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의 진실 : 왜 이번 겨울은 오지 않는가?
전기가 100년 전 거의 모든 것을 혁신했듯이, 오늘날 나는 인공지능이 향후 몇 년 안에 혁신하지 않을 산업을 생각하기 어렵다.
_앤드류 응Andrew Ng, AI 석학, 바이두 전 수석 과학자
세계적인 AI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인 앤드류 응은 AI를 단순히 스마트한 소프트웨어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AI를 새로운 전기라고 명명했다. 100년 전,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전기는 단순히 양초를 전구로 바꾼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전기는 공장의 동력원을 증기기관에서 모터로 바꾸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가전제품을 통해 가사 노동을 혁명적으로 줄였으며, 통신과 방송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 인류 문명의 운영체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앤드류 응의 통찰은 AI가 바로 이러한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 GPT)로서 문명의 기반을 재설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AI는 더 이상 실험실의 전유물이 아니다. 2022년 11월, OpenAI가 챗GPT를 세상에 내놓은 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AI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챗GPT 사용자가 10억 명에 이르고 있고, 전세계 18억 명이 AI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인구 83억 명 중, 20%가 AI를 사용하고 있다. 대기업, 스타트업 할 것 없이 AI를 외치며 밤낮없이 AI 모델을 개발하고, 학습시키고, 미국과 중국은 AI 패권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기업들과 정부는 앞다투어 AX를 외치고 있다. 신문을 펼치고, 포탈에 접속하면, AI 안전성 논란, 피지컬 AI, AI 편향성 문제, AI 국가 경쟁력, 구글과 오픈AI의 경쟁 등 AI 관련 헤드라인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엔비디아 GPU는 품귀 현상을 빚고, 데이터센터는 신전(神殿)처럼 속속 들어서고 있다.
누가 봐도 지금은 AI 시대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AI가 없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렵다. 챗봇은 고객센터를 대신하고,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볼 영상과 살 물건을 골라주며, 자율주행차는 이미 도로를 달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AI'라는 단어만 들어도 지갑을 연다. 학생들은 의대보다 AI와 반도체를 배우려 들고, 정부는 AI 육성 정책을 쏟아낸다. 모든 게 AI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술 혁명의 한가운데에 우리가 서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인공지능, AI의 혁명성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점점 거시경제적 수치가 제시되고 있다. 경제학에서 기술 혁신 또는 혁명의 가치는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변화를 통해 측정된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이라는 물리적 투입량을 늘리지 않고도 기술 혁신과 효율성 개선만으로 생산량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즉, 기술이 정말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냐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범용 기술들조차 총요소생산성 통계에 반영되기까지는 막대한 시차가 존재했다. 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증기기관이 1차 산업혁명을 촉발했을 때조차 초기 수십 년간 영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미미했다. 공장주들이 증기기관을 도입하고 작업 방식을 최적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구가 발명되고 나서 공장의 모든 기계가 전동 모터로 바뀌고 조립 라인이 재배치되어 생산성이 폭발하기까지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가 1987년에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음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던 '솔로우의 역설(Solow Paradox)'은 기술 도입과 생산성 실현 사이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AI는 심상치 않다. AI는 이 시차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있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향후 10년간 AI가 총요소생산성을 0.5%포인트에서 1.3%포인트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단순한 수치를 넘어서서, 지난 20년간 미국의 평균 생산성 증가율이 1%대 초반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노동과 자본 투입을 제외하고, AI라는 단일 요인만으로 생산성을 두 배 이상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상 여러 기술혁명의 수치랑 비교해보자, 연간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증기기관이 0.2%포인트, 전기가 0.5~1.0%포인트, ICT(정보통신기술)가 1.0%포인트였다.
AI는 ‘즉시성’과 ‘확장성’ 덕분에 이전의 기술들처럼 긴 도입기를 거치지 않고, 역대급 속도와 규모로 잠재적인 경제 효과를 투영하고 있다. AI에 대한 투자가 단순히 미래의 비전을 사는 투기가 아니라, 총요소생산성이라는 경제의 근본적 엔진을 교체하는 작업임을 시사해주고 있다.
AI 버블론의 그림자 : 화려한 파티 뒤의 불안감
하지만 이 낙관적 수치와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짙은 회의론도 물론 존재한다. 롤러코스터가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 느끼는 불안감처럼, 각종 언론과 보고서들은 현재의 열풍이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AI 버블’ 또는 ‘세번째 AI 겨울’ 로 끝날 수 있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던진다. 세쿼이아 캐피탈은 ‘AI의 6,000억 달러짜리 질문(AI's $600B Question’)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인프라 투자가 회수되려면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매출이 발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비관론의 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경제성 결여와 막대한 자본지출 부담이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수천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대화 상대를 넘어, 기업의 재무제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준 사례가 얼마나 되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이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매월 30달러의 구독료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많은 영역에서 AI는 여전히 '비싼 장난감'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다.
미 연준 부의장 필립 제퍼슨은 2025년 11월, 독일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AI의 경제적 영향을 ‘이중적’이라고 분석했다. AI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물가를 낮추는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인 동시에,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소비 급증, 고가의 반도체 수요를 유발하여 자본 비용과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는 ‘인플레이션 요인’이기도 하다. 이 두 힘의 줄다리기 속에서, 만약 생산성 향상이 인프라 비용 상승을 상쇄하지 못한다면 AI 경제는 적자 구조를 면치 못하게 된다. 상업적 성공을 확신하기엔 '비용의 벽'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
둘째, 하드웨어의 수명과 회계적 모순이다. 기술 평론가이자 SF 작가인 코리 닥터로는 더욱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그는 “AI 기업들이 주장하는 GPU의 수명 5년은 회계적 허구”라고 일갈한다. 기업들은 고가의 엔비디아 GPU를 자산으로 잡고 5년에 걸쳐 감가상각(비용 처리)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을 위해 24시간 풀가동되는 GPU는 엄청난 발열과 부하를 견뎌야 한다. 닥터로는 실제 현장에서는 고강도 연산으로 인해 GPU가 2~3년, 심지어 54일 만에 소실되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이 경고는 현재 AI 기업들의 재무제표가 ‘시한폭탄’ 위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장부상으로는 자산이 남아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고철이 되어버린 장비들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계산은 수익성이다. 지금까지 투입된 막대한 자본비용을 회수하려면 AI 산업이 단기간 내에 2조 달러 이상의 신규 매출을 올려야 한다. 이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들의 연간 매출을 모두 합쳐야 겨우 달성 가능한 수치다. AI가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단 몇 년 만에 전 세계 GDP의 상당 부분을 빨아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그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도 전에 핵심 자산인 GPU가 타버릴 것이라는 저주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셋째, 기술적 한계와 규범 문제다. 생성형 AI가 가진 태생적 한계인 ‘환각’ 현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난제다.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단어를 나열할 뿐,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변호사가 챗GPT로 작성한 판례가 가짜로 판명되거나, 의료 AI가 존재하지 않는 병명을 진단하는 사례는 AI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또한 AI가 인과관계를 추론하지 못하고 상관관계에만 의존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가트너는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보고서에서 생성형 AI가 이미 ‘기대의 정점’을 지나 ‘환멸의 계곡’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이제 AI의 마법에 환호하기보다, AI가 저지르는 멍청한 실수에 실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고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류는 이미 두 번이나 AI에게 배신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과 좌절의 역사 : 두 번의 AI 겨울이 남긴 교훈
AI의 역사는 곧 ‘기대와 실망의 사이클’ 그 자체였다. 기술적 성과가 조금만 보여도 대중과 투자자는 인간 수준의 지능이 임박했다고 믿었고,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순간 차가운 멸시와 함께 자금줄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AI 겨울’이다.
첫 번째 겨울은 1970년대 중반에 찾아왔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탄생한 이후, 1960년대는 낙관론의 시대였다. 컴퓨터가 체스 게임에서 아마추어 인간을 이기고, 복잡한 대수학 문제를 풀어내자 연구자들은 흥분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버트 사이먼은 1965년에 “20년 내에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냉전 시대, 기술 우위가 곧 생존이었던 미국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DARPA은 이 말만 믿고 자동 번역과 군사 작전 수립을 위한 AI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연구실 밖의 현실은 냉혹했다. 연구실에서 다루던 간단한 장난감 문제Toy Problem를 풀던 알고리즘들은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마주하자마자 멈춰 섰다. 변수가 하나만 늘어나도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조합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의 빈약한 컴퓨팅 파워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정타는 1973년 영국 의회의 요청으로 작성된 라이트힐 보고서였다. 제임스 라이트힐 경은 보고서에서 “지금까지의 AI 연구가 약속한 거창한 목표를 달성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 미국의 국립과학원NAS 역시 기계 번역 프로젝트가 실패했음을 공식 인정했다. 결국 1970년대 중반, 영국과 미국 정부가 지원을 전면 중단하면서 AI 연구소들의 불이 꺼졌다. 첫 번째 암흑기였다.
두 번째 겨울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10여 년의 침묵을 깨고 AI는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인간의 일반 지능을 모방하려는 거창한 꿈을 버리고, 대신 특정 분야 전문가의 지식을 ‘If-Then(만약 ~라면 ~이다)’ 형태의 수천, 수만 가지 규칙으로 입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용적 시도였다. DEC이 도입한 컴퓨터 주문 설정 시스템 'XCON'이 연간 4,000만 달러를 절약해 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업들은 다시 지갑을 열었다(DEC는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의 약자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IBM에 이어 세계 2위의 컴퓨터 회사로 군림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IT 기업이다). 일본은 ‘제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선언하며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AI 전용 하드웨어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유연성의 결여라는 치명적 한계에 부딪혔다. 전문가 시스템은 입력된 규칙 안에서는 똑똑했지만, 규칙에 없는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상식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 또한, 전문가의 머릿속에 있는 암묵지Tacit Knowledge를 끄집어내어 명시적인 규칙으로 변환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식 병목 현상이었다. 결정적으로 시장의 변화가 AI를 덮쳤다. 1980년대 후반, 인텔 CPU를 탑재한 범용 개인용 컴퓨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수억 원을 호가하던 LISP 머신 등 AI 전용 컴퓨터들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다. 애플이나 IBM의 PC가 AI 전용기보다 싸고 빨라진 것이다. 1987년, AI 하드웨어 시장이 붕괴하면서 두 번째 겨울이 도래했다. AI라는 단어는 다시 금기어가 되었고,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AI' 대신 '정보 처리'나 '고급 컴퓨팅' 같은 용어를 써야 했다.
이 두 번의 역사는 명확한 교훈을 준다. 기술적 성과가 경제적 효용을 증명하지 못할 때, 그리고 기대가 현실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설 때, 겨울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이 예고하듯, 생성형 AI 또한 ‘기대의 정점’을 지나 ‘환멸의 계곡’으로 추락하며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할 것인가?
왜 이번에는 다른가 : 겨울이 오지 않는 10가지 구조적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세 번째 겨울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과거의 AI가 연구실의 실험체이거나 특정 산업의 보조 도구였다면, 현재의 AI는 국가전략, 전력망, 자본, 공급망이 결합된 거대한 ‘복잡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AI를 단순한 기술로만 본다면 버블 붕괴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겠으나, AI가 이미 문명의 운영체제이자 기본재로 전환되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스템의 급격한 후퇴는 산업의 손실을 넘어 거시경제와 안보의 붕괴를 의미한다. 따라서 ‘AI 겨울’이라는 현상은 구조적으로 나타나기 어렵다. 여기, 겨울이 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10가지 구조적, 필연적 이유가 있다
① 국가전략자산화 : 멈춤은 곧 굴복이다
AI는 더 이상 민간 기업만의 신기술이 아니다. 국가의 ‘전략자산’이다. 전략자산이란 경제력, 과학기술력, 외교·안보 레버리지와 직결되어 국가의 지속 가능한 우위를 떠받치는 기둥을 의미한다. 과거의 석유, 핵무기, 그리고 현재의 반도체와 같은 반열에 AI가 올라선 것이다. 지금이야 핵무기가 비대칭전력이라고 하지만, AI 가 곧 비대칭전력이 되는 시대가 온다. 이 지위에 오르면 정책 결정의 기준이 바뀐다. 기업의 단기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주권 역량의 극대화가 최우선 순위가 된다. 전략자산으로 분류된 순간, AI 기술에서의 후퇴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외교적 영향력 약화, 기술 식민지화, 안보 취약성 확대로 전이된다. 예를 들어, 올해 7월 연이어 발표된 미국의 AI 액션플랜과 중국의 AI 행동계획을 통해 정부가 AI 개발을 주도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멈춤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지위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속도 조절은 할 수 있어도 방향 전환은 할 수 없다. 이것이 AI 투자가 경기 변동과 무관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다.
AI 겨울이 오지 않는 이유
② 듀얼 유스Dual-Use의 딜레마 :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결합
AI는 두 축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전형적인 ‘이중 용도’ 기술이다. 한 축은 하드 파워Hard Power, 즉 압박 수단이다. AI는 현대전에서 군사, 정보, 사이버 능력의 승수Multiplier로 작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AI 드론의 정밀 타격 능력이나, 이스라엘의 방공 시스템에서 AI의 역할은 이를 증명한다. 또한,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통해 AI 칩 수출을 통제하는 것에서 보듯, AI는 경제적 압박 도구로도 쓰인다.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이 우위를 내려놓을 유인은 없다.
다른 한 축은 소프트 파워Soft Power, 즉 포용 수단이다. AI는 국제사회에서 표준, 규범, 개발 협력의 도구로 작동한다. 선진국들은 파트너 국가들에 AI 인프라와 데이터 센터를 지원하며 디지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AI 서울 정상회의’나 영국의 ‘블레츨리 선언’ 등은 AI 규범을 주도하려는 외교전의 일환이다. 압박과 포용의 양면 도구가 된 이상, 투자와 역량의 최소선은 정치·외교 논리에 의해 강력하게 지지된다. 상업적 겨울이 오더라도 정치적 봄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③ 미·중 패권경쟁과 치킨게임 : 죄수의 딜레마
미·중 AI 경쟁은 냉전기의 군비 경쟁이나 우주 경쟁과 유사한 전형적인 ‘치킨게임’이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치킨게임의 본질은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진다는 것이다. 상대(중국)가 계속 투자하는데 나(미국)만 멈추면 표준 주도권, 데이터 축적, 인재 유입, 안보 우위를 모두 상대에게 내주게 된다. 반대로 상대가 멈출 때 내가 계속 가면 압도적 격차를 벌려 영구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양쪽 모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인가? 상대가 무엇을 하든 나는 ‘투자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것’이다. 상대가 투자하면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해야 하고, 상대가 멈추면 격차를 벌리기 위해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수만 기의 핵탄두가 만들어졌듯, 패권 경쟁 하에서 AI 투자의 전면 중단은 상상하기 어렵다. 안보 논리는 언제나 경제 논리를 압도한다.
④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의 경로 의존성 : 대마불사Too Big to Fail
AI 산업은 돈이 깊게 박힌 산업이다. 과거 소프트웨어 산업은 코드를 지우면 그만이었지만, AI 산업은 거대한 물리적 인프라 위에 서 있다. 하이퍼 스케일러Hyper scaler라 불리는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과 투자은행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2024년 한 해 동안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4대 빅테크 기업이 AI 인프라에 투입한 비용은 약 2,000억 달러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2025년 전망이다. 이 수치는 40% 이상 증가하여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AI가 기획 중인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는 단일 프로젝트 비용만 1,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투자는 단순한 운영비가 아니다. GPU, 서버, 데이터센터 건설, 해저케이블 부설, 냉각 시스템 구축 등 물리적 실체를 형성하는 고정자본이다. 이 자본은 장기 공급 계약과 전력 구매 계약으로 서로 묶여 있어 단순히 “잠깐 멈춰 보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다. 여기에 국가 차원의 전력망 보강, 부지 조성, 송전선로 신설 등 기간산업 투자가 함께 묶여 있다. 이 거대한 시스템을 급정지시키는 것은 곧 이미 투입된 수천억 달러의 자산들이 회수 불가능한 ‘좌초 자산’이 되어 금융 시스템 전체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AI의 하드웨어 생태계는 너무 비대해져서, 이제는 ‘대마불사’의 논리가 적용되는 영역이 된 것이다. 막대한 돈의 논리는 시장의 냉각이 필요할 때조차 '붕괴' 대신 완만한 '리밸런싱'을 선택하게 만든다.
⑤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외부성 : 쏠림의 가속화
AI 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외부성이 폭발적으로 작동한다. 플랫폼, API, 개발 도구들이 상호 운용성을 갖추면서 사용자 층이 두터워질수록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인다. 더 많은 데이터는 모델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성능 향상), 이는 다시 더 많은 사용자를 불러오는 선순환 구조Flywheel를 만든다. 데이터의 양이 품질을 결정하는 AI의 특성상, 선두 주자의 우위는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진다. 작년만 해도 단순히 AI 모델간의 경쟁이었지만, 상호운용성을 지원하는 MCP(AI모델과 AI 도구와의 연결), A2A(AI 에이전트끼리 연결)와 같은 프로로콜이 등장하면서, 이제 생태계 경쟁으로 바뀌었다.
또한 데이터센터 수요가 전력 계획과 결속되면서 AI는 사실상 공공 인프라급 관리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다. 규모, 네트워크, 에너지의 삼중 결속은 시장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여 급격한 추락을 방지한다. 후발 주자가 따라잡기 힘든 진입 장벽이 곧 산업의 버팀목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⑥ 신디케이트 효과와 카르텔 : 무너질 수 없는 삼각편대
현재 AI 산업 구조는 고도로 집중된 과점Oligopoly 상태다. 하드웨어의 엔비디아(설계)와 TSMC(생산), 메모리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그리고 클라우드의 AWS, 애저, 구글 클라우드가 촘촘하게 얽힌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OpenAI, 앤스로픽과 같은 AI 전문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다. 엔비디아의 칩이 없으면 MS의 클라우드가 멈추고, TSMC가 멈추면 엔비디아가 멈춘다. 주요 국가들은 정책적으로 이들과 연동되어 표준과 규범을 통일하고 있다. 불법 담합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 플레이어의 집중과 상호 의존, 장기 공급 계약, 표준 컨소시엄이 결합하면 가격과 물량의 급격한 변동이 자연스럽게 완충된다는 뜻이다. 일종의 ‘신디케이트Syndicate’ 효과다. 겨울을 촉발할 ‘공급 과잉과 수요 붕괴’의 조합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 누군가 무너지려 하면, 연결된 다른 거인이 지탱해 줄 수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⑦ 안보와 군사 분야의 불변하는 수요 : 마르지 않는 샘
방위산업을 떠올려보라. 안보와 군사 분야는 AI 기술에 대한 마르지 않는, 불변하는 수요를 제공하는 핵심 동력이다. 방위산업이 전투기나 미사일을 상업적 이익이 아닌 전쟁 억지력과 동맹 신뢰라는 공공재적 가치로 정당화하는 것처럼, AI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미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 메이븐'이나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사업을 통해 AI는 정찰, 지휘통제, 시뮬레이션, 군수 최적화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서 드론과 AI의 결합이 보여준 파괴력은 이미 증명되었다. 이제 AI 없는 군대는 눈먼 군대나 다름없다.
이러한 안보 수요는 AI 시장의 강력한 하방 경직성을 제공한다. 민간 시장에서 챗봇 구독자가 줄어들거나 기술의 수익성이 일시적으로 악화되더라도, 펜타곤과 각국 국방부의 국가 안보와 생존을 위한 수요는 경기 침체나 경제 상황을 타지 않는다. 막대한 자금력과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이 안보 분야의 특수한 수요 덕분에 AI 기술 개발 및 시장 전체가 급격하게 냉각되거나 붕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⑧ 개발자 생태계의 비가역적 이동 : 돌아갈 다리는 불탔다
핵심은 현장의 도구와 습관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깃허브GitHub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자의 90% 이상이 이미 코파일럿 같은 AI 코딩 도구를 업무에 사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AI로 인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는 개발자들이 코딩 중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스택 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같은 전문 Q&A 웹사이트를 검색하여 답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제 챗GPT나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AI 도구가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스택 오버플로우의 사이트 방문자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 세계 개발자들이 코드를 공유하는 저장소인 깃허브에서는 AI가 생성한 코드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AI가 단순한 검색 도우미를 넘어, 개발자가 직접 코드를 작성하는 대신 AI가 코드를 완성하거나 생성해주면서 개발 생산성을 즉각적으로 높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인간의 검색'에서 'AI의 즉시 생성'으로 대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도구가 표준화되면 조직의 코드 작성, 리뷰, 배포 방식이 AI를 전제로 재편된다. 타자기가 워드프로세서로 대체된 후 다시 타자기로 돌아갈 수 없듯, 개발자 생태계가 AI 전제로 굳어졌기 때문에 산업은 후퇴할 수 없다. 이를 ‘래칫 효과Ratchet Effect’라고 한다. 한쪽으로 돌면 반대쪽으로는 돌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기술의 진보는 비가역적이다. 개발자들은 이미 AI라는 배에 탔고, 돌아갈 다리는 불타버렸다.
⑨ 동맹 외교와 표준 선점 경쟁: 투자의 의무화
미국의 ‘AI 액션 플랜’이나 G7의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는 동맹국들에게 특정 수준의 보안, 데이터 거버넌스, 컴퓨팅 인프라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글로벌 공급망과 공동 R&D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 즉, 글로벌 AI 블록화는 각국 정부와 기업에게 ‘상시적 최소 투자’를 강제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삼성이나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늘리듯, AI 생태계에 머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다. 참여 비용보다 이탈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에, 투자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지속될 수밖에 없다.
⑩ 기본재로의 전환 : 21세기의 전기와 수도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AI가 ‘서비스’가 아니라 ‘기본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은 새로운 인프라였지만, 거품이 낀 것은 그 위의 ‘웹사이트’들이었다. 당시 핵심 질문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팔 것인가?”였다면, 지금 AI는 그 자체가 전기나 수도와 같은 범용 기술이 되었다. AI는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금융 리스크를 분석하며, 제조업의 수율을 높이는 등 모든 산업의 기저 효율을 높이는 동력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기본재화의 핵심은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총요소생산성의 혁명적 변화다. 미 연준 부의장 필립 제퍼슨은 AI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여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AI가 생산성 향상을 통해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디스인플레이션 요인)하는 동시에, 인프라 비용 상승(인플레이션 요인)을 유발하는 이중적 영향을 분석하며 통화정책의 기준 자체가 재설정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AI의 영향이 일시적 충격이 아닌 거시경제의 내장된 상수임을 시사한다.
마치 20세기에 전력망을 장악하는 국가가 패권을 쥐었듯, 21세기에는 AI라는 ‘기본재’를 지배하는 자가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특정 챗봇 서비스가 망할 수는 있어도, 지능을 공급하는 인프라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 우리는 이제 API를 통해 지능을 공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옥석은 가려질 수 있다
물론 과열된 시장에는 반드시 조정이 따른다. 수익 모델을 증명하지 못한 수많은 AI 스타트업이 사라질 것이고, 무리하게 투자한 기업들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겨울’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겨울은 모든 것이 얼어붙고 생명력을 잃는 소멸의 시기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기는 소멸이 아니라, 옥석이 가려지고 인프라가 재배치되는 ‘리밸런싱’의 시기다.
AI 겨울이 오지 않는다는 주장은 단순한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 필연성의 영역이다. AI는 이미 국가 전략 자산, 막대한 자본 투입, 그리고 개발자 생태계의 이동이라는 세 가지 불가역적인 닻을 내렸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미·중 경쟁 속에서 AI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곧 국가적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며, 그 비용은 단기 재정 손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수천억 달러가 투입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라는 인프라는 너무 깊이 박혀 있어, 시스템을 급정지하는 순간 그 매몰 비용(좌초 자산)은 국가 경제에 치명타가 된다. 또한, 한번 AI를 전제로 재편된 노동 생산 방식과 거시경제적 효율성의 기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AI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새로운 문명의 '운영체제'가 된 것이다.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리밸런싱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더욱 효율적이고 단단한 AI 시스템이다. 이 조정기를 거치면서 AI는 단순한 혁신 도구가 아닌, 전기나 수도처럼 당연한 기본재로서 사회 시스템에 완전히 내재화될 것이다. 이 기본재가 작동하는 방식은 초맞춤형, 초효율, 초예측을 목표로 하며, 이는 곧 국가 운영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이제 질문은 ‘AI가 살아남을 것인가?’에서 ‘AI라는 새로운 기본재 위에서, 국가는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거대한 불가역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낡은 관료제와 시스템으로는 미래를 조종할 수 없다. 우리는 AI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고 그 위험을 최소화하며, 시민 개개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통치 구조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AI 네이티브 정부의 존재 이유다. 거품은 꺼질 수 있지만, 이미 깔린 인프라와 변화된 문명의 문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AI 겨울은 오지 않는다. 다만 더 실체적이고 현실적인 AI 네이티브 시대의 서막이 시작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