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중심주의] 롤드컵과 페이커, 다시 불붙는 e스포츠

이 글은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 중심주의]에서 발췌했습니다.
골든래빗 출판사

라이엇 게임즈는 ‘플레이어 포커스’라는 한마디로 덩치가 커진 라이엇 게임즈를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짧지 않은 고민 끝에 2012년 라이엇 게임즈의 문화를 체계화하는 명문화된 가치 ‘라이엇 매니페스토(The Riot Manifesto)’를 선언했다. 라이엇 매니페스토는 ‘플레이어 경험이 최우선’, ‘관습에 도전’, ‘인재와 팀에 집중’, ‘진지하게 플레이’, ‘늘 배고프게, 늘 겸손하게’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e스포츠도 라이엇의 플레이어 중심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이벤트였다.

페이커, 레전드 오브 LoL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은 라이엇 게임즈가 개최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최대 규모의 대회이자 한 시즌의 마지막을 알리는 세계 대회다. 동시 접속 시청자 수와 시청 시간 부분에서 e스포츠 역사상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해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명실상부한 최고의 e스포츠 대회로서 전 세계 모든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들의 꿈의 무대다. 라이엇 게임즈 및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월드 챔피언십을 약칭으로 월즈 Worlds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롤드컵’이라고 부른다. 축구 월드컵처럼 세계 1위 팀을 뽑는 대회 ‘월드컵’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약칭 LoL을 합친 애칭이다.

출전 팀은 9개 지역 총 22팀으로 메이저 지역 시드와 마이너 지역 대표들이 출전한다. 결승 토너먼트는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 치르고 5전 3선승제로 이루어진다. 2023년 롤드컵 개최 도시는 서울과 부산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 2018년 롤드컵을 두 차례 개최한 바 있다. 초창기 롤드컵 챔피언은 시즌마다 달라질 정도로 혼전이었다. 그런 혼전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프로게이머가 나타났다. 롤드컵 3회 우승,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 (Mid Season Invitational, MSI) 2회 우승, LCK 10회 우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프로게이머 누적 상금 전 세계 1위. 바로 페이커다.

롤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 치고 페이커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이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서 롤을 플레이하는 2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페이커를 세계 1위로 알고 있다. 이 정도면 월드클래스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때부터 e스포츠를 즐기고 지켜본 사람들은 페이커를 임요한이나 홍진호 같은 선수의 글로벌 버전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위상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스타크래프트〉는 1대1 경기인 반면 롤은 5대5라는 점에서다. 이를테면 권투와 농구의 차이다. NBA의 마이클 조던이 팀의 일원이지만 혼자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것처럼, 페이커도 그렇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모르는 사람도 페이커라는 이름 정도는 알지만, 상당한 팬이 아닌 이상 T1팀의 멤버를 꿰고 있지는 못하다.

어찌 생각하면 마이클 조던보다 더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다. LoL과 마찬가지로 5대5로 진행하는 농구를 보면,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 NBA 사무국에서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면이 있다. 마이클 조던이 사라진 다음에는 누구를 띄워야 할지 고민하는 식이다. 그런데 페이커는 그런 요소 전혀 없이, 워낙 잘해서 자연스럽게 명성을 얻었다.

신인이던 페이커가 처음으로 해외까지 이름을 날린 경기는 잠실 올림픽 보조 경기장에서 있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서머 2013’ 결승전이다. 당시 KT와 2:2로 막상막하가 된 상황에서 5세트에 블라인드 픽이 되었다. 관객 대부분은 당시 OP (over power)인 제드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양 팀의 최고 선수가 제드 대 제드로 붙으면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여기서 페이커가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며 상대 제드를 킬하는 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월드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한 페이커는 그 뒤로 10년 동안 승승장구하면서 ‘프로게이머 중 최고의 프로게이머’라는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해외에서 페이커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예로 뉴욕에서 있었던 월드 챔피언십 예선전을 들 수 있다. 관중이 잔뜩 몰려든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뉴욕 경찰 몇 명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미국 경찰은 문제가 생기면 물리적으로 단호하게 제압하고 필요하다 판단하면 얼마든지 경기를 중단시킬 수도 있었기에 라이어터 모두 겁이 났다. 결국 현장 책임자가 쭈뼛쭈뼛 나서서 “무슨 문제가 있나요”하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러자 경찰이 ‘페이커 보러 왔어요 I’m here to see Faker’라고 신이 나서 대답했다. 뉴욕에서 월드 챔피언십이 벌어졌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근무복을 입은 채 들렀던 것이다.

또 2014년 파리 올스타전에서도 진귀한 장면이 벌어졌다. 그날이 마침 페이커의 생일이었는데, 누군가가 “Happy birthday to Faker”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든 관중이 따라 부르며 페이커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가 온 경기장을 메웠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팬 서비스 면에서도 월드클래스 자격이 있다. 미국에서 경기가 있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숙소에서 갑자기 화재 경보가 울렸다. 놀란 사람들이 거의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왔고, 스태프들이 선수를 체크해보니 페이커만 빠진 것이다.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는데 태연하게 유니폼까지 갖춰 입고 걸어나왔다. 그래서 “왜 이렇게 늑장부렸냐, 유니폼 입을 정신이 어디 있냐” 했더니 “밖에 팬들이 있으니 이렇게 입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대답한 것이다. 또 그 소동으로 현장에 온 팬들이 페이커한테 몰려서 사인을 요청했는데, 그 새벽에 몇 시간 동안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사인을 해주었다.

대한민국 e스포츠에는 페이커 말고도 또 한 명의 월클이 있다. 바로 전용준 캐스터다.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비롯해 여러 게임의 캐스팅을 이끌어온 e스포츠의 레전드라고 불리는 국민 캐스터이다. 한번은 본사 라이어터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연히)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 경기가 끝나고 한국어도 모르는 라이어터들이 전 캐스터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한국어가 이해되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그야말로 각각의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이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초창기에는 (우리나라 외) 다른 지역 캐스터들은 차분하고 분석적으로 해설을 했다. 전 캐스터에 익숙했던 한국인으로서 타 지역 캐스터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캐스팅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전용준 캐스터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전용준 캐스터가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을 넘어세계로.

월클 전용준 캐스터를 만난 건 〈리그 오브 레전드〉가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대문에 있는 고깃집에서 업계 관계자들과 있던 저녁 자리에서다. 늦은 저녁 그는 방송을 마치고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활짝 웃는 얼굴과 우렁찬 말투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다. 그의 팬이었던지라 ‘누구에게 자랑해야 하나’ 마음에 담아두었던 추억이다.

 

롤드컵, 전화위복의 순간

창업자인 브랜든과 마크는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e스포츠의 열정적인 팬이었고 한국 e스포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한국 외에는 프로 e스포츠라고 할 만한 곳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우리도 e스포츠를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기원은 2011년 스웨덴의 디지털 행사인 드림핵이다. 첫 대회(시즌 1이라고 부른다)는 라이엇 게임즈가 주관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해인 시즌 2부터 총상금 205만 달러를 걸고 라이엇 게임즈가 주관했다. 의욕이 앞서 야심 차게 준비했지만, 라이엇 게임즈로서는 첫 행사다 보니 실수도 많았다. 플레이어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큰 곳에서 하자는 생각으로 L.A. 라이브 센터를 대관해버린 것이다. 신인 밴드가 데뷔 무대에서 인기 좀 얻으니까 잠실 야구장에서 콘서트를 연셈이다. 단지 ‘플레이어들이 좋아할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하지만 그런 큰 행사를 치르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 기획팀도 몇 명 없었고 전문성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수가 잦았는데, 정말 뼈아팠던 사태는 8강전에서 터졌다. 전기 문제가 생겨서 경기 도중 인터넷이 끊겨버린 것이다. 당연히 경기를 할 수가 없었고, 멀리서부터 보러 온 관객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브랜든 벡 당시 최고 경영자가 나와서 마이크를 잡았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너무 미흡했습니다”라고 투명하게 사과했다.“환불을 원한다면 전액 환불하고, 최대한 빨리, 일주일 안에 다시 장소를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진행하지 못한 보상으로 머천다이즈 스토어에 있는 티셔츠 등 각종 상품을 가져가셔도 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스토어로 달려갔다. 금액으로 따지면 수십 억 규모였다.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을 위한 행사고 실망시킨 만큼 보상하는 게 당연하다. 이 일화는 라이엇게임즈의 플레이어 포커스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자주 회자된다.

일주일 뒤에 USC 게일런 센터에서 다시 대회가 열었다. 사운드 등의 문제는 있었지만 기획팀의 노력과 플레이어들의 열정으로 성황리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최고 경영자들이 직접 인터넷과 전기선이 제대로 됐는지 체크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고, 사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BC에서 올림픽 방송을 담당했던 최고의 전문가를 채용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브랜든과 마크가 직접 무대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운드 체크를 했다. 최첨단 장비를 구입해서, 게임 전문 방송 OGN 관계자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e스포츠 전담팀을 만든 뒤로 점점 더 매끄럽게 운영되면서 2017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버즈 네스트 스타디움에서 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며 지금은 e스포츠의 정점이 되었다. 하지만 결코 관습으로 굳어진 것은 아니며, 아직도 계속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 진화하는 행사로써 플레이어들에게 만족감을 주려 노력하고 있다.

저자 오진호
2011년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대표 및 아시아 대표로 시작해 2014년 해외사업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하였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본사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업총괄 대표 President 및 회사 최고 경영진 Executive Team으로 근무했다. 라이엇 게임즈 전에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한국 대표 및 동남아시아 대표를 역임했다. 라이엇 게임즈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발로란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를 현지화해 출시를 도왔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한국, 싱가포르에서 최대 2,000명 이상의 글로벌팀을 이끈 최정상의 글로벌 게임 퍼블리싱 전문가다.

┃경력┃
현) 비트크래프트 벤처스 파트너
전) 라이엇 게임즈 월드와이드 퍼블리싱 대표, 한국 지사장, 아시아 대표이사
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한국 대표 및 동남아시아 대표

★ 게임에서 문화로, 〈리그 오브 레전드〉 최초의 인사이드 이야기

★ 라이엇 게임즈의 ‘플레이어 중심주의’는 무엇인가?

〈리그 오브 레전드〉는 어떻게 e스포츠를 넘어 문화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우리말로 ‘플레이어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어 포커스’에 있다. ‘플레이어 포커스’는 라이엇 게임즈,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를 이어주며 글로벌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많은 기업이 똑같은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모두가 같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라이엇 게임즈는 어떻게 이 같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 초대 지사장으로 시작해 본사 프레지젠트까지 역임한 오진호 저자가 보고 겪고 실천한 이야기에서 그 노하우를 찾아보자.

 

★ 왜 ‘플레이어 포커스’에 주목해야 하는가?

‘플레이어 포커스’는 라이엇 게임즈의 미션을 관통하는 철학과 가치다. 라이엇 게임즈의 모든 업무에서 ‘플레이어 포커스’는 실존하며 결정과 행동을 좌지우지한다. 라이엇 게임즈의 구성원들은 결정을 할 때마다 자신에게 또는 서로에게 질문한다. “이것은 플레이어 포커스에 부합하는가?” 이러한 철학으로 만든 〈리그 오브 레전드〉는 오늘날 게임, e스포츠, 음악/미술/일상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2023년 8월 14일 기준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점유율 40퍼센트 내외로 한국 PC방 게임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속 1위 기록만 200주가 넘는 대기록이다. 이는 기록의 일부분이고 앞서 2012년 7월 말부터 2016년 6월까지 204주 연속 1위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그밖에도 〈발로란트〉, 〈레전드 오브 룬테라〉, 〈전략적 팀 전투〉의 등의 게임을 선보였다. 폭발물인 스파이크를 설치, 해제하기 위해 대결하는 5대5 전술 FPS 게임 〈발로란트〉는 게임트릭스 순위에서 3~5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런 놀라운 성과들은 핵심 미션 ‘플레이어 포커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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