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에서 태평성대로, 한국은 어떻게 1등이 되었나
오늘 우리가 쥐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어떻게 세계 메모리 시장의 절반 이상을 가져오게 됐는지. 그 60년의 흐름을 아는 투자자와 모르는 투자자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PART 3을 여는 첫 번째 장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반도체의 가격과 구조, 공정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어떻게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강자가 되었는지, 왜 지금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함께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산업의 역사를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 칩은 1960년대부터 상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일상 속 제품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기 반도체는 정부, 군수, 항공우주처럼 가격이 비싸도 성능이 중요한 영역에서 먼저 쓰였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개인용 PC가 본격 보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PC 한 대가 팔릴 때마다 CPU와 메모리, 각종 주변 반도체가 필요했고, 수요가 폭발하면서 반도체는 단순한 기술 제품이 아니라 ‘돈이 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태동기를 1960년대로 본다면, 이후 2020년대 이전까지의 흐름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춘추전국시대입니다. 수많은 기업이 뛰어들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로, 기술 격차가 곧 생존 공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태평성대입니다. 극심한 경쟁 끝에 살아남은 소수 기업이 수익성을 극대화하던 시기로, 공급자가 줄어들자 생존자에게 달콤한 보상이 찾아왔습니다.
메모리 산업의 두 시대 : 춘추전국 vs 태평성대
극심한 경쟁이 소수 생존자를 만들었고, 그 생존의 대가는 달콤했습니다.
기술 격차가 곧 생존이던 춘추전국시대(1960~2012년)
PC 보급이 확대되면서 반도체 시장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특히 디램은 데이터를 임시 저장하고 CPU의 작업을 돕는, 컴퓨터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이었습니다. 초기 디램 시장을 주도한 기업은 오늘날 CPU 회사로 더 익숙한 인텔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인텔은 디램 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였지만, 1980년대 들어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당시 일본의 주역은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전기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1980년대 중후반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수준까지 올라섰습니다. 일본이 주도권을 잡은 배경은 크게 셋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움직였다는 점, 처음부터 양산 능력에 집중했다는 점, 그리고 자체 가전·전자 사업이라는 탄탄한 캡티브 수요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도로를 깐 VLSI 프로젝트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일본 통산성 주도로 NEC,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전기가 함께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이것이 VLSI 프로젝트입니다. VLSI는 초대규모 집적회로(Very Large Scale Integration)를 뜻하는데, 속뜻은 단순합니다. 더 많은 회로를 더 작은 칩에 빽빽하게 욱여넣는 기술입니다. 같은 크기 칩에 회로를 더 많이 담을수록 성능은 좋아지고 원가는 낮아지니, 이 ‘집적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국가적 연구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제품 하나 개발에 있지 않았습니다. 반도체는 설계(도면), 공정(웨이퍼에 새기는 제조), 장비(공정 기계), 소재(공정용 화학물질) 네 가지가 맞물려 돌아갑니다. VLSI 프로젝트는 이 네 가지 전체의 수준을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연구개발은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고, 상용화와 양산 투자는 각 기업이 맡는 구조였습니다. 국가가 산업의 기반 도로를 깔고, 기업들이 그 위에서 달린 셈입니다. 이때 다진 기반은 이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일본이 소재·장비에서 강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시기의 인프라 구축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후발주자의 무기, 양산 능력과 캡티브 수요
일본 기업들은 처음부터 ‘대량생산에 강한 반도체’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높은 수율, 안정적 공정, 낮은 원가를 중시했습니다. 수율이란 웨이퍼 한 장에서 정상 제품이 얼마나 나오느냐입니다. 같은 웨이퍼라도 양품이 많이 나오면 원가는 낮아지고, 불량이 많으면 높아집니다. 후발주자였던 일본은 좋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많이, 싸게 만들어야 했기에 설계 단계부터 양산성과 공정 안정성을 강하게 고려했습니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새로운 용량의 제품을 먼저 개발·출시하는 데 더 집중했습니다. 기술 선도도 중요한 전략이지만, 디램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는 대량생산 산업입니다. 좋은 기술만큼이나 ‘안정적으로 많이 만드는 능력’이 중요했고, 일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했습니다.
세 번째 무기는 탄탄한 내수, 그중에서도 캡티브 수요였습니다. 캡티브 수요란 내가 만든 부품을 내 회사가 직접 사서 쓰는 ‘집안 수요’입니다. NEC·도시바·히타치 같은 기업들은 단순한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TV·컴퓨터·통신장비·가전까지 함께 만드는 종합 전자기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든 디램을 밖에서 팔 손님을 찾지 않아도 자기 전자기기에 그대로 넣어 쓸 수 있었습니다. 사줄 고객이 내부에 있으니 설비투자 부담이 줄고, 대량 생산을 반복하며 수율과 제조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자기 회사 안에 큰 식당을 둔 농장처럼, 안정적 공급처가 있으니 더 크게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일본 디램의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1985년 인텔이 메모리 사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상징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디램의 중심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신호였습니다. 1987년에는 일본 메모리의 글로벌 점유율이 80%를 넘었습니다. 일본은 말 그대로 디램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주도권은 흔들립니다. 배경은 둘, 미국의 일본 견제와 삼성전자의 차별적 전략입니다.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 협정, 견제의 시작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은 ‘엔저’를 십분 활용했습니다. 엔저란 엔화 가치가 낮은 상태로, 자국 화폐가 싸면 수출 기업에 유리합니다. 외국 손님 입장에서 값이 더 싸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양산 능력과 낮은 원가까지 더해지자 일본 반도체는 강력한 저가 공세로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미국으로서는 위협적이었습니다.
결국 1985년,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독일·프랑스·영국이 환율 조정에 합의합니다.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맺어졌다 해서 ‘플라자 합의’입니다. 핵심은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었고, 이후 엔화는 크게 절상(가치 상승)되고 달러는 약해졌습니다. 엔화가 비싸지면 엔저의 정반대 상황이 됩니다. 같은 일본 제품도 외국 손님에게 갑자기 비싸지고, 가격 경쟁력은 약해집니다.
이어 1986년에는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됩니다. 핵심은 둘, 일본 시장 내 해외 반도체 비중을 늘리는 것과 일본 반도체의 ‘덤핑’ 수출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덤핑이란 원가보다 싼 값에 제품을 쏟아내 상대국 시장을 휘젓는 행위입니다. 일본의 헐값 공세에 빗장을 건 셈입니다. 물론 일본의 경쟁력이 환율 덕분만은 아니었고 기술과 양산 능력이 핵심이었으므로, 환율과 협정만으로 일본 산업이 무너졌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이미 높은 점유율을 가진 일본 기업들에는 분명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일본 메모리의 정점과 한국의 역전(글로벌 디램 점유율 개념도)
불황에 다음 세대를 준비한 삼성전자의 역발상
두 번째 변화는 삼성전자의 전략이었습니다. 1983~1984년 일본·미국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했지만, 이후 경기 둔화로 1985년부터 디램 가격이 하락합니다. 일본 기업들은 가격 방어를 위해 감산에 들어갔습니다. 후발주자 삼성전자는 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선두보다 후발의 적자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적자 속에서도 차세대 제품 개발과 양산 설비 투자를 더 공격적으로 이어갔습니다.
메모리에서 ‘다음 세대 제품’이란 더 많은 데이터를 담는 제품입니다. 당시 주력이 256Kb 디램이었다면, 삼성전자는 네 배 용량인 1Mb 제품 개발에 속도를 냈습니다. 선두가 값 떨어진 기존 제품을 지키느라 안간힘을 쓸 때, 한발 앞서 더 큰 용량의 다음 세대로 갈아탄 것입니다. 새 세대로 먼저 넘어간 기업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비싸게 먼저 팔 수 있고, 그 제품이 주력이 될 때 시장을 선점합니다. 이 선택은 선두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삼성전자는 64Mb 디램 개발은 물론 ‘웨이퍼 크기 전환’에서도 주도권을 잡습니다. 원판을 더 큰 것으로 바꾸면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찍어 칩당 원가가 내려갑니다. 불황기에 투자를 줄인 기업과 다음 세대를 준비한 기업의 차이가 시간이 흐르며 또렷이 드러난 것입니다.
주도권이 더 확실해진 것은 1990년대 중반입니다. 일본 경제는 버블 붕괴 후 장기 침체에 들어갔고 메모리도 불황을 겪었습니다. 1995년 호황기에 많은 업체가 공급을 늘렸지만, 공급이 크게 늘면 늘 같은 문제가 옵니다. 1996년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이때도 삼성전자는 투자를 이어가며 차세대 제품과 미세 공정 전환으로 원가 우위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대규모 적자 속에 투자를 줄이고 수익성 방어에 집중했습니다.
여기서 메모리 산업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나옵니다. 바로 ‘기술이 곧 원가’라는 점입니다. 더 앞선 공정을 가진 기업은 같은 웨이퍼 한 장에서 더 많은 칩을 뽑습니다. 한 회사가 100개, 다른 회사가 130개를 뽑는다면 칩당 원가는 130개를 뽑는 쪽이 훨씬 낮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져도 원가가 낮은 기업은 이익을 내거나 덜 손해 보며 버팁니다. 반대로 원가가 높은 기업은 가격이 조금만 떨어져도 곧장 적자에 빠집니다. 결국 원가가 낮은 기업이 불황을 더 오래 견디고, 경쟁사가 물러날 때 그 빈자리를 차지하며 점유율을 키웁니다. 이것이 메모리 산업의 ‘치킨게임’입니다. 삼성전자는 기술 리더십과 원가 우위로 양산을 확대해 점유율을 높였고, 기술이 뒤처진 업체들은 큰 수익성 압박을 받았습니다.
두 차례 치킨게임이 시장을 3강으로 압축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구조조정이 본격화됩니다. 큰 그림은 단순합니다. 가격 경쟁을 버티지 못한 회사들이 하나씩 짐을 싸거나, 힘을 합치거나, 사업을 접는 과정입니다. 1998년 미국 TI는 메모리 사업을 통째로 팔았고, 대만 Acer는 디램을 접고 파운드리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999년에는 일본 NEC와 히타치가 메모리 사업을 떼어내 ‘엘피다’ 합작사를 세웠고, 2001년 도시바는 디램에서 손을 떼고 낸드에 집중합니다.
2000년대 들어 메모리는 여러 차례 큰 불황을 겪습니다. 2001~2002년 닷컴버블 붕괴와 PC 수요 둔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업체들을 냉정하게 갈라놓았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독일 키몬다입니다. 인피니언에서 디램 부문만 떼어내 세운 전문 회사였는데, 2009년 1월 끝내 파산했습니다. 세계적 메이저 디램 업체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것입니다. 공정 미세화로 원가 우위를 가진 선두는 불황에도 버텼지만, 원가 우위가 없던 일본·대만 후발 업체들은 공격적 투자 뒤 불황을 맞으며 재무 부담이 커졌습니다. 자체 기술과 공정 노하우가 부족하면 불황기에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2012년 엘피다가 파산하고 2013년 마이크론이 이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디램 공급 구도가 사실상 정리됩니다. 한때 10개가 넘던 메이저 업체가 3개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후 디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강으로, 낸드는 여기에 키옥시아·샌디스크(웨스턴디지털)를 더한 5강 구도로 압축됩니다. 살아남은 회사가 시장을 거의 다 가져가는 구조가 됐고, 이때부터 메모리 사이클의 진폭은 과거보다 줄기 시작했습니다.
치킨게임이 만든 과점 : 주요 디램 업체 수의 압축
스마트폰이 비메모리 분업화를 가속하다
같은 시기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핵심은 ‘분업화’입니다. 과거 PC 시대에는 인텔처럼 설계부터 생산까지 한 회사가 다 하는 구조가 강했습니다. 이런 구조가 4장에서 본 IDM입니다. 그런데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이며 판이 바뀝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는 덩치 크고 전기를 많이 먹는 PC용 CPU를 그대로 넣을 수 없었습니다. 작은 기기에서 적은 전력으로 계산·그래픽·통신·카메라 처리를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모바일 AP’입니다. 여러 기능을 칩 하나에 모아 담은 칩으로, 이것이 2장에서 본 SoC입니다. PC 시대의 강자 인텔은 정작 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고, 대신 퀄컴·미디어텍·하이실리콘·애플 같은 ‘설계 전문’ 기업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뛰어난 설계 능력은 갖췄지만 공장을 두지 않았습니다. 4장에서 본 팹리스(레시피를 짜는 셰프)와 파운드리(그 레시피로 대량 조리하는 주방)의 분업이 여기서 본격화된 것입니다. 대표 파운드리가 대만 TSMC이고, 삼성전자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팹리스·파운드리 구조는 스마트폰 이전에도 있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이 흐름을 크게 가속했습니다.
생존의 대가는 달콤했던 태평성대(2013~2022년)
앞서 본 대로 3강 과점이 자리 잡자 시장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한 업체가 무리하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낮추면 다른 업체도 따라가야 했고, 치킨게임이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남은 업체가 셋뿐이고 모두가 수익성 극대화를 원하니, 서로를 망가뜨리며 점유율 싸움을 할 이유가 줄었습니다. 이 시기 전략은 분명했습니다. 수요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공급을 조절해, 가격 상승을 길고 크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두 번의 큰 업사이클이 만들어집니다. 2013~2014년 사이클과 2016~2018년 사이클입니다.
스마트폰이 끌어올린 첫 번째 호황
2013~2014년 사이클은 공급 구도 재편 이후 처음 나타난 호황입니다. 2012년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로 공급 구조가 정리됐고, 업체들의 전략은 수익성 중심으로 바뀌어 공급 확대가 제한되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침 수요 측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한 대에 들어가는 디램·낸드 용량이 늘고 판매량도 커졌습니다. 공급은 조심스러운데 수요는 늘었으니, 가격이 오르기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이 흐름 속에 2013년 1분기부터 2014년 1분기까지 5개 분기 동안 메모리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만든 두 번째 호황, 서버 사이클
두 번째는 2016~2018년 사이클입니다. 2016년 3분기부터 2018년 2분기까지 무려 8개 분기 동안 가격 상승이 이어졌습니다. 2023년 이후의 AI 사이클 이전까지는 가장 길었던 호황기입니다. 이 사이클도 출발점은 공급 축소였습니다. 2014년 하반기부터 2016년 2분기까지 업황이 부진했고, 2015년에는 그리스 디폴트 우려·중국 경기 둔화·미국 금리 인상 우려가 겹치며 거시 환경도 나빴습니다. 수요가 약해지자 생산업체들은 감산에 들어갔고, 2016년 상반기에는 대만 지진과 고객사 재고조정까지 겹치며 공급 축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2016년 하반기부터 수요가 회복됩니다.
이 사이클을 더 길고 크게 만든 것은 서버 수요였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투자를 크게 늘렸고, 클라우드가 성장하며 서버에 들어가는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흔히 ‘서버 사이클’이라 부릅니다. 공급은 줄어든 상태였고 예상보다 강한 서버 수요가 들어왔으니, 메모리 가격은 길게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성대가 영원하진 않았습니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분쟁과 서버 수요 둔화로 가격이 다시 크게 내렸고, 2022~2023년에는 코로나 특수 종료와 PC·스마트폰 수요 위축으로 또 한 번 침체가 왔습니다. 다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3강이 동시에 보수적 공급정책에 따른 감산정책을 기민하게 시행하면서 회복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다음 단계에서 AI라는 전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합니다.
국가별로 굳어진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주요 국가별 반도체 산업 구조도 다르게 굳어졌습니다. 한국은 메모리 생산업체 중심, 대만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한 팹리스·OSAT 생태계, 일본은 완성 반도체에서는 주도권을 잃었지만 소재·장비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는 구조입니다.
한 장으로 보는 국가별 반도체 산업 지형
같은 반도체 산업이라도 나라마다 장악한 밸류체인이 다릅니다. 이 지형이 투자 판단의 출발점입니다.
한국, 메모리 IDM 중심으로 굳어지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특징은 단순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메모리 IDM 중심 구조입니다. IDM은 설계부터 생산, 패키징·테스트까지 한 회사가 직접 수행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입니다. 1995년 기준 이 생산업체들의 매출 비중은 한국 반도체 산업 내 약 98%로 거의 전부를 차지했고, 2020년대에도 이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산업 내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물론 생산업체들은 꾸준히 소부장 국산화를 추진해왔습니다. 해외 메이저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늘 부담이었고, 특히 2019년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를 겪으며 벤더 다변화와 국산화 필요성이 강하게 부각됐습니다. 이후 일부 소재에서 국산화 성과도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소부장 비중이 크게 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미세화가 심화되며 소재·장비에 요구되는 기술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 국내가 대응 못 하는 영역에서는 오히려 해외 메이저 점유율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둘째, 국내 소부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국산화 과정에서 성장해 고객과 제품군이 메모리에 편중돼 있습니다. 더 가파른 성장을 위해서는 비메모리·해외 고객·글로벌 파운드리 생태계로 진입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사이클 의존도가 높습니다. 업사이클이 오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며 업종 전반의 수익성이 극대화되고, 다운사이클이 오면 실적 변동성이 커집니다. 이 구조는 양날의 검입니다. 사이클이 바닥을 찍고 돌아서는 변곡점에서는 실적과 주가가 강하게 튀어 오르지만, 그만큼 실적의 출렁임이 크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시장은 실적이 들쭉날쭉한 기업에 후한 가격표를 잘 붙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밸류에이션’은 시장이 매기는 몸값을, ‘멀티플’은 그 몸값을 이익의 몇 배로 쳐주느냐를 뜻하는데, 실적 변동성이 큰 메모리 업종은 이 멀티플이 낮게 매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이익을 내도 안정적인 기업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 쉽다는 뜻입니다.
소부장 주가 역시 이러한 산업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업사이클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 국면에서 동반 상승세가 나타나는데 이때 로직은 모든 소부장이 공통적으로 ‘사이클’입니다. 즉, 소부장 내에서 차별 없는 ‘사이클’ 이라는 투자포인트가 작동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공정, 아이템을 가진 소부장 기업끼리는 상승률도 유사하게 형성됩니다. 한국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외 해외 메모리 또는 비메모리 고객사로의 진입에 성공한 소부장은 많이 없기 때문에 해당 소부장들은 여타 소부장 대비 차별적인 실적 및 주가 상승 기울기가 보이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업사이클 초반부 투자는 차별 없이 소부장 전반을 투자하는 ‘바스켓’ 전략이 유효하고, 사이클의 중반부-후반부로 넘어갈수록 특정 엣지 포인트(해외 고객사, 아이템 확장)를 보유한 소부장 중심의 ‘압축’ 전략이 유효할 수 있습니다.
대만, TSMC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자라다
대만은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이 메모리 생산업체 중심이라면, 대만은 파운드리 중심이고 그 중심에 TSMC가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대만의 주된 축은 파운드리였습니다. 1995년 기준 전체 반도체에서 파운드리 매출 비중이 62%였고, TSMC와 UMC가 대표 기업이었습니다. 대만은 설계와 생산이 나뉘는 비메모리 분업 구조에서 ‘생산 전문’ 역할을 선점했습니다.
이후 대만은 파운드리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TSMC를 중심으로 팹리스(대표적으로 미디어텍)와 OSAT(칩을 다 만든 뒤 패키징·테스트를 전문으로 대신하는 회사, 대표적으로 ASE)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TSMC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기술을 보유하자 대만 팹리스는 가까운 생태계 안에서 제품을 고도화하기 쉬웠고, TSMC가 전 세계 고객사 칩을 생산하면 그 뒤에 패키징·테스트 물량이 따라오니 OSAT도 그 성장 기울기를 함께 누렸습니다. 반도체는 혼자 크기 어려운 산업입니다. 설계·생산·후공정·소재·장비가 서로 연결되어있고,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이 생태계를 강하게 형성했습니다.
다만 대만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메모리 생산업체와 전공정 소재·부품·장비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과거 난야·Powerchip·ProMOS 같은 업체가 디램 진입을 시도했지만, 치킨게임 과정에서 후발주자였던 대만 업체들은 2011~2012년 다운사이클에 적자가 확대되며 철수하거나 방향을 바꿨습니다. 2013년 엘피다가 마이크론에 인수되며 대만 메모리의 글로벌 입지는 크게 축소됐습니다. 메모리 생산 기반이 약하니, 그에 기대 성장하는 전공정 소재·장비 생태계도 한국·일본만큼 강하게 형성되기 어려웠습니다. 대만의 강점은 분명합니다. TSMC를 중심으로 한 파운드리 생태계, 그리고 그 주변에서 함께 큰 팹리스와 OSAT입니다.
일본, 완성품은 잃었지만 소재·장비에서 살아남다
일본은 조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디램 완성품 시장을 지배했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 업체의 부상과 자국 경제 침체·구조조정이 겹치며 완성 반도체 생산의 주도권은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재·장비에서는 오랫동안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해왔습니다. 반도체에는 웨이퍼, 포토레지스트, 식각가스, 세정액, 증착 소재, CMP 슬러리처럼 공정마다 핵심 화학물질과 재료가 필요한데, 이 중 많은 영역에서 일본 업체들이 높은 글로벌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장비도 마찬가지로 특정 공정·아이템에서 강점을 가진 일본 기업이 많습니다.
일본이 소재에서 강한 이유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원천 기술 축적에 강했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하루아침에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화학 조성, 공정 조건, 고객사 장기 검증, 품질 안정성이 모두 중요하고, 한 번 고객사 공정에 들어가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생산업체 입장에서 소재 교체는 수율·품질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증된 소재 업체는 강한 진입장벽을 갖고, 일본 업체들은 이 장벽을 오랜 시간 쌓아왔습니다.
다만 일본 소재·장비 기업의 수익성 지표를 볼 때는 한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들 상당수는 순수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기업입니다. 과거 일본 생산업체가 쇠퇴·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소재·장비 업체들도 사업 영역을 반도체 밖으로 넓힌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순수 장비·소재 기업과 비교하면 평균 영업이익률이 낮아 보일 수 있는데, 이는 경쟁력이 낮아서라기보다 포트폴리오가 더 넓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일본은 완성 반도체의 왕좌에서는 내려왔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장비에서는 여전히 강한 나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