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심장이 잘리다
매킨토시를 출시한 애플 연례 총회. 스티브 잡스(왼쪽)는 오리지널 매킨토시에, 존 스컬리는 리사 컴퓨터에 손을 얹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1984년 1월 24일.
"저는 스티브를 물러나게 할 작정입니다." 애플의 CEO 존 스컬리가 이사회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이 저를 지지해 주시든가, 아니면 새 CEO를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
1985년 4월 11일,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 사이에 오래도록 끓어오르던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 날이었다. 그것은 충격적인 반전이기도 했다. 불과 2년 전, 스티브는 펩시코에 있던 존을 직접 점찍어 손수 영입했다. 어느덧 애플은 매출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고, 스티브는 이사회와 더불어 존이야말로 CEO로서 회사에 "어른의 관리 감독"을 제공할 적임자라 여겼다. 존이 합류한 뒤에도 스티브는 이사회 의장이자 매킨토시 사업부의 수장 자리를 지키며, 애플의 간판 개인용 컴퓨터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존과 스티브의 업무 관계는 처음에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로 출발했다. 두 사람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했다. 애플의 기업 전략을 두고도 대부분의 사안에서 신기할 만큼 죽이 잘 맞는 듯 보였다.
하지만 회사의 운세가 기울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틀어지기 시작했다. 애플 컴퓨터는 팔리지 않았다. 존은 판매를 끌어올릴 뚜렷한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헤맸다. 그리고 스티브는, 자신의 천재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도무지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얼마 전 한 임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곧 이사회야."
하지만 정식으로 선출된 애플 이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이 사태를 두고 존과 스티브 양쪽 모두를 호되게 질책했다. 이제 존은 스티브를 아예 내보내기를 원했다. 그는 스티브를 실무에서 손 떼게 하고 모든 의사 결정 권한을 박탈해 달라고 요구했다.
스티브는 격분했다. 그는 이사회를 향해 애플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임을 상기시켰다. 부모님 집 차고에서 맨손으로 일궈 낸 회사가 아니던가. 자신은 애플의 고동치는 심장이자 지적 원동력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그는 항변했다. 하지만 애플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존은 그 자리가 자기 것이기를 바랐다. "나는 스티브에게 일찍이 가져 본 적 없는 큰 권력을 쥐여 주었고, 그렇게 괴물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훗날 존은 그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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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여 전인 1984년 1월 24일, 스티브는 자신의 역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매킨토시였다. 스티브는 그것을 ‘나머지 우리 모두를 위한 컴퓨터’라 부르며, 그 단순함과 사용 편의성이 개인용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 주장했다. 출시 후 첫 100일간 출하가 호조를 보이며 성공할 기세였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매킨토시의 심각한 한계에 질려버렸다. 사용이 간편하긴 했지만, 매킨토시에는 하드 드라이브가 없었고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가격은 2,495달러(2026년 기준 약 8,000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1985년이 되자 애플은 얼리어답터 수요가 바닥났고, 남은 소비자들은 더 저렴한 대안인 애플 II로 향했다. 재고는 쌓여갔고, 재정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으며, 회사는 고객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새 제품을 내놓지 못해 고전했다. 업계 전반의 불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애플의 짧은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 1985년 초, 미국 재계를 지배하던 거대 컴퓨터 기업 IBM과 그 모방 업체들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다. 불과 몇 달 전의 3분의 1 수준에서 급등한 것이었다. 이 ‘클론’ 컴퓨터들은 IBM 기기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면서도 값은 훨씬 저렴했다.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이는 회사의 매킨토시 도박이 실패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상황이 너무 악화되자 스티브와 존은 회사를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기 위한 비밀 협상에 들어갔다. 기자 프랭크 로즈에 따르면, GE는 텍사스 출신 사업가 H. 로스 페로에게, 애플 경영진을 만나 인수 대상으로서 회사의 가치를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다. 결국 GE는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페로는 스티브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 인연은 훗날 스티브가 투자자를 필요로 했을 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스티브를 향한 로스의 매료는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애플 주변의 많은 이들이 스티브에게는 온갖 관심을 쏟으면서도 회사를 향한 존의 기여는 못 본 척했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싹트던 경쟁심을 부채질했다. 애플의 불안정한 시장 입지가 그 갈등을 한층 더 키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티브는 직원들에게 애플이 메이저 리그에서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회사는 소비자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스티브는 기업 고객을 위한 더 강력한 컴퓨터를 만든다면 IBM에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 환경에 특화된 매킨토시의 업그레이드 버전, 매킨토시 오피스 개발에 착수했다.
존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스티브의 계획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매킨토시는 원래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문서를 작성하기 위한 단순한 컴퓨터로 설계된 것이었다. 복잡한 요구가 쏟아지는 기업 업무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스티브 자신의 부서에 있는 엔지니어들조차 이 프로젝트가 자신들의 역량 밖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스티브는 개발을 밀어붙였다.
스티브는 또한 매킨토시 오피스 출시가, 전년도의 전설적인 ‘1984’ 광고를 재현할 기회를 애플에 준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광고는 오리지널 매킨토시를 소개하며 즉각적인 명작이 된 바 있었다. 애플은 ‘1984’ 광고를 만든 같은 광고 대행사 차이엇데이에 후속 광고 제작을 맡겼다.
차이엇데이의 콘셉트는, 매킨토시 오피스를 사지 않는 것은 낭떠러지를 향해 천천히 행진하는 것과 같다고 기업 리더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1985년 1월 20일 슈퍼볼(Super Bowl) 일요일, 스티브와 존은 스탠퍼드 스타디움에 가서 새 광고의 첫 방영을 함께 지켜보았다.
‘레밍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4쿼터 중간 휴식 시간에 방영되었다. 디스토피아적 장면은, 눈가리개를 한 정장 차림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낭떠러지를 향해 행진하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하이호(Heigh-Ho)’를 섬뜩한 단조 버전으로 휘파람 부는 것으로 시작된다. 레밍들은 하나씩 낭떠러지 끝에서 발을 내딛고 추락해 죽는다. 줄의 마지막 레밍이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멈추더니 눈가리개를 벗고 심연을 내려다본다.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침울한 목소리가 말한다. “아니면 늘 하던 대로 관성에 이끌려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화면에 텍스트가 번쩍인다. ‘매킨토시 오피스.’
레밍들이 떨어지는 동안, 스탠퍼드 스타디움의 8만 4,000명의 관중은 불편한 침묵에 빠졌다. 애플의 수뇌부 두 사람도 스스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존은 그 반응이 이 제품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한다고 확신했다.
예상대로, 사흘 뒤 애플은 매킨토시 오피스를 출시했지만 언론의 반응은 미지근했고 판매는 부진했다. 더 나쁜 것은, 애플이 이 제품을 제대로 납품할 수 없으리라는 존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제품의 기술적 핵심이자 애플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파일 서버의 개발이 심각하게 지연되어, 아직 출하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저조한 판매 실적은 이면에서 더 깊은 분열을 불러왔고, 애플 직원들은 파벌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존을 지지하는 세력이 인사부로 몰려가, 스티브가 자신의 관할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스티브는 사사건건 존을 깎아내렸고, 동료들에게 그를 험담하며 그의 모든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스티브의 추종자들은 존이 비전도 없고 기술 제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존이 애플을 또 하나의 지루하고 관료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
이처럼 공개적인 반목이 팽배한 가운데, 누가 실제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에 대응하여, 와튼(Wharton)에서 수학하고 펩시코의 사장을 지낸 존은 애플의 기업 위계 구조를 재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창업 초기부터 애플은 수평적 경영 체제에 의존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애플이 신생 기업이던 시절에는 민첩성과 창의적 아이디어 교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존은 체계의 부재가 혼란과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는 성숙한 애플에는 중앙집권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제품 사업부들을 자신에게 보고하는 단일 최고경영진 체제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계획 자체는 충분히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존에게는 하나의 큰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스티브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었다. 그가 제안한 조직 개편안은 스티브를 동급의 세 제품 담당 임원 중 한 명으로 격하하는 것이었다. 존은 자신의 사무실 문 뒷면에 구상을 요약한 도표를 걸어두었는데, 자신이 꼭대기에 위치한 단순한 피라미드 형태였다.
스티브는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존에 대한 존경심이 점차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존의 위계질서 확립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고 있었고, 긴장은 계속 고조되었다. 2월 7일, 누군가 익명으로 존과 스티브의 자택을 겨냥한 폭탄 위협 전화를 걸어왔을 때, 이것이 스티브가 보복을 위해 꾸민 것이라는 소문이 애플 내부에 퍼졌다. “소총을 든 경호원들이 저희 집 소파에서 잠을 잤습니다.” 존은 두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해당 위협은 허위로 판명되었으나, 직원들 사이에 도는 의혹은 두 사람 간의 균열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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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후, 스티브는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에 위치한 세인트프랜시스 호텔에서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 파티를 열었다. “서른이 넘은 사람은 절대 믿지 마라”라는 말을 즐겨 하던 인물에게, 이 이정표는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스티브가 테이블 카드에 적은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여러분은 제가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만들어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앞으로 30년간 그 습관들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오늘 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티브는 파티가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으며, 블랙타이 드레스 코드에 맞춰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존은 갈등을 잠시 접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티브를 위한 건배사를 올리며, 그를 ‘기술 분야의 최고 선각자’라 칭했다.
그러고 나서 재즈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빨간 턱시도 차림이었다.
“저는 엘라 피츠제럴드입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한 젊은이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아 제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길 원한다는군요.” 파티 참석자들 가운데 엘라가 스티브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순간을 잊은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설적인 이 여성 가수에게 그것은 그저 또 하나의 공연에 불과했다. 재즈풍으로 편곡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그녀는 건물을 떠났다. 엘라에게 그는 ‘그저 스티브라는 이름의 부유한 남자’였을 뿐이라고, 애플과 매킨토시 전문 잡지 〈맥월드〉의 창립자이자 이 파티를 취재한 데이비드 버넬은 기술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이어받았고, 스티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참석자들에게 그 행사는 어딘가 거리감 있고 슬프게 느껴졌다. 매킨토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마이크 머레이는 파티 전에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스티브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습니다.”
그다음 달인 1985년 3월, 존과 스티브는 서로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스티브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존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떠들고 다녔다. 애플의 관리자들은 스티브가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부리는 신경질 탓에 제품 마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존에게 이 혼란을 다잡아 기강을 세우라고, CEO답게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애플의 인사 담당 책임자 제이 엘리엇이 존을 스티브의 사무실로 데려가 문제를 직접 풀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창밖으로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실내의 상황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스컬리가 갑자기 스티브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이는 회고했다. 존은 매킨토시 사업부의 저조한 매출을 스티브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권위를 훼손하는 행위를 격렬히 비난했다.
스티브도 소리를 지르며 맞받아쳤다. 애플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존이라는 것이었다. 매킨토시 사업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존은 근본적으로 회사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스티브는 주장했다. 그러고는 결정타를 날렸다. 존을 CEO로 영입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 순간 나는 스컬리가 이겼다는 걸 직감했죠." 제이가 말했다. "스컬리가 이사회로 달려가서 이렇게 말할 게 뻔했으니까요. '이 친구는 완전히 통제 불능입니다.'"
몇 주 뒤, 운명적인 4월 11일 이사회 전날 밤, 존은 정확히 그렇게 했다. 그는 이사회에, 스티브를 매킨토시 팀 리더 직위에서 해임하고 먼 미래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새로 만들어진 실권 없는 부서로 이동시킬 것을 제안했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세 시간 동안, 스티브와 존은 각자의 직업적 생명을 걸고 공방을 벌였다. 밤새 쉬었다가 다음 날 오전 9시, 전날에 이어 또 한 차례 고된 여섯 시간 반을 이사회 앞에서 싸웠다. 존은 이사회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으면 CEO직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친 이사회는 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존이 리더십을 주장하는 데 주저했던 점을 비판하면서도, 미성숙한 혼란의 주범으로 여겨지던 스티브보다는 존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사회가 스티브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존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스티브가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함은 유지하도록 허용했으나, 매킨토시 팀을 이끄는 직책에서는 해임했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스티브는 방을 나서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요.” 회의 후 스티브는 나넷 벅하우트에게 말했다. 나넷은 다름 아닌 존의 비서였다. 누구든(자기 자신을 포함해) 거의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설득해내는 스티브의 그 유명한 능력은, 적수의 비서에게까지 서슴없이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애플 직원들은 반농담으로 이 능력을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 불렀다.
“왜 존이 나한테 이런 짓을 한 거죠?” 스티브가 흐느꼈다. “그가 이런 짓을 하리라고 믿을 수가 없어요. 그가 저를 배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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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 7일, 존과 제이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들에게는 매킨토시 팀을 이끌 스티브의 정신적 후임자가 필요했고, 애플 프랑스의 수장인 멋쟁이 임원 장루이 가세(Jean-Louis Gassée)를 설득해 그 역할을 맡기려 했다.
스티브가 그랬듯, 장루이에게도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었다. 카리스마가 넘쳤고 외모도 빼어났다. 가죽 재킷을 걸치고 매혹적인 향수를 뿌렸으며, 한쪽 귀에는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달았다. 프랑스판, 〈보그〉에 등장해 프랑스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기술 전략을 풀어내는 말솜씨마저 남달랐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애플에 있다 보면 이따금 잊어버리곤 한다. 인생이란 오르가슴의 연속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도 채워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스티브와 마찬가지로, 장루이 역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학창 시절 수학을 전공했고, 파리에서 스트립 클럽 운영을 도왔으며, 20대 초반에는 프랑스 여성들의 성생활을 되살려준다는 묘약을 방문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24세에 그는 묘약에서 PC로 방향을 틀어 휴렛패커드 프랑스 지사에 선임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애플이라는 스타트업에 대해 전해 듣고 과감히 자리를 옮겨, 1981년 애플의 프랑스 자회사를 설립했다.
장루이의 지휘 아래, 애플 프랑스는 회사에서 가장 성공한 해외 지사로 떠올랐다. 그의 성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존은 장루이를 승진 대상으로 점찍었다. 그를 맥 사업부로 데려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루이는 애플의 독소 가득한 경영 다툼에 발을 들이기를 망설였고, 무엇보다 스티브 밑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장루이는 스티브를 두고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어느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잘생겼지만 비극적인 인물. 비전을 품은 괴물이자 탐미주의자. 외롭고, 혐오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존재."
존이 처음 장루이에게 매킨토시 사업부 합류를 제안했을 때, 장루이는 스티브가 1년 이내에 사업부 리더십을 넘기겠다는 보증 각서를 요구했다. 당시 스티브는 그 건방진 요구에 격분했다. 하지만 이제 스티브가 쫓겨나는 마당이니, 존은 장루이에게 부서가 결국 그의 것이 될 것이라 약속할 수 있었고, 그때까지 장루이는 매킨토시 마케팅을 맡기로 했다.
이 합의 사실을 알게 되자 스티브는 격분했다. 그는 제이에게, 장루이가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고 분에 차서 말했다. 매력적인 프랑스인 침입자가 자기 팀을 빼앗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스티브가 아니었다.
스티브는 존에게 완전히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기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고자 했고, 이에 쿠데타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애플이 중국에서 개인용 컴퓨터 판매권을 확보한 후, 스티브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연설해달라는 초청을 수락했다. 그는 존도 동행하고 싶어 할 것이라 예상하고 그를 출장에 초대했다. 그리고 존이 참여를 확정하자, 스티브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존이 홀로 베이징으로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
존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스티브는 이사회를 찾아가 자신을 CEO로 임명하도록 설득할 계획이었다. 존이 귀국하면 스티브는 그를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사임을 요구할 작정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존의 출장 전 주, 스티브는 애플 임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견을 떠보았다. 대부분은 이를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 조롱하며, 그가 도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측근인 제이조차 스티브에게 계획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다. 제이는 존이 그 자리에 적합한 유일한 현실적 후보로 남아 있었기에, 이사회가 존의 편에 설 것이라 판단했다.
스티브의 계획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그가 비이성적인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바로 그 비이성성이야말로, 스티브가 장루이에게까지 계획을 털어놓은 그 놀랍도록 비합리적인 판단의 이유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뜻밖의 동맹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듯하다.
존이 중국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스티브는 주차장에서 장루이에게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스티브, 애플은 당신 회사가 아닙니다.” 장루이가 대답했다. “우리 회사입니다.”
큰 실수였다. 그날 밤, 애플 법률 고문 알 아이젠스타트의 집에서 열린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장루이는 존을 거실로 데려가 스티브의 계략을 폭로했다. 충격을 받은 존은 중국 출장을 취소하고, 다음 날 애플 경영진 및 이사회 회의에 합류했다. 존은 자신의 회고록 《오디세이》에 이 과정을 기술했다.
존은 늦게 도착한 스티브를 기다렸다가 회의를 시작했다. 기습이었다. 스티브는 존이 중국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스티브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존은 원목 테이블 너머로 그를 응시했다. “당신이 저를 회사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사실인지 직접 묻고 싶습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한순간, 스티브는 그저 존을 노려보기만 했다.
“저는 당신이 애플에 해가 되는 존재이며, 이 회사를 경영할 적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가 점차 격앙되며 대답했다. “당신은 정말로 이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까지 애플을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경영할 줄 모르며, 한 번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존이 대답했는데, 어린 시절의 말더듬이 다시 목소리에 스며들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그 신뢰의 부재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떠나면, 누가 회사를 경영하겠습니까?”
“제가 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티브가 말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경영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이 방금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존이 쏘아붙였다. “만약 그들이 당신 말에 동의한다면, 제가 이 회사를 경영하기란 매우 어려울 테니까요.”
한 명씩, 회의실에 있던 애플의 고위 임원 여섯 명이 이 수렁 같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 그중 네 명은 다시금 존의 편에 섰고, 나머지 두 명은 중립을 지켰다. 이어서 이사회가 결정을 내렸다. 이사들은 존의 리더십에 불만이 있었으나, 그 불만이 지금 그를 해임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여전히 스티브는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 미성숙하다고 여겼다. 많은 이들이 스티브에게 미리 경고했던 그대로였다.
스티브는 테이블 위로 머리를 떨구었다. 허세는 사라졌다. 늘 그에게서 보이던 생기와 자신감도 사라졌다. 그를 이끌던 정신력마저 사라졌다. 애플의 비전가는 두 번째 거부를 당한 뒤 이사회 앞에서 풀이 죽은 채 앉아 있었다.
“그렇군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아무도 뒤따르지 않았다.
일주일 후인 1985년 5월 31일, 스티브는 새로 만들어진 허울뿐인 부서의 책임자라는 직함으로 공식 유배되었다. “그들은 다른 애플 건물들 대부분의 길 건너편에 작은 건물 하나를 임대해주었습니다.” 스티브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저는, 아니 저희는 그곳을 ‘시베리아’라고 불렀죠.”
스티브가 데려갈 수 있었던 인원은 비서 한 명과 경호원 한 명뿐이었다. 안부를 묻는 동료는 거의 없었다. 사내 보고서도 더 이상 그의 책상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 시점에 스티브는 모든 곳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에게 보고하던 매킨토시 재무 관리자 수전 반스는 회고했다.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얼마나 철저히 배척당했는지 지켜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정말 잔인한 일이었어요.”
실질적으로 할 일이 없었기에, 스티브는 매일 몇 시간씩만 사무실에 나갔다. 그마저도 견디기 어려워지자, 그는 출근 자체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저를 그리워할 사람이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후에 말했다.
밤이면 스티브는 집 밖에 앉아 별을 올려다보았다. 성인이 된 이후 깨어 있는 모든 순간을 애플을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긴 낮과, 그보다 더 긴 밤을. 이제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도, 돌아갈 다른 삶도 없었다. 스티브는 한동안 모습을 감추기로 했다. 과거의 삶에서 한 발 물러나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갑자기 그가 사라졌습니다.” 제이는 회고했다. “아무도 그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