.이 세 가지 층위를 왜 굳이 나누느냐고요? 같은 AI를 써도 첫 번째 층위만 보는 사람은 ‘프롬프트 잘 쓰는 법’만 익히면 된다고 여기고, 두 번째 층위를 보는 사람은 ‘AI와 함께 생각하는 법’을 훈련하고, 세 번째 층위를 보는 사람은 ‘AI가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역량을 쌓아야 하나’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이 셋은 지금 똑같은 도구를 쥐고 있어도, 몇 년 뒤 전혀 다른 자리에 서있을 겁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닙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산업 현장에서 제가 실제로 지켜본 결과입니다.지금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어느 층위에서 AI를 보고 있습니까? 오늘 AI에게 맡긴 일들 가운데, 나의 ‘비판적 사고 근육’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직접 쥐고 있었어야 할 일은 무엇이었나요?파도는 내 자리 어디까지 왔는가AI가 가져오는 변화는 모두에게 똑같이, 동시에 닥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나’라는 큰 질문보다, ‘내가 선 자리에는 그 파도가 어디까지 왔나’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훨씬 더 쓸모가 있습니다.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그냥 ‘빠른’ 전환기가 아니라 ‘너무나 빠른’ 전환기입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그 강력한 기술에 적응해 일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바쁩니다. 그리고 AI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한창 발전하는 중입니다. 이전 도구들은 하나가 나오고 다음 것이 나오기까지도, 도구 자체가 발전하는 데도, 널리 퍼지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여러 도구가 도입되는 속도는 다음 장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AI가 이전 도구들과 확실히 다른 점 하나가 이 속도입니다. 불과 몇 달 전 “AI는 이건 못해”라던 것들을 지금 해내고 있고, 지금 “이건 아직 안 돼”라는 것도 금방 뒤집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전이 빠르게 퍼집니다. 그래서 ‘지금 AI가 어디까지 왔나’를 따지거나 앞으로 할 수 있게 될 일을 점치기보다, 바뀔 방향을 읽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의 기능에 집착하면 반년 뒤 그 판단은 이미 낡습니다. 그리고 이 파도는 분야마다 도착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번역을 봅시다. 몇 년 전만 해도 기계번역은 참고용이었습니다. 사람이 검수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적인 비즈니스 문서라면 AI가 번역한 결과물을 실무에 바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번역가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순 번역’은 빠르게 AI에게 넘어가고 있고, 사람의 일은 ‘문화적 맥락을 잘 전달하거나, 전문 분야의 뉘앙스를 다듬는’ 쪽으로 갔습니다. 이 분야 사람들은 이미 세 번째 층의 구조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습니다.반대로 공장 생산 라인, 물류 창고, 건설 현장을 봅시다. 로봇과 자동화가 결합한 이른바 ‘피지컬 AI’의 영역입니다. 여기도 AI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AI 카메라가 불량을 잡고, 로봇이 물건을 분류하고, 설비 이상을 미리 감지합니다. 하지만 이쪽은 글을 다루는 분야보다 바뀌는 속도가 느립니다. 물리 세계는 변수가 많고 현장마다 사정이 다릅니다. 게다가 기계 하나만 멈춰도 라인 전체가 서니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할 수 있는 것’과 ‘현장에서 진짜 돌아가는 것’ 사이의 간극이 아직 큽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건 현장의 경험과 몸으로 익힌 감각, 즉 암묵지(말이나 글로는 온전히 전하기 어려워 직접 겪으며 익히는 지식)입니다. 지금 AI가 이 암묵지마저 데이터로 바꿔 배우려 하고 있지만, 현장의 정교함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간호사가 환자 안색을 살펴 이상을 알아채는 일,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수업의 방향을 트는 일, 조각가가 만들 작품을 떠올리며 나뭇결을 읽고 어느 쪽으로 깎을지 정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교실의 공기를 읽는 감각이나 손끝에 닿는 나뭇결의 느낌은 패턴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흉내 내기 어렵습니다. AI는 아직 여기까지 오지 못했습니다.그렇다고 AI가 느리게 오는 분야가, 직업을 고르는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에게 언제나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야에서는 이미 수년에서 수십 년씩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높은 생산성과 완성도로 일하고 있고, 그들의 힘은 도구가 아니라 몸에 밴 경험에서 나옵니다. 새로 들어가는 젊은 사람이 AI의 힘을 빌려도 그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는 어렵습니다. AI가 빠르게 뒤흔드는 영역에서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며 새 틈이 열리지만, AI가 느리게 오는 영역에서는 경험의 벽이 오랫동안 높게 남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선 자리, 또는 가려는 자리가 이 지도의 어디쯤인지는 알아야 합니다.그래서 저는 진로 상담을 오는 학생이 “AI 때문에 그 직업이 없어질까요?”라고 물으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줍니다. “그 직업에 속한 여러 세부 업무들 가운데 가치가 높은 부분들이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한 직업 안에도 AI에게 빠르게 넘어가는 일이 있고, 오히려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역할이 이동하는 방향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단순 실행에서 맥락 판단으로, 반복 작업에서 예외 대응으로, 정보 처리에서 의미 해석으로, 분석과 제안에서 선택과 책임으로요. AI가 잘하는 걸 차례로 AI에게 넘기고 나면, 사람에게 남는 건 결국 그 분야를 깊이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이 전환은 ‘미래에 올 일’이 아니라 ‘이미 왔거나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일’입니다. 다만 분야마다 체감 시점이 다를 뿐입니다. 누군가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일하는 방식이 통째로 바뀌었어요”라고 하고, 누군가는 “아직 별로 못 느끼겠는데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못 느낀다’가 ‘안 바뀐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환이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파도가 채 닿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파도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여러 분야에서 ‘아직 괜찮다’고 느끼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습니다.이 장을 열면서 저는 ‘AI는 지금까지의 도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AI는 판단하고 만들어내는 과정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변화는 도구·사고·구조의 세 층위에 걸쳐있고, 속도와 깊이는 분야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의 한복판, 전환기에 서있습니다.그렇다면 기술과 도구의 변화가 인류 역사에서 처음일까요? 아닙니다. 속도와 깊이는 달랐어도, 기술이 사람의 일과 삶을 크게 바꾼 일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선 자리가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바로바로 파이썬 01] 왜 파이썬을 공부해야 할까?
📅 2026년 11월 4일 · 👁 57
[바로바로 파이썬 01] 왜 파이썬을 공부해야 할까?세상에는 수많은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는데 왜 하필 파이썬을 배워야 할까요? 여기서는 파이썬이 어떤 언어이고 왜 배울 가치가 있는지 알아봅니다. 이 절을 읽고 나면 파이썬을 공부할 이유가 분명해질 겁니다.보통 프로그래밍 언어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 배웁니다. 이를테면 자바 Java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순수하게 취미로 배우는 경우는 드물죠. 특히 한국에서는 국비지원교육 과정을 통해 학원에서 6개월 내지 1년 동안 전문 훈련을 받고 현업으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오늘날 프로그래밍 학습은 개인의 즐거움보다는 직업적 결실을 맺기 위한 실용적인 수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프로그래밍 언어 가운데 우리가 파이썬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기에 앞서 파이썬이 어떤 언어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파이썬은 왜 파이썬일까?본격적으로 파이썬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우리가 공부할 이 언어가 도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잠깐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파이썬은 1991년 귀도 반 로섬Guido van Rossum이라는 개발자가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파이썬의 사전적 의미인 뱀이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사실은 그가 좋아했던 영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몬티 파이썬의 비행 서커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파이썬 로고에 뱀 두 마리가 들어가 있긴 해도 언어 자체가 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이름은 가볍게 지었지만, 언어의 값어치까지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파이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읽기 쉬운 코드입니다. 동시에 실제 업무에 쓸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인 언어를 추구합니다. 자주 쓰는 기능은 쉽게 표현하고 실용적인 기능은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도록 확장성을 마련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이 여러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언어입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파이썬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언어 반열에 올랐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울 때 파이썬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파이썬파이썬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배우려는 사람도 많지만 데이터 분석가, 인공지능 연구자 등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배웁니다. 그만큼 파이썬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쓰이는 활용도가 높은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파이썬의 대표적인 활용 분야를 나타낸 그림인데요. 실제로는 이 외에도 훨씬 많은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봅시다.우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같은 서비스의 뒤편을 만드는 웹·백엔드 개발에 파이썬이 쓰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지루한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업무 자동화나, 웹 페이지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크롤링에도 파이썬이 단골로 등장하죠. 또한 엑셀로는 처리하기 힘든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고 그래프로 시각화하는 데이터 분석, 사람처럼 학습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파이썬은 사실상 표준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밖에도 화면이 있는 GUI 프로그램이나 간단한 게임까지, 파이썬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습 니다.물론 파이썬이 모든 작업에 완벽한 만능 언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운영체제나 하드웨어를 세밀하게 제어해야 하는 작업, 또는 0.001초의 속도가 중요한 작업에는 파이썬보다 C나 C++ 같은 언어가 더 적합합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일상이나 업무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작업은 파이썬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이처럼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다 보니, 프로그래밍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주변에서 “파이썬을 배워봐!”라고 권하는 것이죠. 한번 제대로 익혀두면 어디서든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파이썬을 추천하는 이유가 단지 활용 분야가 넓기 때문만은 아닙니다.배우기 쉬운 파이썬사람들이 파이썬을 추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른 언어에 비해 배우기가 정말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이썬을 완벽히 마스터하는 일이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법이 워낙 간결하고 직관적이어서 입문용 언어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파이썬을 처음 배울 때 흔히 작성하는 "Hello World" 코드만 봐도 바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코드를 입력한 뒤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검은 화면에서 마치 나에게 인사를 건네듯 "Hello World"가 나타납니다.이 코드는 파이썬을 전혀 몰라도 화면에 ‘Hello World를 출력(print)하라는 뜻이구나’ 하고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쉬울 겁니다. 게다가 입력해야 할 코드도 단 한 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언어는 어떨까요? 자바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위와 동일한 결과를 얻으려면 다음과같이 코드를 작성해야 합니다.두 코드는 같은 결과를 내지만,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바에서는 화면에 문장을 출력하기 전에 클래스와 main( ) 메서드 같은 기본 구조를 갖춰야 하지만, 파이썬에서는 원하는 동작을 곧바로 한 줄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초보자에게는 이러한 차이가 코드를 배우고 실행할 때 느끼는 부담을 크게 줄여줍니다.그렇다고 파이썬의 모든 문법과 고급 기법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초 단계에서는 복잡한 프로그램 구조보다 변수, 조건문, 반복문과 같은 핵심 개념에 빠르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인공지능 시대에 더 중요해진 파이썬여기까지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챗GPT나 커서 같은 AI 도구가 코드를 알아서 짜주는데, 굳이 파이썬을 공부해야 할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파이썬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습니다.첫째, 인공지능 분야의 사실상 표준 언어가 바로 파이썬입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많은 인공지능AI 서비스의 밑바탕에는 파이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상당수가 파이썬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기술에 관심이 있다면 파이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둘째, AI 코딩 도구를 제대로 쓰려면 파이썬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면 좋습니다. 번역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영어를 아는 사람이 번역기를 훨씬 잘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짜준 코드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검증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해달라고 정확히 요청하려면 결국 파이썬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될 것인지, 인공지능이 생성해준 코드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될 것인지는 여기서 갈립니다. 그러니 지금 파이썬을 공부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따라가는 겁니다.
04. AI 리터러시, 지능이란 무엇인가? 튜닝 테스트
📅 2026년 11월 2일 · 👁 81
AI 리터러시, 지능이란 무엇인가? 튜닝 테스트여기서 불편함이 생긴다. 이해도 못 하는데 무슨 지능인가? 제아무리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고 복잡한 퍼즐을 풀어도 지능이라는 말을 붙이자니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제인 구달과 침팬지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인간만 도구를 쓰는 줄 알았던 시절 침팬지가 도구를 쓰는 모습을 본 당대의 석학은 인간의 정의가 바뀌거나 침팬지를 인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침팬지를 끼워줘야 한다니!' 절망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과학자는 알던 것과 다른 사실이 발견되면 자연스럽게 지식을 업데이트한다. 지능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직면한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능은 이해력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했다. 1990년대 컴퓨터 공학자들이 이미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우리는 흔히 지능을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여부로 재단하고 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바닥인 학생, 열심히 고객을 만나고 다니지만 판매 실적은 좋지 않은 영업사원이 똑똑하다는 말을 듣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 같은 결과를 내더라도 노력을 적게 들이는 이들에게 영리하다는 말을 한다. 축구 경기를 떠올려보자. 동료가 거친 수비를 뚫고 힘들게 밀어준 공을 문전에 서 있던 선수가 손쉽게 밀어 넣는다. 소위 '주워 먹는' 플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축구 지능이 높다고 칭찬한다.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맞으면 지능적 행동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이해해서 풀든 모든 경우를 계산해서 풀든 결과만 맞으면 그만이다. AI가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는 이미 이해하지 못해도 일을 해내는 기계에 둘러싸여 있다. 계산기는 곱셈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정답을 내고, 세탁기는 빨래의 원리를 모르지만 옷을 깨끗하게 한다. 기존의 도구들에 비해 AI가 새삼 낯선 것은 이번에는 기계가 글을 쓰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이해를 전제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결과를 내느냐다.사실 이런 관점은 우리의 전통, 직관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유교의 경전 《중용》은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한 뒤에 행하라고 가르쳤다. 지행합일이라는 말도 알기만 하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언제나 행동보다 이해가 먼저이고, 알면서도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문제시하지 행동을 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의 범위 밖에 있었다. 그런데 AI의 지능은 알지 못한 채 행동한다.앨런 튜링은 알지 못하지만 행동하는 길을 먼저 걸어간 선구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기를 사용해 군사 통신 내용을 숨겼다. 에니그마는 키를 누를 때마다 내부의 회전자가 움직여 같은 글자도 매번 다른 글자로 바꾸었고, 그래서 암호의 규칙은 계속 달라졌다. 튜링은 동료들과 함께 이 복잡한 규칙을 추적하기 위해 봄브Bombe라는 장치를 설계했다. 봄브는 수많은 에니그마 설정 후보를 빠르게 탐색해 그날의 설정된 암호를 찾아냈다. 하지만 봄브는 자신이 찾은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정보가 전쟁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전기 회로와 기계 장치를 작동시켜, 가능한 설정 가운데 맞지 않는 것을 걸러냈을 뿐이다. 결과를 낸 것은 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규칙의 실행이었고, 그 결과가 전쟁의 방향을 바꿨다.1990년대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러셀과 노빅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AI를 만드는 길은 다양하다. 사람의 뇌를 똑같이 흉내 내는 길, 빈틈이 없는 논리를 세우는 길, 그리고 튜링이 제시한 사람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길.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사람 뇌 속에서 생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고, 논리만으로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없었다.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길은 영리한 한스가 덧셈 문제를 푸는 것을 보며 감탄하듯 AI의 진짜 능력이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는지를 측정할 뿐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속임수에 취약한지는 일라이자의 사례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증명됐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단순한 정의를 골랐다."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관계가 없으니, 목표를 달성하는지로 정의하자."뜨거운 난로에 손이 닿은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화들짝 손을 뗀다. 깊은 고민 없이 일어난 반사이지만 생존이라는 목표에 맞는 행동이니 지능이라 부를 수 있다. 흰개미의 건축도, 침팬지의 나뭇가지도, 까마귀의 철사도 같은 기준에서 지능이다. 인류가 새의 날갯짓을 흉내 내는 대신 공기역학을 연구해 하늘을 날았듯, AI도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내는 대신 문제 해결에 집중해 얻은 결과물이다. 비행기는 새처럼 퍼덕이지 않지만 하늘을 난다. AI는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지만 문제를 푼다. 그러니 AI를 볼 때 던질 질문은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다. 내 마음 따위는 당연히 모른다.여기서 불편함이 하나 남는다. 결과만 맞으면 지능이라면서, 1부에서는 왜 AI의 답변이 통계로 지어낸 문장일 뿐이라고 했나? 이직 상담을 해도 AI는 그럴듯한 답을 내놓지 않나? 그렇다면 그렇게 폄하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두 입장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단, 생략한 조건을 하나 짚어야 한다. 결과를 낸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미리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점수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바둑에는 승패가 있다. 단백질 구조 예측에는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답이 있다. 코드는 돌려보면 올바른지 알 수 있다. 점수판이 분명한 영역에서 AI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지능적이다.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도 점수를 올리는 능력, 그것이 러셀과 노빅이 말한 지능의 실체다.이제 1부의 질문을 다시 보자. "지금 직장을 옮기는 게 나을까?" 이 질문에는 점수판이 없다. 이직을 했을 때의 삶과 이직하지 않았을 때의 삶을 나란히 놓고 어떤 생이 더 나은지 채점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평가를 할 수 없는 곳에서는 결과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여기서 발현되는 지능은 사람처럼 그럴싸하게 말을 하는 것이지, 이직을 해라 마라 하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훌륭한 지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그 내용까지 지능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는 뜻이다.여기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 세워진 점수판에서 점수를 올리는 것이 지능이라면, 무엇을 점수로 칠지 정하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을 좋은 결과로 볼지 정하는 일, 우리는 이것을 가치 판단이라고 부른다.
[NeXT 스티브 잡스 06] 잡스의 넥스트 시절에서 배울 것
📅 2026년 11월 1일 · 👁 84
잡스의 넥스트 시절에서 배울 것 〈포춘〉 촬영에 함께한 스티브 잡스와 핵심 측근들. 왼쪽부터 디자인 수장 조너선 아이브, 소프트웨어 책임자 애비 테바니안, 하드웨어 수장 존 루빈스타인, 애플리케이션 총괄 시나 타마돈. 2001년 12월 19일.넥스트를 떠난 지 14년 뒤, 폴 바이스는 소노마 밸리에서 와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자녀들의 학교를 매개로 스티브를 포함한 넥스트 동료들과 유대 관계를 유지했다. 2011년 9월의 어느 날, 그는 학교 개학 행사에서 로렌과 만났다.로렌이 그를 잡스 가족의 집으로 초대했다. 폴은 수락하고, 자기 회사의 와인을 가져갈 계획을 세웠다.2011년 10월 5일, 폴은 와인 병을 차에 싣고 스티브와 로렌의 집으로 향했다. 운전 중에 로렌에게서 전화가 왔다.스티브가 방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날 오후 3시경, 그는 초기에는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던 췌장암에 굴복했다.소식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통해, 그리고 넥스트 동문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커뮤니티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많은 이들이 복잡한 슬픔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회의에서 모욕을 주며,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던 천재 밑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잡스가 한 행동을 용서하지 못한 채 수십 년 동안 그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그의 죽음이 그것을 바꾸기 시작했다.전직 넥스트 영업 매니저 마크 헤이즈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자기 안에서 일어난 일은 정확히 기억했다. “제 안에 꾹꾹 담아두었던 많은 분노를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20년간 품어온 원망이 갑자기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의 재능과 그가 이뤄낸 성취들을 더 호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전직 넥스트 마케팅 디렉터 론 와이스만은, 스티브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객 미팅을 나와 차 안에서 40분간 마비된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스티브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10월 16일 스탠퍼드 메모리얼 교회에서 열린 스티브의 비공개 추모 예배에서, 마이크 슬레이드는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매우, 매우 감동적이고 매우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마이크는 수백 명의 조문객 사이에서 빌 게이츠 옆에 앉았다.스티브는 자신의 병을 거의 모든 사람, 심지어 마이크를 포함한 가장 가까운 친구와 동료들에게까지 숨겼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 왜곡장을 유지한 것이었다. 그것이 많은 이에게 슬픔과 함께 배신감을 남겼다.❖마이크는 13년 전인 1998년, 스티브가 전화를 걸어 애플에서 다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신의 능력을 제가 얻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빌리고 싶어요”라고 스티브는 말했다.당시 시애틀에 거주하며 디즈니에서 일하고 있던 마이크는, 넥스트의 하드웨어 부문이 붕괴된 후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그를 고용해 스타웨이브라는 웹 회사를 경영하게 했고, 이 회사는 10억 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에 디즈니에 매각되었다. 닷컴 붐의 성공 사례 중 하나였다.스티브는 마이크에게 애플의 제품 전략과 브랜딩에 대해 조언하는 특별 보좌관 역할을 제안했다. 디즈니의 사내 정치에 지쳐 있던 마이크는, 오히려 스티브를 안전한 피난처로 여겼다. 그는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마이크는 “우리는 서로에게 반해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하지만 마이크에게는 어린 자녀들이 있었고 시애틀에 정착한 가족을 이주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자 스티브는 그를 배려하여 이례적으로 파트타임 자리를 제안했다. 마이크는 이를 수락했고, 이를 두고 “제 전체 경력을 통틀어 가장 편안하고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이후 6년 동안 마이크는 매주 월요일 아침 시애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가 수요일에 돌아갔다. 그는 회의마다 스티브를 밀착 수행하며, 넥스트스텝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운영체제 맥 OS X를 설계하고, 애플의 부활을 상징할 핵심 앱들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웹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 덕분에 마이크는 회사에 독보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애플에서 저 말고는 인터넷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마이크는 말했다. 다른 모든 이들이 여전히 웹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쓰는 동안, 마이크는 음악 유통부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패러다임을 바꿀 온라인 미래 전략을 스티브가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애플 고위 임원들은, 마이크가 정확히 누구인지, 왜 자신들의 극비 회의에 참석하는지 알지 못했다. 임원들이 몇 시간 동안 격렬하게 논쟁하는 동안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러다 스티브가 갑자기 그를 돌아보며 “마이크, 당신 생각은 어때요?”라고 묻곤 했다.그러면 테이블 주변의 임원들은 일제히 혼란스러운 눈빛을 교차시켰다.마이크는 스티브의 극적인 변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특권도 누렸다. 그는 이 시점의 스티브가, 과거 넥스트를 거의 파산 지경으로 몰고 갔던 그 독선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그는 잡스의 가장 까다롭고 결함 많던 성격들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목격했다. “너 해고야”라며 발작적으로 화를 내던 고질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스티브는 여전히 완벽을 요구하는 엄격한 상사였다. 하지만 그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부하 직원들에게 인격적 모욕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또한, 조직 내 원망과 치졸한 사내 정치를 낳았던 넥스트 시절의 ‘임금 공개 정책’을 치워버렸다.그는 통제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애비와 존, 마이크, 버드(2002년 소프트웨어 기술 부사장으로 애플에 복귀해 과거 자신의 제자였던 애비 밑에서 일하게 됨) 같은 핵심 참모진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월요일 아침 스태프 미팅에서 스티브는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조언을 실제 경영에 반영했다.조직 환경이 개선되면서, 그는 임원들이 끊임없이 갈려 나가던 애플의 고질적인 ‘회전문 인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애플에서 핵심 임원진 체제가 무려 8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이끌었다. 마이크는 이를 두고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마이크는 “스티브는 넥스트에서 정말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다시는 그중 어느 것도 반복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상태였습니다”라고 관찰했다.넥스트 교훈 하나 : 실패를 반복하지 마라 몇 주 동안, 경영진은 애플이 기존의 고급 컴퓨터 대신 입문형의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했다. 스티브는, 친구 래리 엘리슨이 애플에 제안했던, 인터넷에서 모든 데이터를 끌어와 쓰는 ‘디스크가 없는 네트워크 컴퓨터(단말기)’ 개발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하드웨어 책임자 존은 반대했다. 디스크가 없다는 것은 넥스트 큐브의 광학 드라이브 참사를 떠올리게 했다. “하드 드라이브 없는 넥스트 기기는 잘 안 됐잖아요”라고 존은 주장했다. “이것도 잘 안 될 겁니다.”긴장은 마침내 존이 “치고받고 끌고 가는 육탄전”이라 부른 수준으로 격렬해졌다. 그런데 돌파구가 되는 타협안이 나왔다. 네트워크 컴퓨터의 마더보드를 유지하되, 계획했던 반투명 케이스를 하드 드라이브가 들어갈 만큼만 키우면 어떨까?매우 대담하게도, 존은 애플의 일반적인 개발 기간인 3년 대신 단 14개월 안에 이를 제품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엔지니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존은 “모두가 ‘그건 불가능해요’ 하고 손사래를 쳤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애플의 전설적인 아이맥(iMac)이 탄생했다.넥스트 교훈 둘 : 때로는 비전을 굽혀야 한다 애비가 랩소디 프로젝트를 통해 넥스트스텝이 애플 컴퓨터에서 돌아가도록 하는 작업을 하면서, 어도비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매킨토시 개발자를 행복하게 붙잡아둘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했다. 그들은, 새로운 운영체제를 위해 그들의 방대한 소프트웨어를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라고 하면 반발할 것이었다.그래서 애비의 팀은 블루 박스라는 이름의 가상환경을 구축했다. 이는 새로운 운영체제 내부에서 기존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통째로 구동시키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태계가 정착되는 동안 과거의 소프트웨어들이 그 안에서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준 것이다.이러한 지극히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애플이 넥스트의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를 이식하고 다루는 방식을 규정하게 되었다. 이후 10년 동안 애플은 넥스트의 소프트웨어 구축 프레임워크를 정돈하여, 매킨토시 컴퓨터용 개발 도구인 ‘코코아(Cocoa)’와 아이폰용 터치 최적화 도구인 ‘코코아 터치(Cocoa Touch)’라는 강력한 두 가지 툴킷으로 발전시켰다.스티브가 원래 1988년에 일으키고자 했던 넥스트 혁명은, 19년이 지난 후 첫 번째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면서 마침내 온전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사실 블루 박스 같은 타협적인 우회책을 허용하는 것은, 과거의 고집스러운 스티브 성격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넥스트 시절에 그는 개발자들에게 오직 자신의 플랫폼만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완벽히 새로 짤 것을 강요했고, 이러한 순혈주의적 고집은 결국 앱 부족이라는 생태계 고사로 이어졌었다. 이제 애플에서 그는 실용주의를 수용했다. 더 많은 소프트웨어는 더 많은 사용자를 의미했고, 다시 더 많은 개발자를 끌어들여, 과거 넥스트 시절에는 결코 만들지 못했던 강력한 플랫폼의 선순환을 만들어냈다.넥스트 교훈 셋 : 사람들의 말을 들어라 넥스트 이후, 스티브는 단지 ‘옳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고객의 현실적 요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들어놓고도 매장에서 먼지만 쌓이는 것을 보게 된다. 존과 스티브는 이 교훈을, 애플의 방대하고 엉망진창이었던 기존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는 데 적용했다. 애플의 피를 말리던 실적 부진 모델들과 과거의 쓸모없는 찌꺼기 제품들을 가차 없이 퇴출시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켜, 과거 넥스트가 추구했던 극도의 단순함에 경의를 표하는 반투명한 본디 블루 색상의 아이맥을 완성했다.1990년대 초 다른 컴퓨터들이 투박한 픽셀과 거친 모서리로 텍스트를 표시할 때, 넥스트 화면은 마치 고급 잡지에 인쇄된 것처럼 칼날처럼 선명한 글꼴을 보여주었었다. 스티브는, 전문 인쇄소에서 쓰던 그 포스트스크립트 기술을 라이선스하여 애플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이식했다. 그 결과물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폰트 처리를 위해 웬만한 일반 컴퓨터 한 대 값보다 비싼 전용 칩을 박아야만 했었다.아이맥이 1998년에 출시될 때쯤, 컴퓨터 칩은 극적으로 빨라지고 저렴해졌다. 한때 비싼 커스텀 하드웨어가 필요했던 것이 이제 표준 프로세서에서 구동될 수 있었다. 넥스트 기기를 터무니없이 비싸게 만들었던 기술이 소비자 제품에 적합한 가격이 된 것이었다.30년이 지난 오늘날, 아이폰에서 핀치 줌을 하면 어떤 크기에서든 텍스트가 칼날같이 선명한 것은, 과거 넥스트의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의 증손자 격인 ‘쿼츠’와 ‘코어 그래픽스’ 기술이 사치스러운 가격표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우리 주머니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아이맥에는, 당시 기준으로 이단적이었지만 플로피 드라이브가 없었고 USB 포트만 있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이 아주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특별히 기획된 컴퓨터였다. 그리고 1,299달러로 경쟁사보다 저렴했다. 스티브가 마침내 일반인을 위한 하드웨어 마케팅법을 배운 것이었다.1998년 8월 출시된 아이맥은 첫 5개월간 80만 대가 팔렸고, 넥스트 인수 이후 처음으로 애플을 흑자로 전환시켰다.동시에, 넥스트의 비싼 기술들도 애플의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새 생명을 찾았다. 넥스트에서 라이선스당 5만 달러 이상이었던 엔터프라이즈 프레임워크인 웹오브젝트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애플의 온라인 스토어를 구동했다. 1999년까지 애플은 같은 웹오브젝트 소프트웨어를 699달러에 팔다가 나중에는 결국 무료로 배포했다. 그 기술은, 아이튠즈 구매를 아이팟에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신경계가 되었다.정식 맥 OS X가 나오기 2년 전인 1999년 3월, 맥 OS X 서버가 출시되면서 애플은 넥스트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 기반을 더 넓은 청중에게 가져다주었다. 수십 명의 애플 및 전직 넥스트 엔지니어들은, 맥 OS X 서버가 본질적으로 친숙한 매킨토시 인터페이스가 위에 덮인 넥스트스텝이라고 회고했다.넥스트 큐브의 유령은 2000년에 다시 나타났다. 스티브가 파워 맥 G4 큐브를 출시한 것이다. 강력하고 반투명한 크리스탈 컴퓨터였다. “네, 전에 하나 만들었었죠”라고 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큐브는 매우 효율적인 공간입니다.”모니터 없이 1,799달러로, 넥스트에서의 전작처럼 실패했다. 어떤 습관은 다른 것보다 고치기 어렵다.넥스트 교훈 넷 : 완전한 통제에는 완전한 역량이 필요하다 199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교통 체증 한가운데서 갑자기 시동이 꺼질 수 있는 차를 모는 것과 비슷했다. 예전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너무 자주 다운되어서 사람들이 편집증적으로 몇 분마다 작업을 저장했다.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딩 시스템을 구동하는 유닉스와 같이 견고한 소프트웨어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넥스트 기기는, 그렇게 쉽게 다운되지 않았다.문제는, 유닉스가 난해한 명령어를 이해하는 컴퓨터 과학자에게만 친숙하다는 것이다. 애플이 날린 신의 한 수는, 이 방탄조끼처럼 튼튼한 기반 위에 친근한 얼굴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훗날 숨 막힐 정도로 복잡한 스마트폰을 단순하게 느끼게 만들 같은 마법이었다.2001년 3월, 애플은 맥 OS X를 출시했다. 본질적으로 매킨토시 화장을 한 넥스트스텝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애플이 넥스트를 산 이유였다. 낡아가는 운영체제를 대체할 현대적 기반. 스티브는 이를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운영체제”라고 마케팅했다. 안정적이고, 강력하고, 아름다웠다.이것은 또한, 애플의 운명을 뒤집을 돌파구의 초석을 놓았다. 존이 일본 출장 중, 도시바 임원들이 PC에 사용하기에는 용량이 부족한 작은 하드 드라이브를 보여주었다. 존의 머릿속에서 ‘이게 아이팟을 만들 방법!’이라는 전구가 켜졌다.스티브도 마침 일본에 있었고, 존이 바로 전화했다. “스티브, 이걸 개발하려면 1,000만 달러짜리 수표가 필요합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스티브는 망설이지 않았다. “문제없어요.”아이팟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매끄러운 하나로 작동하는 넥스트의 철학을 보여주었다. 소프트웨어는 맥 OS X에서 가져왔고, 아이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추었으며, 아이튠즈에 쉽게 연결되었다. 처음으로, 주머니에 천 곡의 노래를 넣고 다니면서 파일 형식이나 호환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스티브가 꿈꿔왔던, 기술이 좋아졌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고, 사용자 경험이 남은 것이었다.2003년 4월, 애플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출시했다. 스티브는 편집증적인 음반사들을 설득하여 곡당 99센트에 온라인 판매하게 했지만, 진정한 승리는 스토어의 백엔드에 있었다. 스토어는, 대규모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도록 확장된 웹오브젝트 위에서 돌아갔다. 첫 주에 100만 곡 이상을 판매한 뒤, 넥스트의 엔터프라이즈급 도구가 대규모 일반 소비자 서비스에 적용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현업에서 떠나 곁에서 지켜보던 전직 넥스트 직원들에게, 자신들의 기술이 입증된 것은 달콤했다. 자신들의 ‘실패한’ 회사의 프레임워크가 애플의 혁명을 구동하는 보이지 않는 엔진이 된 것이었다. 넥스트를 거의 죽일 뻔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전략이 마침내 제 시대를 만나 빛을 발한 것이다.스티브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넥스트에서 배운 것을 회고했다.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이야말로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성공이라는 무거움이 걷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초심자의 가벼움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덕분에 저는 제 생애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5년간, 넥스트라는 회사를 시작하고, 픽사라는 또 하나의 회사를 시작했으며, 나중에 저의 아내가 되는 놀라운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완전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반전으로,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이 르네상스를 맞은 애플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끔찍한 맛의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은 인생이 난데없이 벽돌로 뒤통수를 후려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2007년 1월 9일 맥월드에서, 스티브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오늘, 세 가지 혁명적 제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라고 그가 시작했다. “첫 번째는 터치 컨트롤을 갖춘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는 혁명적인 모바일 폰입니다. 세 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 장치입니다.”그가 멈추었다. “감이 오셨나요?” 그가 물었다. “이것은 독립적인 세 개의 장치가 아닙니다. 하나의 장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이라 부릅니다.”막후에서, 이 출시 전날, 스티브는 AT&T 이사회에 아이폰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이폰 개발에 참여했던 버드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의 턱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아이폰 이야기는 인내의 역사였다. 넥스트에서 스티브는 생존을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인텔 칩과 자기가 혐오하는 디자인의 베이지색 상자의 PC 제조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었다. 전 넥스트 직원과 애플 임원들에 따르면, 1997년 애플에 복귀했을 때 그는 그의 비전으로부터 전술적 후퇴를 했다. 인텔 프로세서를 유지하고, 이동통신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기존 공급망 안에서 일하면서. 하지만 각 타협은 스티브에게 더 큰 것을 구축할 시간과 자원을 벌어주었다.2007년이 되자, 10년간의 인내심이 결실을 맺었다. 스티브는 아이폰으로 마침내 중요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애플이 결국 칩 아키텍처를 설계할 것이었다. 애플은 신중하게 관리된 파트너를 통해 제조를 통제했다. 애플은 AT&T가 폰을 보기도 전에 수용하게 만들면서 이동통신사에 조건을 정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서비스, 심지어 리테일 스토어까지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가 통제했다.넥스트에서 스티브는 충분하지 않은 자원으로 첫날부터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애플에서는 먼저 자원을 확보한 뒤 통제권을 장악했다. 아이폰은, 스티브의 전체 기술 스택 전략이 시행할 힘이 있는 한 작동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 넥스트의 전직원들은 “엑스넥스터즈”라는 메일링 리스트에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애플이 자신들이 1994년에 넥스트에서 만들었던 ‘혁명적’ 기능을 발표할 때마다 비꼬는 유머를 나누었다.아이폰의 운영체제와 개발 도구, 기반 아키텍처의 상당 부분이 10년 전 그들이 작성한 코드와 앱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실제로, 애플의 일부 코드 속에는 “NS”라는 이니셜이 묻혀 있었다. “NeXTSTEP”을 가리키는 약어였다. 넥스트는, 스티브가 언젠가 자신의 인생 업적에 대해 예측했던 모습 그대로가 되었다. 즉, 컴퓨팅 역사의 한 퇴적층이 된 것이다.그때까지, 회사 퇴사자들은 씨앗처럼 실리콘밸리 전역에 흩어져 있었고, 그들의 넥스트 경력은 어느 회사에서든 환영받았다. 대니얼은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에 의해 수석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다. 수전은 수술 로봇 회사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CFO가 되었다. 리치는 초보틱스의 회장이 되었는데, 이 회사는 천 가지 조합의 샐러드를 조립할 수 있는 자판기 “샐리 더 샐러드 메이킹 로봇”을 만들었고, 도어대시가 2021년에 인수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력서에 있는 넥스트라는 단어는 ‘스티브의 지옥훈련을 통과한 생존자’라는 의미였다.❖스티브 사망 몇 주가 지난 뒤, 거의 200명의 엑스넥스터들이 떠난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원래 넥스트 본사가 있던 곳인 레드우드 시티의 소피텔 샌프란시스코 베이 호텔에 모였다. 방 안에는 복잡한 에너지가 흘렀다. 슬픔과 묵은 원망이 섞이고, 사랑과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얽혀 있었다. 이들은 스티브의 가장 잔인했던 시절의 생존자들이었다.전직 영업 부사장 토드 룰론밀러가 연단에 섰다. 그는 수십 년간 알아온 얼굴들을 내려다보았다.“아직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그가 시작했다. “아직 극복 중입니다.”토드는, 스티브가 125페이지짜리 계약서를 IBM 임원들이 보는 앞에서 테이블에 던져버렸던 IBM 미팅을 회상했다. 방 안에 웃음이 퍼졌다. 큐브의 색상을 놓고 끝없이 벌인 논쟁을 떠올리고, 넥스트가 컴퓨터를 팔지 못하는 무능력에 대해 로스 페로가 자신에게 소리치던 것을 회상했다. 토드가 짧게 로스의 텍사스 사투리를 흉내 내자 웃음이 터졌다.“스티브는 늘 의견을, 관점을 요구했습니다. 선언하라, 결정하라, 행동하라(declare, decide, do)”고 토드는 말했다. “스티브 밑에서는 모든 동사가 능동태였습니다.”청중은 이 스티브를 잘 알고 있었다. 요구하는 완벽주의자. 하지만 이어서 토드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 뒤, 잠시 침묵했다. “신중히 숨겨진 마음.”어딘가에 그 마음을 숨긴 스티브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토드는 21년 전의 비즈니스 디너를 떠올렸다. 넥스트의 대학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티브가 나타나지 않았던 그 밤, 그는 로렌 파월이라는 대학원생과 저녁을 먹기 위해 미팅을 날려버린 것이었다.일부 냉소적인 사람들은 스티브의 변신이 연출된 것이라 했다고 토드는 말했다. 하지만 넥스트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뒤 20년간 그를 지켜보았다.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생일을 기억하고 축구 경기를 코치하는 사람이 되었다.“스티브 잡스에게서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모습”이라고 토드는 인정했다.토드가 잠시 멈추었다.“그는 저의 미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약하면: 대담하고 결연하며, 창조적이고 예술적이며, 못처럼 강인하고 배려심 깊은. 네, 그는 제 친구였고, 그가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03. AI 리터러시,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
📅 2026년 10월 30일 · 👁 100
03 AI 리터러시,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어려서 자주 듣던 말 중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 영장은 만물 가운데 으뜸이라는 뜻이다. 위 말의 원문은 “man is the lord of all creation”. 즉,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다른 동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지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다스릴 권리를 받았다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이처럼 인류는 지능을 인간만의 것으로 여겨왔다. 도구를 만들고, 추상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균열은 1960년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에서 시작되었다. 침팬지를 관찰하던 제인 구달이 한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골라 잔가지를 다듬은 뒤 흰개미집에 밀어 넣어 흰개미를 낚아 먹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재료를 목적에 맞게 다듬어 도구를 만들고 활용하는 현장이었다. 당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해주는 중요한 특징이었다. 구달을 곰베로 보낸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이제 우리는 도구를 재정의하거나, 인간을 재정의하거나,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당시의 사람들은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에게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의 지위를 부여했다. 도구를 인간의 전유물에서 내려놓으면서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에는 특별함이 담겨 있었다.그런데 2002년 더 놀라운 사실이 관찰됐다. 옥스퍼드 연구팀이 뉴칼레도니아의 까마귀, 베티를 관찰했다. 베티는 곧은 철사를 스스로 구부려 갈고리를 만들더니 통 속 먹이를 꺼내 먹었다. 사람이 준 도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도구를 창안한 것이다. 도구의 사용 능력과 더불어 창의성을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속 연구에서 이 까마귀들은 미래에 어떤 도구를 쓸지 미리 계획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도구의 위치를 기억하며, 여러 단계를 거치는 문제까지 풀어냈다.인간보다 하등하다고 여겨온 생물들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지능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커다란 보루가 남아 있었다. 바로 체스, 바둑, 그림, 수학처럼 추상적 이해와 논리적 추론이 필요한 영역이다. 1997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가 딥블루라는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내주었을 때만 하더라도 모든 경우를 다 계산해서 최적의 답을 내는 일종의 부정행위라는 인식이 있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하는 전수 탐색exhaustive search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대규모 후보를 계산하는 방식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은 절대 못 따라온다는 해석이 있었다. 경우의 수가 유한한 체스와 달리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인 수치인 바둑에서는 절대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여겨졌다.모두가 알다시피 2016년, 그런 믿음은 깨졌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1:4로 무릎을 꿇었다. 이제 AI는 막힘없이 답하며 창의력이 필요한 소설까지 그럴듯하게 쓴다. 미술, 음악, 심지어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던 수학 난제들까지, 인간의 성역이 잇따라 AI에게 무너졌다.AI를 개발한 과학자들은 무심하게 기술을 설명했지만 인문학계에서는 "인간은 무엇인가", "창의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세돌은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의 1승은 AI에게 거둔 인류의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10년 뒤 신진서 9단이 바둑 AI 카타고를 상대로 2승 1패를 기록했다. 오랜만의 승리에 언론은 환호했지만 신진서 9단은 '두 점이라는 핸디캡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며 승리라는 표현을 자제했다. 다시 생각해보자. 인간의 사고력과 창의력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일까? 적어도 이제는 연산 능력과 창의력 역시 하나의 기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AI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많은 이들이 AI를 지식의 보고 내지 지성을 초월한 존재로 여기고 있지만, 적어도 현재 인류가 만들고 발전시키려는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행동할 뿐이다. 이 소식에 실망을 할 이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안심해도 된다는 소식이다. AI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이 여전히 우리 몫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AI가 정말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면 스스로 목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최근 AI들은 논리 추론 능력이 발달해서 인간이 부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여러 단계의 작은 목표로 나누기도 하고,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문제 해결에 필요한 중간 단계, 검증 단계를 스스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다. 문제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문제 하나를 특정하려면 다른 일보다 이 문제가 시급하다는 결정이 필요하고, 결정은 편향된 가치관에서 온다.편향은 정당의 모습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정당은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제한된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대도시 주변의 녹지를 유지하자는 쪽과 아파트를 지어 주택을 공급하자는 쪽이 있다면, 그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른 것이고 이것이 바로 편향된 가치관이다. 편향이라 표현하니 나쁜 것처럼 들린다면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도 있다. 시대별로 우선 해결할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 수 없기에 의지가 없고, 의지가 없기에 스스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조종석이 비어 있는 복잡한 기계 장치와 같으며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사람이다. AI라는 강력한 엔진의 운전대는 생각하는 인류가 여전히 쥐고 있다.이 시점에서 생성 AI의 대명사와도 같은 챗GPT를 다시 돌이켜보자. 챗GPT는 챗봇이 아니다. 채팅창은 사람과 말로 소통하기 위한 껍데기일 뿐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머리 좋은 친구가 아니라 무지막지한 실행 능력을 갖춘 요원이다. 채팅만으로는 그 힘을 느끼기 쉽지 않지만 팔다리가 달리면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언어 모델에 인터넷이 붙으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검색해서 활용할 수 있고, 여기에 권한이 붙으면 사용자의 파일을 열어 읽고 쓸 수 있으며, 동료 AI들이 모여서 인간처럼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기계로 된 몸뚱이가 붙으면 로봇이 된다. 대다수의 사람이 AI를 챗봇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감정을 풀어놓는 똑똑한 말상대로 여기는 동안 일각에서는 AI들의 손발을 만들고 있다.일상에서 매일 겪는 일로 옮겨보면 더 와닿을 것 같다. AI에게 맛집을 물어보면, 일차적으로 학습된 데이터에 기반해 답을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데이터를 찾아 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라 환각이 끼어들 확률이 적지 않다. 여기에 웹 검색 기능까지 붙이면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해 맛집을 찾고, 내 일정표에 접근할 권한을 주면 빈 시간을 확인하여 예약을 하고 신규 일정을 기입할 수 있다. AI가 자율주행차에 탑재되어 있다면 내 일정에 맞추어 데리러 와서 약속 장소로 데려다줄 수도 있다.이렇게 단계별로 AI가 강해지는 것은 지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다시 말하지만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할 뿐이다. 따라서 지능이 없다. 지능이 아니라 실행 능력이 증대된 것이다. 인간의 지능에 대응되는 추론 능력이 좋아져도 AI의 역량은 강해지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기능과 행동을 실행하는 기능까지 발전하지 않으면 체감하는 바는 적다. 최근 어떤 AI든 플러그인, 커넥터, MCP, A2A를 통해 눈과 귀, 팔다리를 함께 늘려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일각에서는 오늘날의 AI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이들을 인공생명체로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흥미로운 주장이지만 우리는 의식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뇌세포가 302개뿐인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작은 벌레가 있다.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 뇌세포의 모든 연결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 연결을 통째로 복사해 로봇에 옮겼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고 자극에 반응했다. 뇌세포 사이의 연결만 베껴 무생물인 로봇에 넣었을 뿐인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AI의 도움으로 훨씬 복잡한 초파리의 뇌세포 연결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상공간에서 이 구조를 재현했더니 실세계의 초파리와 똑같이 날고 앉았다. 여기에 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또는 그렇지 않다면 의식은 대체 언제 어디에서 어떨 때 생길까? 뇌세포가 많으면 되는 걸까? 또는 특정 방식으로 연결되면 되는 걸까? 이것조차 아직 답이 없는 마당에 AI에게 의식이 있다 없다 단정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확실한 건 하나다. AI가 안에서 무엇을 하든, 그 결과의 방향과 의미를 판단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AI의 정체는 의식도 인격도 아니다. 이해 없이 결과를 만드는 실행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