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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읽을거리를 확인해 보세요.[NeXT 스티브 잡스 02] 잡스, 심장이 잘리다
📅 2026년 9월 7일 · 👁 27
잡스, 심장이 잘리다 매킨토시를 출시한 애플 연례 총회. 스티브 잡스(왼쪽)는 오리지널 매킨토시에, 존 스컬리는 리사 컴퓨터에 손을 얹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1984년 1월 24일. "저는 스티브를 물러나게 할 작정입니다." 애플의 CEO 존 스컬리가 이사회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이 저를 지지해 주시든가, 아니면 새 CEO를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1985년 4월 11일,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 사이에 오래도록 끓어오르던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 날이었다. 그것은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했다. 불과 2년 전, 스티브는 펩시코에 있던 존을 직접 점찍어 손수 영입했다. 어느덧 애플은 매출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고, 스티브는 이사회와 더불어 존이야말로 CEO로서 회사에 "어른의 관리 감독"을 제공할 적임자라 여겼다. 존이 합류한 뒤에도 스티브는 이사회 의장이자 매킨토시 사업부의 수장 자리를 지키며, 애플의 간판 개인용 컴퓨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존과 스티브의 업무 관계는 처음에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로 출발했다. 두 사람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했다. 애플의 기업 전략을 두고도 대부분의 사안에서 신기할 만큼 죽이 잘 맞는 듯 보였다.하지만 회사의 운세가 기울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했다. 애플 컴퓨터는 팔리지 않았다. 존은 판매를 끌어올릴 뚜렷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헤맸다. 그리고 스티브는, 자신의 천재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도무지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얼마 전 한 임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곧 이사회야."하지만 정식으로 선출된 애플 이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이 사태를 두고 존과 스티브 양쪽 모두를 호되게 질책했다. 이제 존은 스티브를 아예 내보내기를 원했다. 그는 스티브를 실무에서 손 떼게 하고 모든 의사 결정 권한을 박탈해 달라고 요구했다.스티브는 격분했다. 그는 이사회를 향해 애플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임을 상기시켰다. 부모님 집 차고에서 맨손으로 일궈 낸 회사가 아니던가. 자신은 애플의 고동치는 심장이자 지적 원동력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그는 항변했다. 하지만 애플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존은 그 자리가 자기 것이기를 바랐다. "나는 스티브에게 일찍이 가져 본 적 없는 큰 권력을 쥐여 주었고, 그렇게 괴물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훗날 존은 그렇게 회고했다.❖불과 1년여 전인 1984년 1월 24일, 스티브는 자신의 역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매킨토시였다. 스티브는 그것을 ‘나머지 우리 모두를 위한 컴퓨터’라 부르며, 그 단순함과 사용 편의성이 개인용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 주장했다. 출시 후 첫 100일간 출하가 호조를 보이며 성공할 기세였다.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매킨토시의 심각한 한계에 질려버렸다. 사용이 간편하긴 했지만, 매킨토시에는 하드 드라이브가 없었고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가격은 2,495달러(2026년 기준 약 8,000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1985년이 되자 애플은 얼리어답터 수요가 바닥났고, 남은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대안인 애플 II로 향했다. 재고는 쌓여갔고, 재정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으며, 회사는 고객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새 제품을 내놓지 못해 고전했다. 업계 전반의 불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애플의 짧은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 1985년 초, 미국 재계를 지배하던 거대 컴퓨터 기업 IBM과 그 모방 업체들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다. 불과 몇 달 전의 3분의 1 수준에서 급등한 것이었다. 이 ‘클론’ 컴퓨터들은 IBM 기기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면서도 값은 훨씬 저렴했다.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이는 회사의 매킨토시 도박이 실패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상황이 너무 악화되자 스티브와 존은 회사를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기 위한 비밀 협상에 들어갔다. 기자 프랭크 로즈에 따르면, GE는 텍사스 출신 사업가 H. 로스 페로에게, 애플 경영진을 만나 인수 대상으로서 회사의 가치를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결국 GE는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페로는 스티브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 인연은 훗날 스티브가 투자자를 필요로 했을 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스티브를 향한 로스의 매료는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애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스티브에게는 온갖 관심을 쏟으면서도 회사를 향한 존의 기여는 못 본 척했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싹트던 경쟁심을 부채질했다. 애플의 불안정한 시장 입지가 그 갈등을 한층 더 키웠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티브는 직원들에게 애플이 메이저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회사는 소비자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스티브는 기업 고객을 위한 더 강력한 컴퓨터를 만든다면 IBM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 환경에 특화된 매킨토시의 업그레이드 버전, 매킨토시 오피스 개발에 착수했다.존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스티브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매킨토시는 원래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문서를 작성하기 위한 단순한 컴퓨터로 설계된 것이었다. 복잡한 요구가 쏟아지는 기업 업무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스티브 자신의 부서에 있는 엔지니어들조차 이 프로젝트가 자신들의 역량 밖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스티브는 개발을 밀어붙였다.스티브는 또한 매킨토시 오피스 출시가, 전년도의 전설적인 ‘1984’ 광고를 재현할 기회를 애플에 준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광고는 오리지널 매킨토시를 소개하며 즉각적인 명작이 된 바 있었다. 애플은 ‘1984’ 광고를 만든 같은 광고 대행사 차이엇데이에 후속 광고 제작을 맡겼다.차이엇데이의 콘셉트는, 매킨토시 오피스를 사지 않는 것은 낭떠러지를 향해 천천히 행진하는 것과 같다고 기업 리더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1985년 1월 20일 슈퍼볼(Super Bowl) 일요일, 스티브와 존은 스탠퍼드 스타디움에 가서 새 광고의 첫 방영을 함께 지켜보았다.‘레밍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4쿼터 중간 휴식 시간에 방영되었다. 디스토피아적 장면은, 눈가리개를 한 정장 차림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낭떠러지를 향해 행진하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하이호(Heigh-Ho)’를 섬뜩한 단조 버전으로 휘파람 부는 것으로 시작된다. 레밍들은 하나씩 낭떠러지 끝에서 발을 내딛고 추락해 죽는다. 줄의 마지막 레밍이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눈가리개를 벗고 심연을 내려다본다.“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침울한 목소리가 말한다. “아니면 늘 하던 대로 관성에 이끌려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화면에 텍스트가 번쩍인다. ‘매킨토시 오피스.’레밍들이 떨어지는 동안, 스탠퍼드 스타디움의 8만 4,000명의 관중은 불편한 침묵에 빠졌다. 애플의 수뇌부 두 사람도 스스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존은 그 반응이 이 제품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고 확신했다.예상대로, 사흘 뒤 애플은 매킨토시 오피스를 출시했지만 언론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판매는 부진했다. 더 나쁜 것은, 애플이 이 제품을 제대로 납품할 수 없으리라는 존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제품의 기술적 핵심이자 애플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파일 서버의 개발이 심각하게 지연되어, 아직 출하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저조한 판매 실적은 이면에서 더 깊은 분열을 불러왔고, 애플 직원들은 파벌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존을 지지하는 세력이 인사부로 몰려가, 스티브가 자신의 관할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스티브는 사사건건 존을 깎아내렸고, 동료들에게 그를 험담하며 그의 모든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스티브의 추종자들은 존이 비전도 없고 기술 제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존이 애플을 또 하나의 지루하고 관료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이처럼 공개적인 반목이 팽배한 가운데, 누가 실제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이에 대응하여, 와튼(Wharton)에서 수학하고 펩시코의 사장을 지낸 존은 애플의 기업 위계 구조를 재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창업 초기부터 애플은 수평적 경영 체제에 의존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애플이 신생 기업이던 시절에는 민첩성과 창의적 아이디어 교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존은 체계의 부재가 혼란과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는 성숙한 애플에는 중앙집권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제품 사업부들을 자신에게 보고하는 단일 최고경영진 체제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계획 자체는 충분히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존에게는 하나의 큰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스티브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다. 그가 제안한 조직 개편안은 스티브를 동급의 세 제품 담당 임원 중 한 명으로 격하하는 것이었다. 존은 자신의 사무실 문 뒷면에 구상을 요약한 도표를 걸어두었는데, 자신이 꼭대기에 위치한 단순한 피라미드 형태였다.스티브는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존에 대한 존경심이 점차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존의 위계질서 확립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고 있었고, 긴장은 계속 고조되었다. 2월 7일, 누군가 익명으로 존과 스티브의 자택을 겨냥한 폭탄 위협 전화를 걸어왔을 때, 이것이 스티브가 보복을 위해 꾸민 것이라는 소문이 애플 내부에 퍼졌다. “소총을 든 경호원들이 저희 집 소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존은 두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해당 위협은 허위로 판명되었으나, 직원들 사이에 도는 의혹은 두 사람 간의 균열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2주 후, 스티브는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에 위치한 세인트프랜시스 호텔에서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 파티를 열었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절대 믿지 마라”라는 말을 즐겨 하던 인물에게, 이 이정표는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스티브가 테이블 카드에 적은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여러분은 제가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만들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앞으로 30년간 그 습관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오늘 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스티브는 파티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으며, 블랙타이 드레스 코드에 맞춰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존은 갈등을 잠시 접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티브를 위한 건배사를 올리며, 그를 ‘기술 분야의 최고 선각자’라 칭했다.그러고 나서 재즈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빨간 턱시도 차림이었다.“저는 엘라 피츠제럴드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한 젊은이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아 제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길 원한다는군요.” 파티 참석자들 가운데 엘라가 스티브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순간을 잊은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설적인 이 여성 가수에게 그것은 그저 또 하나의 공연에 불과했다. 재즈풍으로 편곡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그녀는 건물을 떠났다. 엘라에게 그는 ‘그저 스티브라는 이름의 부유한 남자’였을 뿐이라고, 애플과 매킨토시 전문 잡지 〈맥월드〉의 창립자이자 이 파티를 취재한 데이비드 버넬은 기술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이어받았고, 스티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참석자들에게 그 행사는 어딘가 거리감 있고 슬프게 느껴졌다. 매킨토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마이크 머레이는 파티 전에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스티브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습니다.”그다음 달인 1985년 3월, 존과 스티브는 서로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스티브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존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떠들고 다녔다. 애플의 관리자들은 스티브가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부리는 신경질 탓에 제품 마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존에게 이 혼란을 다잡아 기강을 세우라고, CEO답게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무언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애플의 인사 담당 책임자 제이 엘리엇이 존을 스티브의 사무실로 데려가 문제를 직접 풀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창밖으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실내의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스컬리가 갑자기 스티브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이는 회고했다. 존은 매킨토시 사업부의 저조한 매출을 스티브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를 격렬히 비난했다.스티브도 소리를 지르며 맞받아쳤다. 애플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존이라는 것이었다. 매킨토시 사업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존은 근본적으로 회사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스티브는 주장했다. 그러고는 결정타를 날렸다. 존을 CEO로 영입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것이다.그리고 스티브는 눈물을 터뜨렸다."그 순간 나는 스컬리가 이겼다는 걸 직감했죠." 제이가 말했다. "스컬리가 이사회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할 게 뻔했으니까요. '이 친구는 완전히 통제 불능입니다.'"몇 주 뒤, 운명적인 4월 11일 이사회 전날 밤, 존은 정확히 그렇게 했다. 그는 이사회에, 스티브를 매킨토시 팀 리더 직위에서 해임하고 먼 미래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새로 만들어진 실권 없는 부서로 이동시킬 것을 제안했다.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세 시간 동안, 스티브와 존은 각자의 직업적 생명을 걸고 공방을 벌였다. 밤새 쉬었다가 다음 날 오전 9시, 전날에 이어 또 한 차례 고된 여섯 시간 반을 이사회 앞에서 싸웠다. 존은 이사회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으면 CEO직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친 이사회는 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존이 리더십을 주장하는 데 주저했던 점을 비판하면서도, 미성숙한 혼란의 주범으로 여겨지던 스티브보다는 존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이사회가 스티브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존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스티브가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함은 유지하도록 허용했으나, 매킨토시 팀을 이끄는 직책에서는 해임했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다.스티브는 방을 나서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요.” 회의 후 스티브는 나넷 벅하우트에게 말했다. 나넷은 다름 아닌 존의 비서였다. 누구든(자기 자신을 포함해) 거의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설득해내는 스티브의 그 유명한 능력은, 적수의 비서에게까지 서슴없이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애플 직원들은 반농담으로 이 능력을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 불렀다.“왜 존이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거죠?” 스티브가 흐느꼈다. “그가 이런 짓을 하리라고 믿을 수가 없어요. 그가 저를 배신했어요.”❖1985년 5월 7일, 존과 제이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들에게는 매킨토시 팀을 이끌 스티브의 정신적 후임자가 필요했고, 애플 프랑스의 수장인 멋쟁이 임원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를 설득해 그 역할을 맡기려 했다.스티브가 그랬듯, 장루이에게도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었다. 카리스마가 넘쳤고 외모도 빼어났다. 가죽 재킷을 걸치고 매혹적인 향수를 뿌렸으며, 한쪽 귀에는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달았다. 프랑스판, 〈보그〉에 등장해 프랑스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술 전략을 풀어내는 말솜씨마저 남달랐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애플에 있다 보면 이따금 잊어버리곤 한다. 인생이란 오르가슴의 연속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도 채워진다는 사실을."그리고 스티브와 마찬가지로, 장루이 역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학창 시절 수학을 전공했고, 파리에서 스트립 클럽 운영을 도왔으며, 20대 초반에는 프랑스 여성들의 성생활을 되살려준다는 묘약을 방문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24세에 그는 묘약에서 PC로 방향을 틀어 휴렛패커드 프랑스 지사에 선임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애플이라는 스타트업에 대해 전해 듣고 과감히 자리를 옮겨, 1981년 애플의 프랑스 자회사를 설립했다.장루이의 지휘 아래, 애플 프랑스는 회사에서 가장 성공한 해외 지사로 떠올랐다. 그의 성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존은 장루이를 승진 대상으로 점찍었다. 그를 맥 사업부로 데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루이는 애플의 독소 가득한 경영 다툼에 발을 들이기를 망설였고, 무엇보다 스티브 밑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장루이는 스티브를 두고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어느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잘생겼지만 비극적인 인물. 비전을 품은 괴물이자 탐미주의자. 외롭고, 혐오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존재."존이 처음 장루이에게 매킨토시 사업부 합류를 제안했을 때, 장루이는 스티브가 1년 이내에 사업부 리더십을 넘기겠다는 보증 각서를 요구했다. 당시 스티브는 그 건방진 요구에 격분했다. 하지만 이제 스티브가 쫓겨나는 마당이니, 존은 장루이에게 부서가 결국 그의 것이 될 것이라 약속할 수 있었고, 그때까지 장루이는 매킨토시 마케팅을 맡기로 했다.이 합의 사실을 알게 되자 스티브는 격분했다. 그는 제이에게, 장루이가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고 분에 차서 말했다. 매력적인 프랑스인 침입자가 자기 팀을 빼앗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스티브가 아니었다.스티브는 존에게 완전히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기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고자 했고, 이에 쿠데타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애플이 중국에서 개인용 컴퓨터 판매권을 확보한 후, 스티브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연설해달라는 초청을 수락했다. 그는 존도 동행하고 싶어 할 것이라 예상하고 그를 출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존이 참여를 확정하자, 스티브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존이 홀로 베이징으로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존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스티브는 이사회를 찾아가 자신을 CEO로 임명하도록 설득할 계획이었다. 존이 귀국하면 스티브는 그를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사임을 요구할 작정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존의 출장 전 주, 스티브는 애플 임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견을 떠보았다. 대부분은 이를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 조롱하며, 그가 도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측근인 제이조차 스티브에게 계획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제이는 존이 그 자리에 적합한 유일한 현실적 후보로 남아 있었기에, 이사회가 존의 편에 설 것이라 판단했다.스티브의 계획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가 비이성적인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바로 그 비이성성이야말로, 스티브가 장루이에게까지 계획을 털어놓은 그 놀랍도록 비합리적인 판단의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뜻밖의 동맹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듯하다.존이 중국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스티브는 주차장에서 장루이에게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스티브, 애플은 당신 회사가 아닙니다.” 장루이가 대답했다. “우리 회사입니다.”큰 실수였다. 그날 밤, 애플 법률 고문 알 아이젠스타트의 집에서 열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장루이는 존을 거실로 데려가 스티브의 계략을 폭로했다. 충격을 받은 존은 중국 출장을 취소하고, 다음 날 애플 경영진 및 이사회 회의에 합류했다. 존은 자신의 회고록 《오디세이》에 이 과정을 기술했다.존은 늦게 도착한 스티브를 기다렸다가 회의를 시작했다. 기습이었다. 스티브는 존이 중국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스티브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존은 원목 테이블 너머로 그를 응시했다. “당신이 저를 회사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사실인지 직접 묻고 싶습니다.”긴장감이 감도는 한순간, 스티브는 그저 존을 노려보기만 했다.“저는 당신이 애플에 해가 되는 존재이며, 이 회사를 경영할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가 점차 격앙되며 대답했다. “당신은 정말로 이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까지 애플을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경영할 줄 모르며, 한 번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습니다.”“저는 당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존이 대답했는데, 어린 시절의 말더듬이 다시 목소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 신뢰의 부재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떠나면, 누가 회사를 경영하겠습니까?”“제가 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가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자리에 있는 경영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이 방금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존이 쏘아붙였다. “만약 그들이 당신 말에 동의한다면, 제가 이 회사를 경영하기란 매우 어려울 테니까요.”한 명씩, 회의실에 있던 애플의 고위 임원 여섯 명이 이 수렁 같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 그중 네 명은 다시금 존의 편에 섰고, 나머지 두 명은 중립을 지켰다. 이어서 이사회가 결정을 내렸다. 이사들은 존의 리더십에 불만이 있었으나, 그 불만이 지금 그를 해임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여전히 스티브는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 미성숙하다고 여겼다. 많은 이들이 스티브에게 미리 경고했던 그대로였다.스티브는 테이블 위로 머리를 떨구었다. 허세는 사라졌다. 늘 그에게서 보이던 생기와 자신감도 사라졌다. 그를 이끌던 정신력마저 사라졌다. 애플의 비전가는 두 번째 거부를 당한 뒤 이사회 앞에서 풀이 죽은 채 앉아 있었다.“그렇군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아무도 뒤따르지 않았다.일주일 후인 1985년 5월 31일, 스티브는 새로 만들어진 허울뿐인 부서의 책임자라는 직함으로 공식 유배되었다. “그들은 다른 애플 건물들 대부분의 길 건너편에 작은 건물 하나를 임대해주었습니다.” 스티브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저는, 아니 저희는 그곳을 ‘시베리아’라고 불렀죠.”스티브가 데려갈 수 있었던 인원은 비서 한 명과 경호원 한 명뿐이었다. 안부를 묻는 동료는 거의 없었다. 사내 보고서도 더 이상 그의 책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 시점에 스티브는 모든 곳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에게 보고하던 매킨토시 재무 관리자 수전 반스는 회고했다.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얼마나 철저히 배척당했는지 지켜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잔인한 일이었어요.”실질적으로 할 일이 없었기에, 스티브는 매일 몇 시간씩만 사무실에 나갔다. 그마저도 견디기 어려워지자, 그는 출근 자체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저를 그리워할 사람이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후에 말했다.밤이면 스티브는 집 밖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았다. 성인이 된 이후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애플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긴 낮과, 그보다 더 긴 밤을. 이제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돌아갈 다른 삶도 없었다. 스티브는 한동안 모습을 감추기로 했다. 과거의 삶에서 한 발 물러나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갑자기 그가 사라졌습니다.” 제이는 회고했다. “아무도 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AI 실무 올인원 03] 나만의 반복 업무 자동화 클로드 스킬 만들기
📅 2026년 9월 6일 · 👁 41
매번 같은 지시를 반복하지 않고 한마디만 대충 던져도 AI가 알아서 일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클로드 스킬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합니다. 이번 활용에서는 나만의 업무 자동화 스킬을 만들고, 회의록 요약해달라고 말만 해도 회의록에서 자동으로 액션 아이템을 추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01 클로드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데스크톱 앱을 실행합니다. 그다음 [새 채팅]을 클릭해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세요. 입력창에 다음 프롬프트를 참고해 만들고 싶은 스킬을 설명합니다.02 다음 화면처럼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내 스킬에 복사]를 클릭해 스킬을 설치합니다.03 이제 스킬을 사용하면 됩니다. 새 채팅을 열고 다음 프롬프트처럼 회의 내용을 전달하며 요약해달라고 하세요. 클로드가 스킬 조건을 자동으로 찾아서 회의 내용을 요약합니다.
[교사를 위한 캔바 04] 배움과 재미를 한 번에! 캔바 수업 자료 제작하기
📅 2026년 9월 4일 · 👁 52
[교사를 위한 캔바 04] 배움과 재미를 한 번에! 캔바 수업 자료 제작하기보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수업으로 변화할 차례입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보여주는 자료 중심의 수업은 이제 충분합니다. [PART 03]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참여형 수업 & 영상 제작소에서는 학생들이 캔바에 직접 접속해 친구들과 함께 포스터를 만들고, 화이트보드에서 실시간으로 토론하며, 스스로 영상을 제작하는 학생 주도형 수업 모델을 소개합니다. 캔바의 강력한 협업 기능과 멀티미디어 도구를 활용해 교실을 학생 참여형 창작 공간으로 바꿔보세요.Class 07 행사·축제 홍보 영상 만들기지난 클래스에서 영상을 직접 잘라가며 편집했던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캔바의 AI 기능인 비트 싱크Beat Sync를 활용해보겠습니다. 비트 싱크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화면 전환과 요소 움직임을 자동으로 맞춰주는 기능으로 보다 역동적이고 완성도 높은 영상을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클래스에서는 곧 다가올 교내 체육대회를 주제로 우리 반의 우승을 기원하고 응원 열기를 담은 30초 분량의 티저 영상을 만들어보겠습니다.템플릿 검색 및 기본 설정하기행사의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템플릿을 선택해봅시다.01 캔바 메인 화면 사이드바의 [템플릿]을 누르고 검색창에서 홍보, 스포츠 응원, 스포츠 이벤트, 티저 등을 검색합니다. 검색창 아래 카테고리, 스타일을 선택해 검색 범위를 좁혀 검색할 수도 있습니다. [카테고리]를 누른 다음 [모바일 동영상]을 선택하여 사이즈에 맞는 템플릿으로 검색해봅니다.02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디자인의 템플릿을 선택한 후 [이 템플릿 맞춤 편집하기]를 눌러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번 실습은 시각적인 임팩트가 중요하므로, 굵은 글꼴과 강렬한 색상을 활용한 레이아웃을 선택하세요.장면 구성 및 시각적 재미 더하기본격적으로 영상에서 음악과 박자를 맞추기 전에 영상의 뼈대가 될 핵심 정보와 시각적 요소를 먼저 구성해보겠습니다. 날짜, 장소 등 주요한 정보를 자막으로 정리하고, 다양한 그래픽 요소를 더해 우리 반만의 분위기를 완성해봅시다. 실습 시작 전, 작년 체육대회 사진이나 영상을 타임라인에 미리 배치해두세요.01 각 페이지의 텍스트 내용을 수정하고 적절한 위치에 배치합니다. 실습에서 각 페이지의 텍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수정했습니다.1페이지 : “D-7, 우리는 준비됐다”2페이지 : “땀 흘리고”, “끝까지 뛰고”, “함께 응원한다”3페이지 : “교내 체육대회 ○월 ○일, 모두 함께!”02 각 페이지에 [요소]에서 불꽃, 응원 등 그래픽 요소를 검색해 다음과 같이 배치해보세요. 움직임과 분위기를 더할 수 있는 요소를 활용하면 더욱 생동감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03 추가한 요소와 텍스트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더해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봅시다. 타임라인에서 ➊ 페이지를 선택한 다음 ➋ 에디터 툴바의 [애니메이션]을 눌러 ➌ [Magic Animate] 기능을 활용합니다. 매직 애니메이트Magic Animate는 AI가 디자인 전체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과 전환 효과를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기능으로 여러 효과를 한 번에 적용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04 추천 스타일인 [에너제틱]을 적용하여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더욱 생동감 있게 완성해보겠습니다.색감이나 스타일 등이 전체적으로 역동적이면서도 주제에 맞는 분위기로 연출해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음악 선정 및 비트 싱크 활용하기화면 구성이 완료되었다면 이제 음악의 리듬에 맞춰 영상의 완성도를 높여볼 차례입니다. 비트 싱크 기능을 활용하면 일일이 컷을 자를 필요 없이 음악의 박자에 맞춰 장면 전환과 요소 움직임이 자동으로 조정됩니다. 이는 AI가 음악의 비트를 분석해 영상 클립의 길이를 박자에 맞게 자동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별도의 컷 편집 없이도 리듬감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단 비트 싱크는 10분 미만인 오디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01 앞선 실습에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에디터 화면 왼쪽 사이드바 [요소]의 [오디오]를 누른 다음 검색창에 Sports, Energy, Rock 등을 검색하여 신나는 배경 음악(BGM)을 선택하여 타임라인에 추가합니다.02 ➊ 추가한 음원을 클릭하여 에디터 툴바의 ➋ [Beat Sync]를 누른 다음 ➌ [지금 동기화]를 클릭해 활성화합니다. 그러면 음원에 비트 마커가 표시되며 음악의 박자에 맞춰 영상과 이미지 전환이 자동으로 조정됩니다.[NOTE/] 비트 싱크는 오디오와 영상, 이미지, 요소가 모두 배치된 상태에서 적용하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후 요소를 추가했다면 비트 싱크를 다시 실행해 새 요소까지 비트에 맞춰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Class UP! 캔바, 수업 치트키 수업의 몰입도를 높이는 '무빙' 테크닉영상이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요소마다 움직임을 더해 보세요. 단순한 슬라이드가 생생한 멀티미디어 자료로 변하는 마법 같은 기술을 소개합니다.정적인 화면을 깨우는 애니메이션 효과 알아보기영상이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요소마다 움직임을 더해보세요.페이지 애니메이션 : 슬라이드 전체가 등장할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떠오르기, 닦아내기 등 화면 전환 시 시선을 환기하는 역할을 합니다.요소 애니메이션 : 텍스트나 캐릭터 등 특정 개체만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팝, 네온, 타자기와 같이 핵심 키워드를 강조할 때 효과적입니다.애니메이션 추가 효과(무브먼트) : 개체가 화면에 등장한 뒤에도 멈춰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하고 싶나요? 애니메이션 설정 창 아래의 [추가 효과]를 확인해보세요. 회전, 깜빡거리기, 펄스, 흔들흔들 움직이기 등 지속적인 움직임을 주는 무브먼트 효과를 추가하고 강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조하고 싶은 요소에 펄스 효과를 주면 살아 있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연출이 가능합니다.모션 만들기(Bumblebee) : 캔바의 보석 같은 기능입니다. ➊ [요소]에서 ➋ [애니메이션]의 [애니메이션 만들기]를 선택한 뒤 ➌ [Shift] 키를 누른 상태에서 드래그하여 마우스로 원하는 경로를 그려보세요. 벌이 날아가거나 화살표가 움직이는 복잡한 경로도 손쉽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 ➍ 움직임 스타일, 스피드 효과, 추가 효과를 설정한 후 완료를 누르면 모션 만들기가 완료됩니다. 마우스를 움직일 때 [Shift] 키를 누르면 좀 더 직선에 가까운 깔끔한 경로를 그릴 수 있습니다.본문에서 배운 기술을 더 프로답게 쓰는 '한 끗' 차이 팁작은 차이가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감동의 깊이를 바꿉니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디테일한 설정 방법을 공유합니다.오디오 볼륨의 황금 비율 : 배경 음악과 내레이션이 섞일 때 내레이션이 묻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배경 음악 볼륨은 10~20%, 선생님의 목소리는 80~100%로 설정해보세요. 이때 배경 음악에 페이드 아웃을 적용해 영상이 끝날 때 음악도 서서히 작아지게 하면 훨씬 전문적인 느낌을 줍니다.영상 배경 제거의 고수 : 인물의 배경을 지울 때는 조명이 밝고 인물과 배경의 색상 대비가 뚜렷한 영상일수록 결과가 깔끔합니다. 교실에 크로마키 천이 없다면 단색 벽이나 칠판 앞에서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합성 영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텍스트 프레임 활용 : [요소]의 [프레임]에서 문자 모양 프레임을 사용해보세요. 글자 프레임 안에 수업 관련 영상을 넣으면 글자 속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임팩트 있는 타이틀을 만들 수 있습니다.학생 참여 및 피드백 전략 확인하기영상은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소통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영상으로 주는 피드백 : 학생들의 과제물 위에 캔바의 [자신을 레코딩하기] 기능을 활용해 격려의 한 마디를 남겨보세요. 글로 써주는 피드백보다 훨씬 친근하고 따뜻한 지도가 됩니다.공동 편집 기능 활용 : 모둠별 활동 시 학생들이 동시에 접속하여 각자 맡은 장면을 편집하게 하세요. [공유]에서 액세스 수준을 [링크가 있는 모든 사용자], [편집 가능]으로 설정하면 협업의 즐거움과 영상 제작의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습니다.
[미친 활용 24] 휴대폰 번호의 사라진 앞자리 0 표시하기
📅 2026년 9월 2일 · 👁 56
[미친 활용 07] 자주 쓰는 기능 단축키로 만들기엑셀에서 기능을 사용하고 싶은데 단축키가 기억나지 않거나 메뉴가 어디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죠? 그때마다 번거롭게 찾지 않고 즐겨찾기처럼 손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빠른 실행 도구 모음에 자주 쓰는 기능을 추가하여 나만의 단축키를 만드는 겁니다. 원하는 기능을 단축키 Alt와 키보드의 숫자 키패드 조합으로 빠르게 실행해보세요. 여기서는 병합하고 가운데 맞춤 기능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메뉴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기능에 다양하게 활용해보세요.01 ➊ [홈 → 맞춤 → 병합하고 가운데 맞춤의 목록 버튼 클릭 → 병합하고 가운데 맞춤]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 ➋ [빠른 실행 도구 모음에 추가]를 선택합니다.02 제목 표시줄에 선택한 기능 아이콘이 추가됩니다. [Alt]를 눌러 단축키 번호를 확인합니다.03 ➊ 원하는 범위를 선택하고 ➋ [Alt]와 표시된 숫자(단축키 5)를 함께 누릅니다. 병합하고 가운데 맞춤 기능이 바로 실행됩니다.[미친 활용 08] 표 데이터 작업 단축키 한눈에 모아보기엑셀에서 데이터는 표의 형태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데이터양이 많아지다 보면 방향키를 눌러 데이터의 끝을 찾아간다거나 마우스를 이용해서 데이터의 끝부분을 찾아 클릭한 다음, 다시 키보드로 데이터를 입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작업이 자주 반복되면 피로도 누적되고 효율도 떨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필승 단축키를 소개합니다.표 끝으로 빠르게 이동하기먼저 표의 임의의 셀에서 가장 끝에 있는 셀로 이동하는 단축키입니다. [Ctrl+방향키]를 눌러보겠습니다.01 ➊ 표의 가장 왼쪽 데이터에서 임의의 셀을 선택합니다. ➋ 단축키 [Ctrl+→]를 누르면 데이터의 가장 오른쪽 셀로 이동합니다.02 단축키 [Ctrl+↓]를 누르면 데이터의 가장 아래쪽 셀로 이동합니다. 단축키 [Ctrl+←]를 누르면 데이터의 가장 왼쪽 셀로 이동합니다.원하는 방향으로 셀 범위 선택하기이번에는 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셀의 범위를 선택하는 단축키입니다. [Shift+방향키]를 활용하겠습니다.01 표의 가장 왼쪽 데이터에서 임의의 셀을 선택하고 단축키 [Shift+→]를 누르면 선택한 셀의 오른쪽 방향으로, 단축키 [Shift+↓]를 누르면 선택한 셀의 아래쪽 방향으로 셀이 선택됩니다. 단축키를 누를수록 해당 방향의 셀이 연속 선택됩니다. 02 가장 끝 데이터까지 한 번에 선택하려면 [Ctrl+Shift+방향키]를 누르면 됩니다. 단축키 [Ctrl+Shift+→]를 누르면 셀의 가장 오른쪽 끝 데이터까지, [Ctrl+Shift+↓]를 누르면 셀의 아래쪽 끝 데이터까지 모두 선택됩니다.행과 열 전체 선택하기01 선택된 셀의 해당 행을 한 번에 전체 선택하는 단축키는 [Shift+Spacebar]입니다.02 선택된 셀의 해당 열을 한 번에 전체 선택하는 단축키는 [Ctrl+Spacebar]입니다.표에서 행이나 열을 추가 및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Ctrl++]를 눌러 행을 추가해보고 [Ctrl+-]를 눌러 불필요한 행을 삭제하겠습니다.01 ➊ 표의 임의의 셀이 선택된 상태에서 [Ctrl++]를 누릅니다. ➋ [삽입] 대화상자에서 [행 전체]를 선택하고 ❸ [확인]을 클릭하면 선택한 행 아래에 빈 행이 생깁니다.02 ➊ 표에서 빈 행의 임의의 셀을 선택하고 [Ctrl+-]를 누릅니다. ➋ [삭제] 대화상자에서 [행 전체]를 선택하고 ❸ [확인]을 클릭합니다. 행이 삭제됩니다. [삽입] 대화상자에서 [열 전체]를 선택하면 선택된 셀의 왼쪽에 열이 추가됩니다.행과 열 숨기기와 다시 보이기이번에는 행과 열을 숨겼다가 다시 보이게 하는 단축키입니다.01 ➊ 표에서 숨기고 싶은 데이터 셀을 선택합니다. ➋ 단축키 Ctrl+9를 누르면 해당 행(5행)이 숨김 처리됩니다. 왼쪽 행 번호에서 해당 행의 번호가 숨김 처리된 것을 확인합니다.02 숨긴 행을 다시 보이게 하려면 ➊ 숨긴 행의 위아래 셀을 모두 선택하고 ➋ 단축키 Ctrl+Shift+9를 누르면 됩니다.03 열을 숨겼다가 다시 보이게 하는 단축키도 익혀보겠습니다. ➊ 표에서 숨기고 싶은 데이터 셀을 선택하고 ➋ 단축키 Ctrl+0을 누르면 해당 열(C열)이 숨김 처리됩니다.04 숨긴 열을 다시 보이게 하려면 ➊ 숨긴 열의 왼쪽, 오른쪽 셀을 모두 선택합니다. ➋ 단축키 Ctrl+Shift+0을 누르면 숨김 처리한 열이 다시 나타납니다. 윈도우 10 이상에서는 Ctrl+Shift+0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숨김 처리된 열 머리글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고 [숨기기 취소]를 선택하면 됩니다.
[반도체 투자 지도 01] 삼전닉스, 롤러코스터 장에서 돈벌기
📅 2026년 9월 2일 · 👁 71
한 달 만에 −30%, 다시 +50%, 이 롤러코스터의 정체퇴직금까지 보태 산 메모리 주식이 한 달 만에 30% 빠지고, 또 한 달 만에 50% 오르는 일이 왜 반복되는지. 그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같은 칩인데 가격은 출렁, 왜 그럴까이제 기술 이야기에서 산업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반도체가 어디에 쓰이는지 살펴봤습니다. PC와 스마트폰, 서버, AI 가속기까지 반도체는 거의 모든 디지털 기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나 산업 분석가의 관점에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요? 기업을 분석할 때 자주 사용하는 기본 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PQC 분석입니다.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기업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보려면 세 가지를 봐야 합니다. 제품을 얼마에 파는지(P), 얼마나 많이 파는지(Q), 만드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C)입니다. 반도체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분석할 때는 가격, 즉 P가 매우 중요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일정하게 움직이지 않고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길게 놓고 보면, 가격이 오르는 시기와 떨어지는 시기가 반복됩니다. 호황이 오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늘고, 어느 순간 공급이 너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집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생산을 조절합니다. 그러면 다시 공급이 줄고, 가격이 회복됩니다. 이 흐름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는 이렇게 사이클이 뚜렷할까요?먼저 수요를 봐야 합니다. 반도체의 주요 전방 시장은 PC와 모바일, 서버입니다. 여기서 전방 시장이라는 말은 반도체를 실제로 사서 자기 제품에 넣는 산업을 뜻합니다. PC 업체와 스마트폰 업체, 서버 업체가 반도체의 주요 고객인 셈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PC가 반도체 수요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PC 비중은 낮아졌지만,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수요가 크게 늘어났습니다.PC와 스마트폰은 대표적인 소비자 제품입니다. 즉 B2C 제품입니다. 일반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소비자 제품의 수요는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노트북을 바꾸고, 스마트폰을 새로 사고, 태블릿도 구매합니다.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교체 주기를 늦추고, 새 제품 구매를 미룹니다.2010년대 후반부터는 서버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가 성장하면서 기업들이 서버에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B2B 수요, 즉 기업향 수요입니다. B2B 수요가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소비자 경기의 영향은 줄어든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투자도 경기에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습니다. 경기가 불안하면 기업도 투자를 늦춥니다. 데이터센터 투자도 조정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 수요는 결국 글로벌 경기 사이클과 어느 정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메모리 사이클이 유난히 거친 진짜 이유반도체 전체가 경기 영향을 받지만,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는 사이클의 진폭이 특히 큽니다. 가격이 오를 때는 빠르게 오르고, 떨어질 때는 크게 떨어집니다.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의 제품 특성에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으로 디램과 낸드로 나뉩니다. 제품 종류가 많지 않고, 대량으로 생산됩니다. 이런 제품은 성격이 원자재(commodity)와 비슷합니다. 금과 석유, 철광석 같은 원자재를 떠올려보세요. 원자재는 브랜드보다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좌우합니다. 사려는 사람이 많고 팔 물건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릅니다. 반대로 팔 물건은 많은데 사려는 사람이 적으면 가격이 떨어집니다. 메모리 반도체도 비슷합니다. 같은 사양의 디램이라면, 고객 입장에서 삼성전자의 디램과 SK하이닉스의 디램은 기본적으로 같은 기능을 합니다. 물론 품질과 공급 안정성, 고객 관계 등 차별화 요소는 있지만, 같은 규격의 제품이라면 가격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크게 좌우됩니다.호황기에는 수요가 좋습니다. 고객들이 더 많은 메모리를 사려고 합니다. 가격도 오릅니다. 그러면 생산업체들은 투자를 늘리고 생산량을 확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도체 생산설비를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지금 수요가 좋다고 해서 내일 바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습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공장을 짓고, 장비를 들이고, 공정을 안정화해야 합니다. 반대로 한 번 늘어난 공급은 쉽게 줄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는 시점이 옵니다. 그때부터 가격이 떨어집니다.이것이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의 핵심입니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고, 공급은 늦게 반응하며, 제품은 원자재처럼 가격 경쟁을 받기 때문에 메모리 가격은 크게 출렁입니다.그렇다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어떨까요? 비메모리 반도체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다만 메모리보다 가격 변동폭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입니다. 이유는 제품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메모리 반도체에는 CPU와 GPU, ASIC, 센서, PMIC 등 다양한 제품이 있습니다. 제품 종류가 많고, 고객 요구에 맞춘 설계가 많습니다. 특히 ASIC 같은 주문형 반도체는 고객이 원하는 기능에 맞춰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메모리처럼 “같은 규격이면 거의 같은 제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또한 주요 범용 비메모리 제품은 공급자가 많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CPU나 GPU 시장을 보면 1위와 2위 업체 사이의 기술력과 생태계, 점유율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제품은 단순히 공급이 조금 늘었다고 해서 가격이 급격히 무너지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메모리 반도체도 경기 영향을 받지만, 메모리 반도체처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메모리는 소품종 대량생산 구조라 원자재에 가깝고, 비메모리는 다품종 설계 중심 구조라 제품별 차별성이 더 큽니다. 그래서 메모리의 사이클 진폭이 더 크게 나타납니다. 메모리 vs 비메모리 : 왜 메모리 주가가 더 출렁이나같은 사양이면 어느 회사 디램이든 기능이 같습니다. 이 ‘대체 가능성’이 가격 변동성을 키웁니다.주가가 실적보다 먼저 움직이는 진짜 이유많은 투자자가 메모리 주가가 바닥에서 반등할 때 똑같이 헷갈립니다. 아직 수요가 좋아졌다는 뚜렷한 신호가 없는데, 왜 주가는 먼저 오르기 시작할까요? 답은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에 있습니다. 메모리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절대수요가 아니라 상대수요입니다. 절대수요란 단순히 수요가 많은지 적은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모리 산업에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짜 핵심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가입니다. 즉 ‘수요가 많으냐’가 아니라 ‘공급보다 많으냐’를 봐야 합니다. 메모리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차이에 따라 움직입니다. 수요가 아주 강하지 않더라도 공급이 더 크게 줄어들면 가격은 회복될 수 있고, 반대로 수요가 나쁘지 않아도 공급이 너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집니다. 그래서 업황의 바닥에서는 수요 개선 신호보다 공급 축소 신호가 먼저 중요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들이 감산을 발표하거나, 설비투자를 줄이거나, 생산라인 전환으로 공급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신호가 나오면, 시장은 ‘이제 최악은 지나가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바로 이때 주가가 업황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투자자가 사이클의 바닥을 가늠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화려한 수요 전망이 아니라 ‘공급이 줄고 있다’는 신호입니다.과거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러 차례 나타났습니다.2011~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속의 반등먼저 2011~2012년 반등 국면을 보겠습니다. 당시에는 남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기가 오랜 기간 불안했습니다. 전방 수요도 부진했고,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습니다. 그런데 주가의 반등 변곡점은 2011년 8월 무렵 형성됐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일부 메모리 업체들의 감산과 공급 축소 소식이 나타났습니다.2015~2016년, 중국 위안화 위기 속의 변곡점2015~2016년에도 비슷했습니다. 2013~2014년 호황 이후 2015년에는 유럽 경기 불안과 중국 경기 둔화(위안화 위기)가 겹치며 수요 부진이 이어졌습니다. 해외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에서도 전방 수요 둔화가 확인됐습니다. 2015년 하반기부터 업체들의 보수적 투자와 생산 라인 전환(선단 기술 전환) 과정에서의 생산량 축소가 발생하며 공급 축소 움직임이 나타났고, 2016년 상반기에도 공급 축소 신호가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2016년 5월부터 주가의 반등 변곡점이 만들어졌습니다.2018~2019년, 미중분쟁과 업황 반등2018~2019년에도 마찬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서버 수요가 이끌었던 장기 호황 이후, 2018년 하반기부터 서버 수요 둔화 우려가 현실화됐습니다. 여기에 미중분쟁과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업황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주가의 반등 변곡점은 2019년 초를 기점으로 형성됐습니다. 마이크론의 감산 발표, 이어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수적 투자 계획 및 전환투자(선단 공정 전환에 따른 일시적 공급 축소) 등이 전개된 것이 핵심 배경이었습니다.과거 메모리 주가 반등의 공통 신호 : ‘공급 축소’가 먼저였다세 차례 모두 수요 회복보다 ‘공급 축소 신호’가 주가 바닥을 먼저 만들었습니다.앞서 정리한 사례들이 말해주는 결론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주가의 바닥은 수요 회복보다 공급 축소 신호에서 먼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반대로 주가가 고점을 형성할 때의 모습도 비교해볼까요. 일반적으로 호황의 정점에서는 향후 좋은 수요가 이어진다는 전망 하에서 메모리 공급사들은 공급을 확대하고 이러한 결과로 이익이 극대화됩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계속해서 경신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점에 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반도체 수요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기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많은 경기 지표들이 강한 호황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불황으로 전환하게 되는 시점에서 미래에 대한 수요 전망은 단기간에 돌아섭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특히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관점이 중요한 제품입니다. 낙관적 수요 전망 속 형성된 공급 확대 전략이 다시 바뀌고 이를 시행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 호황의 정점 부근에 도달한 이후 경기의 피크아웃을 야기하는 매크로 이벤트(최근에는 전쟁이 가장 대표적 사례입니다)가 발생할 때, 주가는 사전적으로 수요 축소를 우려하며 움직입니다. 사람이 결정하는 공급 전략은 필연적으로 수요 대비 후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주가와 실적의 시차를 만들어냅니다.물론 이것이 항상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메모리 산업에서는 공급 축소가 업황 바닥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신호이며, 매크로 이벤트가 업황의 고점을 형성할 유력 후보라는 점은 기억해두실 필요가 있습니다.계약가와 현물가, 두 개의 가격을 함께 보라메모리 반도체를 볼 때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가격 지표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산업에서는 평균판매가격, 즉 ASP를 봅니다. 메모리 산업에서도 ASP가 중요합니다. 이 ASP는 주로 생산업체와 고객사가 협상해서 정하는 계약가, 또는 고정가와 연결됩니다.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생산업체가 서버 업체와 PC 업체, 스마트폰 업체와 일정 기간의 물량과 가격을 협상합니다. 이때 정해지는 가격이 계약가입니다. 품목별로 협상 주기는 다르지만, 보통 1~3개월 정도 앞서 계약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에는 또 하나의 가격이 있습니다. 바로 현물가입니다.현물가는 그때그때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입니다. 모든 고객이 생산업체와 직접 장기 계약을 맺어 대규모 물량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디램이나 낸드를 사서 모듈 제품을 만드는 업체와 중간 유통사, 단기 물량이 필요한 구매자들은 현물 시장에서 제품을 거래합니다. 이때 형성되는 가격이 현물가입니다. 계약가가 대형 고객과 생산업체 사이의 협상 가격이라면, 현물가는 당장 시장에서 사고파는 가격에 가깝습니다. 전통시장에 비유하면, 계약가는 식당이 도매상과 미리 정해놓은 납품 가격이고, 현물가는 오늘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시세와 비슷합니다.계약가 vs 현물가 : 실적은 계약가, 온도는 현물가둘 사이의 시차가 바로 ‘주가 선행성’이 생기는 구간입니다.디램 현물가와 SK하이닉스 주가 추이(2016~2026). 특정 한 해의 급등이 아니라, 사이클마다 ‘현물가가 먼저 움직이고 주가가 뒤따르는’ 패턴이 반복돼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그래서 메모리 반도체를 분석할 때는 계약가와 현물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계약가는 기업 실적에 직접 반영되는 가격입니다. 현물가는 시장의 단기 온도를 보여주는 가격입니다. 실적을 보려면 계약가가 중요하고, 변곡점을 빠르게 감지하려면 현물가가 중요합니다.
[NeXT 스티브 잡스 01] 넥스트, 애플을 구한 빈칸
📅 2026년 9월 2일 · 👁 72
넥스트, 애플을 구한 빈칸 새 공장을 둘러보고 넥스트 팀원들과 함께 임대한 스쿨버스로 돌아오는 스티브 잡스.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1987년. 때로는 내기에서 진 것이 뜻밖의 행운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버펄로의 어느 바에서 술을 잔뜩 마신 채 당구를 치다가, 나는 마지막 8번 공을 넣으려다 그만 흰 공까지 빠뜨리고 말았다. 본전을 되찾겠다며 판돈을 두 배로 올렸지만 결과는 또 한 번의 패배였다. 빈털터리가 된 데다 달리 방법도 없던 내게 떨어진 벌칙은 승자의 배불뚝이 난로를 싣고 실리콘밸리까지 운전해 가는 일이었다. 1976년 여름, 대학을 갓 졸업한 때였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첫 직장을 잡아 소니의 업무용 녹음 장비를 파는 일을 시작했다. 바로 그 주에 애플은 스티브 부모님 집 차고를 벗어나 처음으로 사무실을 임대했는데, 공교롭게도 소니 사무실 바로 옆 건물이었다. 각자의 사무실 앞에 서 있다가, 스티브와 나는 자연스레 대화를 트게 되었다. 1977년 4월 7일의 일이다. 그 시절 그는 머리가 제법 길고 기름졌으며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버켄스탁 샌들에 구멍 난 청바지 차림이었고, 한눈에 봐도 샤워가 필요해 보였다.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소니의 제품과 브랜드에 호기심을 보였고, 나는 그에게 제품 브로슈어를 건넸다. 그가 브로슈어를 넘기다가 왜 우리 제품이 경쟁사보다 비싼지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소니니까요.”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가 자리를 뜨면서 브로슈어를 손가락으로 비벼 종이의 질을 가늠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세월이 흐르며 내가 점점 높이 사게 된 그의 한 가지 기질을 알려 주었다. 바로 집중력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걷어 내고 오직 상대만을 바라보는 특유의 방식이 있었다. 사업상의 문제와 마주했을 때도 그는 군더더기를 쳐 내고 문제를 그 본질까지 깎아 내릴 줄 알았다. 그리고 로고나 종이의 질 같은 디자인 문제에 관해서라면, 그는 언제나 까다로운 비평가였다. 후에 애플과 넥스트에서 함께 일하면서 나는 그와 전 세계를 다녔다. 어디를 가든 스티브의 집중력은 놀라웠다. 다른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그는 차를 보고는 그 디자인의 어떤 점을 내게 짚어주곤 했다. 펜더의 곡선이 드리우는 그림자, 헤드램프의 형태, 심지어 특정 모델에 가장 어울리는 색상까지. 그는 모든 사물에서 디자인적 통찰을 흡수하는 사람이었고, 늘 탁월함을 추구했다. 그의 집중력은 내가 함께 일해본 그 누구와도 그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초능력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점이 그렇듯, 그 집중력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때로 그는 자신의 집중력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곤 했다. NeXT 시절에는 그 집중력 탓에 엉뚱한 일들에 광적으로 매달렸고, 회사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완벽을 향해 무섭게 내달렸다. 그래서 그의 밑에서 일하기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까다로운, 게다가 수시로 바뀌는 잣대에서 누구도 예외로 두는 법을 몰랐다. 상대가 식당 종업원이든, 회사의 최고위 임원이든, 대학 총장이든 마찬가지였다. 그는 타인에게 너그러움을 베푸는 일에 서툴렀다. 첫 만남 이후 몇 년간, 애플이 성장하면서 스티브와 나는 때때로 마주쳤다. 이야기는 언제나 소니 제품에 관한 것이었다. 그 브랜드와 기술을 향한 그의 호기심은 한결같았다. 1980년 12월, 소니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발표한 날, 스티브는 나를 애플에 영입했다. 그즈음 나는 소니의 영업사원으로서 실리콘밸리의 거의 모든 회사를 돌아본 뒤였으며, 기업공개(IPO)로 입증된 애플의 폭발적 성공만큼이나 애플이라는 문화 속에 몸담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라는 새로운 산업의 역학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내가 스티브에게 그래픽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애플이 사람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연봉을 낮추면서까지 입사했다. 그렇게 10년에 걸친 동료 관계와 우정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내 인생의 항로를 바꾸어놓았다. 애플에서 나는 리사(Lisa) 컴퓨터를 개발하던 개인 사무 시스템 사업부의 시장 개발 매니저로 시작하여, 끝내는 애플의 교육 마케팅 부서를 설립하게 되었다. 나는 스티브가 이끌던 초기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몇 년을 근무하며 애플 유니버시티 컨소시엄과 ‘마음을 위한 바퀴’ 이니셔티브의 브랜딩을 담당했다. 이 컨소시엄은 1984년 늦여름, 단 한 달 만에 약 5만 대의 매킨토시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었으며, 이를 통해 애플은 고등교육 시장의 주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교육 사업은 애플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 1985년까지 애플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또한 이 사업은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사례이기도 했다. 1985년 초, 스티브는 애플에서 쫓겨났다. 그해 말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저는 고등교육에 초점을 맞춘 새 회사를 만들 겁니다.” 그가 말했다. “저와 함께해줬으면 합니다.” 그날 나는 우드사이드에 있는 스티브의 집에서 그를 만나 산책에 나섰다. 산책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나중에 넥스트가 될 회사의 비전을 내게 설명했다. 애플에서 함께한 작업을 기반으로 고등교육 기관을 위한 강력한 컴퓨터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애플에서 쌓은 인맥과 시장 전문 지식이 이 사업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스티브의 새 회사에 합류하겠다는 결정은 서류상으로는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애플에서 교육 마케팅을 이끄는 좋은 자리에 있었다. 스타트업을 세우는 것은 분명한 모험이었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았고, 스티브는 아직 전설적인 명성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합류하지 않았는데 그 회사가 성공한다면,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는 셈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나 없이 실패한다면, 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을 평생 품게 될 터였다. 결국 나는 합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안에 다섯 명의 공동 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떠나, 가구도 거의 없는 스티브의 집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회사를 시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신념으로 뭉쳤지만, 실질적인 계획은 없었다. 서로밖에 없었고, 각자의 기술과 축적된 경험, 그리고 스티브의 개인 은행 계좌에 있는 약간의 종잣돈이 전부였다. 참으로 짜릿한 시기였다. 스티브에 관해, 그리고 애플에 관해 수많은 책과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대부분은 스티브 인생의 이 시기와 넥스트의 진짜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으며, 대개는 대충 훑고 지나가거나 미화했다. 우리가 넥스트에서 자주 이야기했듯이, 회사를 키우는 것은 텀블러 안에서 돌을 연마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친 혼합물이 반짝이고 잘 맞물려 돌아가는 팀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늘 매끄럽지만은 않다. 서로 부딪히고, 부침을 겪는다. 기존의 서사들은 넥스트 시절의 고된 경험과 시행착오를 간과함으로써, 스티브의 리더십 발전과 그 궁극적 결과 모두에 영향을 끼친 이 중요한 시기를 의미 있게 다루지 못했다. 이때 만들어진 넥스트의 핵심 기술은 1990년대 후반 애플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아마도 이 부분을 건너뛰려는 충동의 일부는, 뒤에 설명되겠지만, 넥스트가 사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넥스트는 성공할 모든 재료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고, 세계적 수준의 팀을 보유했으며, 업계의 다른 누구보다 몇 년은 앞선 기술을 구축하고 있었다. 역사가 달리 흘러갔더라면, 그리고 스티브가 좀 더 기꺼이 조언을 받아들였더라면, 넥스트와 그 운영체제 넥스트스텝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가 결국 차지한 자리를 대신해 업계 표준이 될 수 있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그 대신 우리는 끊임없는 난관에 직면했다. 우리가 만든 컴퓨터는 가격이 비쌌고, 시장 출시는 늦었으며, 출시된 뒤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한편 스티브는 중요한 거래처 및 유통 파트너와의 관계를 본인 손으로 망가뜨렸다. 넥스트는 늘 파산 직전에 있었고, 끊임없이 변하는 스티브의 기준에 휘둘렸다. 나를 포함한 초기 팀원 다수가 그에 대한 좌절감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넥스트는 이후 애플과 기술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난 모든 일의 보이지 않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책은 그러한 성취가 어떻게 모습을 갖추어 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스티브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성장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으며, 우리의 협업을 통해 나 자신의 성장도 경험했다. 그것은 우리 사이의 능동적인 밀고 당기기였다. 애플에서 나는, 우리의 업무 관계가 성공하려면 그를 동등하게, 명확하고 직접적이며 단호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스티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넥스트를 시작했을 때, 스티브는 자신의 대중적 존재감을 키우는 데 에너지를 쏟고 싶어 했다. 나는 그에게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팔 수 있는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스티브 자신이 곧 제품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어떻게 내세울지 신중해야 했다. 나는 스티브의 페르소나를 가장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그에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부여하는 것이라 믿었으며, 그것은 그가 늘 나서서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스티브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어느 날, 우리의 첫 사무실을 임대했던 스탠퍼드 리서치 파크 언덕에서 산책하며 이 주제를 논의하던 중, 나는 그가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스티브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 말해보라고 내가 재촉하자,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가끔, 당신이 내 자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당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 나의 독립 연구와 졸업 논문은 카리스마적 리더십 이론을 다루었다. 당시 막 비준된 수정헌법 제26조가 투표권을 열여덟 살까지 확대한 일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밥 딜런은 물론, 흑인 민권 운동과 여성 인권 운동을 이끈 거인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이끌었는지 파고들게 되었다. 그들이 부린 마법, 그 이면의 방법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들은 어떻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면서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늘려 갔을까? 그 과정에서 내가 발견한 한 가지는 이것이다. 세상을 바꾼 리더들은 언제나 자신의 출발점이 된 이야기, 혹은 핵심이 되는 단 하나의 개념으로 거듭 되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스티브에게 그 핵심은 매킨토시였다. 1984년에 출시된 매킨토시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 이전에 사용자들은 마우스가 아니라, 컴퓨터가 실행할 명령어를 직접 타이핑해야 하는 커맨드라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컴퓨터와 상호작용해야 했다. 매킨토시는 개인용 컴퓨팅을, 출시 당시의 광고 문구 그대로 ‘나머지 우리 모두를 위한(for the rest of us)’ 것으로 만들어 누구나 다가갈 수 있게 했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넥스트는 스티브가 매킨토시로 돌아가 카리스마적 리더로 부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매킨토시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제품군은 매력 없는 선택지만 어수선하게 널려 있었고, 운영체제는 한참 뒤처진 상태였으며, 애플은 회사 자체가 파산 직전이었다. 1997년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는 유능한 팀과 함께 넥스트의 기술을 매킨토시에 녹여 냈고, 그렇게 매킨토시를 다시 선두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넥스트가 있었기에 매킨토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넥스트가 있었기에 스티브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새길 수 있었다. 1990년 넥스트를 떠난 후, 나는 바깥에서 스티브가 애플의 놀라운 변신을 이끌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편 넥스트에서의 경험과 스티브와의 관계는 내 평생 모든 일의 근본적인 토대로 남아 있었다. 이는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여, 스티브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가 애플 및 컴퓨터 산업 전반과의 사업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돕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반독점 소송을 마무리 짓는 과정에 있었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거의 17년을 보냈다. 이후 2018년부터 2025년까지 컴퓨터 역사 박물관의 운영을 맡아 이끈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컴퓨팅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공동의 이해를 발전시키고, 그것이 인간의 삶과 사회 전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하는 데 헌신했다. 나는 넥스트가 그 이야기의 주요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넥스트 재직 시절 수집한 이 책의 원천 자료들을 공유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그 자료들이 제프리 케인의 유능한 손에서 생명을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 넥스트의 일원이었던 것은 영광이었으며, 우리의 시련과 고난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 여러분도 가치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나와, 넥스트를 거쳐간 직원들이 그것을 직접 겪으며 얻었던 것처럼. 제프리에게 넘기기 전에, 모든 기술 이야기에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회사라는 가족이 아니라, 창업자와 건설자들이 위대한 일을 해나갈 때 그들을 지탱해주는 아내, 남편, 자녀, 파트너, 부모,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가족 구성원들 말이다. 나 역시 내 가족이 없었더라면 이 서문을 쓰고 있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스티브 역시 그의 가족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되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넥스트를 처음 설립했을 때, 스티브에게는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때때로 스티브와 나 사이에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내게는 아내와 어린 아들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스티브가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휴일이든 가족 생일이든 가리지 않고 경영진이 주말 회의에 직접 참석할 것을 종종 요구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선을 그으려 했다. 내가 회사를 떠난 후, 스티브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후기 넥스트 시절, 그는 결혼했고, 둘째와 셋째, 넷째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웠다. 같은 시기에 그의 양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났다. 1993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 상실은 스티브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는 나를 장례식에 초대했다. 참석자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우리는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늘 그랬듯 스티브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소와 다른 첫마디를 꺼냈다. “당신이 옳았어요.” 그가 예전 그대로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엇이요?” 나는 넥스트를 함께 세우며 보낸 수년간의 논쟁과 고군분투를 떠올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가족이요.” 그가 말했다. 그날 아침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품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지만, 오직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인생의 교훈에 대해 큰 열정으로 대화했다. 스티브의 성공과, 궁극적인 애플의 성공은 이러한 균형, 그리고 그가 가족으로부터 배운 타인에 대한 헌신과 신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교훈이다. 대니얼 레윈 컴퓨터 역사 박물관 전 CEO 넥스트 컴퓨터 공동 창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