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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스티브 잡스 04]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NeXT 스티브 잡스 04]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NeXT 스티브 잡스 04]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 2026년 10월 4일 · 👁 5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회사 야유회에서 비치볼을 차며 미소 짓는 스티브 잡스. 휴식을 즐긴다기보다 격식 없는 상사 역할을 연기하는 듯하다.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 1987년.할리우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매니지먼트사 윌리엄 모리스가 큐브를 사고 싶어 했다. 이 에이전시가 넥스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개월 전 픽사의 단편 〈틴 토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면서였다. 이 작품은 넥스트 기기에 기본 탑재된 소프트웨어 렌더맨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영업 매니저 마크 헤이스는 할리우드 임원들이 스타 파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스티브가 직접 프레젠테이션하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1989년 8월의 어느 아침, 스티브가 넥스트 본사 회의실에 걸어 들어왔다. 15분 늦게. 마크가 정장을 입으라고 조언했음에도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테이블 건너편에는 실력 있는 에이전트 팀과 딜로이트 앤드 투시의 회계 컨설턴트들이 앉아 있었다.“여러분의 요구 사항을 살펴봤습니다,” 인사를 나눈 뒤 스티브가 시작했다. “완전히 핵심을 놓치고 있더군요.”윌리엄 모리스의 컨설턴트들은 넥스트든 애플이든 IBM이든 상관없이, 기본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춘 표준 개인용 컴퓨터를 구매해야 한다고 사양을 정해놓았다. 스티브에게 이 요구 사항은 시작부터 틀린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의 요구 사양에 맞춰 자기 제품을 찌그러뜨리는 것은 할 생각이 없었다.그는 회의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하더니, 회계사들을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당신들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스티브가 말하는 동안 마크는 불안해졌다. 그들의 권위 있는 거래를 위한 최고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건 아닌가?하지만 에이전트들은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어요.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직접 확인하며, 그의 진면목을 목격하게 된 것이니까요.”당시에 윌리엄 모리스는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에이전시는 PC 혁명의 흐름을 제때 타지 못했고, 소속 에이전트들은 까다로운 고객들과 끝없는 통화 및 협상을 이어가며 할리우드 계약의 대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우리 업계에서는 전화 한 통을 제대로 성사시키기 위해 보통 네다섯 번씩 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이 에이전시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월터 지프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전화를 걸면 상대방이 바쁘고, 그들이 다시 전화를 걸어올 때면 우리가 바쁘기 때문이죠.” 컴퓨터는, 에이전트들이 이처럼 밀려드는 폭발적인 업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평범한 매킨토시나 PC로도 그 업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스티브는 그것들의 화면이 더 조잡하고 픽셀화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윌리엄 모리스가 특별히 큐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컴퓨터의 미적 존재감 때문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그 기계들은 섹시해 보였어요”라고 넥스트 시스템 엔지니어 앨런 데니슨은 회상했다.넥스트는 이제 대학뿐 아니라 비즈니스랜드를 통해 기업에도 판매하고 있었다. 교육 시장만으로는 규모가 충분하지 않았다. IBM은 11개월 전 넥스트스텝을 라이선스했지만, 소프트웨어가 미완성 상태를 벗어나길 기다리며 아직 아무것도 출하하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 넥스트는 가능한 어디든 매출이 필요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 컴퓨터가, 자기들의 대리인이 자기 예술만큼이나 첨단이기를 기대하는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에게 인상적이기를 바랐다. CNN은 윌리엄 모리스의 클라이언트인 팀 버튼 감독이 자기 직원들을 위해 넥스트 기기 5대를 구입하고 그중 한 대를 영화 촬영장에도 끌고 다녔다고 보도했다.스티브는 거래를 성사시키기로 결심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래된 탤런트 에이전시와의 제휴는 넥스트에 신뢰성과 화려함을 주입할 것이었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에이전시가 추적하는 셀럽들의 비디오와 소리를 저장하는 특별히 설계된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제안했다.넥스트는 그 맞춤 소프트웨어를 오클랜드 소재의 소규모 회사 아다메이션에 외주하기로 했다. 형제인 스테판과 윌리엄 애덤스가 설립한 아다메이션은 큐브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모든 것을 걸었다.스티브는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하기로 했다. “우리는 농담 삼아, 모든 컴퓨터에 100달러 지폐를 감싸 줬다고 했어요. 말 그대로 제품을 팔면 우리가 돈을 잃는 구조였으니까”라고 마크는 말했다. 3주 뒤, 두 회사는 공식적으로 거래를 확정했다. 넥스트의 첫 주요 기업 판매였다. 거래 금액은 250만 달러로 발표되었지만, 실제 가격은 훨씬 낮았다. 첫 30대의 컴퓨터는 2개월 뒤 도착했다.❖스테판과 윌리엄의 회사는 이제,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탤런트 에이전시를 위한 주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개발하게 되었다. 두 형제는 넥스트 플랫폼에서 작업하면서 결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한 흑인 개발자였다. 당신의 배경보다 제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우리 이야기를 인종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할 수 없어요.” 스테판이 말했다. 압도적으로 백인 중심인 실리콘밸리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형제는 생존 전략을 개발했다. 인종 이슈가 혁신에 의해 무력화될 정도로 새로운 플랫폼을 찾는 것이었다. 먼저 뛰어들어 뛰어난 코드를 출시하는 것이다. 올드보이 네트워크와 벤처 캐피털이 도착할 때쯤에, 이미 배제하기에는 너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있으면 되었다.하지만 윌리엄 모리스 거래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고정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에이전트들은, 소프트웨어 사양을 변경하면서 아다메이션에 많은 요구를 했다. 게다가 에이전시는 에이전트들이 경쟁 에이전시로 이탈하는 것에 대한 편집증적 우려가 있었고, 이는 보안 악몽을 만들었다. 모든 디지털 정보는 각 사람마다 다른 열쇠가 달린 잠긴 금고에 보관되어야 했다.진짜 문제는 기술 사양보다 더 깊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넥스트의 프로그래머가 직접 자기네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라고 윌리엄은 회상했다. 그들은 스티브의 “스타 견인력”을, 넥스트 자체가 시스템을 구현한다는 화려한 상징성을 원했다.아다메이션이 소프트웨어를 거의 완성했을 때,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에 직접 전화했다. “우리는 당신들이 직접 해주기를 원합니다.” 넥스트가 프로젝트를 인수했지만, 에이전시가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받기까지는 3년이 더 걸렸다.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넥스트가 계약을 넘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아다메이션의 평판을 보호해주었다. 그는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대외적으로 그들을 단 한 번도 비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넥스트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청과, 이후에는 알랭 피넬 부동산이라는 고급 부동산 중개업체 같은 거물급 고객들을 그들에게 계속 소개해주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 고객이 되어, 할리우드 전역에 기꺼이 넥스트에 대한 찬사를 퍼뜨렸다. 이 에이전시는 자신들이 진짜 원했던 것, 바로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의 곁에 가까이 머무는 특권’을 얻은 셈이었다. 정작 컴퓨터 그 자체는 그저 아주 비싼 소품에 불과했다.❖1989년 9월 10일 일요일 밤 10시, 심신이 완전히 지쳐버린 버드는 그의 팀이 주말 내내 매달린 끝에 인쇄 기능이 다운되는 오류를 마침내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월요일 아침까지 다른 곳에서 또 터지는 문제만 없다면, 그들은 드디어 ‘넥스트스텝 1.0’을 정식 출시하게 될 것이었다.“수프가 됐어요!!!” 마케팅 프로그램 디렉터 줄리 웰치가 수요일에 모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립턴의 유명한 “수프 다 됐나요?” 광고를 재치 있게 빗댄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준비됐다는 뜻이었다.거의 1년간의 지연 끝에, 제품 매니저 밥 프레이크가 넥스트의 대표 소프트웨어 첫 번째 완제품 포장본을 비즈니스랜드 임원에게 직접 전달했다. 몇 달 동안 버그투성이 베타 소프트웨어와 씨름해온 고객들을 구원하기 위해, 200개의 업그레이드 패키지가 뒤따를 것이었다. 넥스트 컴퓨터를 산 모든 사람이 마침내, 개발자들이 찰흙을 빚듯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운영체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넥스트 창립 이래 4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어요”라고 대니얼은 팀에게 말했다.넥스트스텝은 역사에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기술적 성취였다. 스티브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점은, 그것이 정말 사용하기 쉽다는 사실이었다. 넥스트 사내에서 돌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패러디 텍스트 밈이 그 점을 잘 포착해 보여주었다. 이 밈 속에서 앨리스는 우연히 어느 기술 콘퍼런스장에 굴러떨어지게 되는데, 컴퓨터 회사들의 동물 버전, 코끼리 IBM과 곰 썬, 그리고 스티브를 가리키는 ‘잡스 참새’가 앉아서 끔찍한 맛의 커스터드가 담긴 컵을 돌리며 각각 “잘못된 맛”이라 외치며 옆자리로 넘기고 있었다. 그 커스터드에는, 대부분의 워크스테이션의 토대가 되는, 강력하지만 사용자 친화적이지는 않은 소프트웨어 유닉스(Unix)가 표기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길들이려 노력하던 시스템이었다.넥스트스텝은 유닉스를 달콤하게 만들려는 스티브의 시도였다.“무슨 운영체제로 돌아가는지 누가 신경 쓰나요?” 그는 〈맥위크〉에 말했다. “여러분은 매킨토시가 어떤 운영체제로 구동되는지 들어본 적이 결코 없어요. 왜냐하면 누구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그저 일반 대중도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듭니다.”아름다운 운영체제와 정교한 개발 도구에도 불구하고, 넥스트의 개발자 커뮤니티는 여전히 소규모였고, 이는 고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라이브러리가 적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스티브는 특유의 허세로 상황을 묘사했다. “모든 주요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넥스트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스티브는 〈맥위크〉에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만 빼고요.”2주 후, 스티브는 빌 게이츠를 직접 만나 그간의 답답함과 불만들을 쏟아낼 기회를 잡게 되었다. 두 숙적은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에서 열린 개인용 컴퓨터 산업 패널 토론회에 나란히 초대받았다. 행사 주최 측은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할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 장치로, IBM의 임원인 짐 카나비노를 무대 위 두 사람의 정중앙 자리에 전략적으로 배치해두었다.패널의 주제는 폰트 렌더링, 즉 컴퓨터 화면에 서체를 표시하는 방법이었다. 어도비 시스템즈가 글꼴 기술을 독점하여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모두를 분노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두 회사 사이에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글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애플과 손을 잡았다. 반면, 넥스트는 어도비와 파트너십을 맺었다.무대에서 빌이 애플과의 새 동맹을 발표하자, 스티브가 즉각 공격에 나섰다. “빌, 제 생각에 당신은 이보다 더 최악의 타이밍을 고를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라고 그가 쏘아붙였다.이에 빌이 맞받아쳤다. “스티브, 우리가 가져온 이 폰트 기술은 당신도 꼭 봐야만 할 겁니다. 훨씬 더 뛰어나니까요.”〈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스티브와 빌은 패널 내내 “기회만 있으면 독설과 분노 섞인 시선을 주고받았다.” 둘 사이에 앉아 있던 짐은 베이루트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포화 속에 끼인 것이다. 토론 어느 시점엔가 콘퍼런스 후원자인 스튜어트 올솝이 호소했다. “이제 정치적 게임을 그만하고, 우리 사용자들의 이익을 위해 이 모든 기술을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청중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지만, 두 라이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자신들이 멈췄던 그 지점에서 다시 설전을 시작했다.❖거래를 성사시키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티브는 영업을 위한 출장을 싫어했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인 회의실과 심포니 무대에서 연극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역 영업 매니저 딕 맨로스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방문은 해볼 만할 것이라 설득했다.스티브에게는 높은 자리의 한 팬이 있었다. 에릭 셀레스테는 오하이오 주지사 딕 셀레스테의 아들이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와 켄트 주립대학교의 넥스트 컴퓨터 사용자 그룹 회장인 재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넥스트 큐브를 오하이오의 주립대학들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오하이오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10월 17일, 스티브는 콘퍼런스 참석차 머물고 있던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가 미시간 대학교 총장 자택에서 열린 저녁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월드 시리즈 3차전 경기 도중 북부 캘리포니아에 규모 6.9의 강진이 강타했다. 스티브는 오하이오행 일정을 연기하고, 레드우드 시티에 있는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해 넥스트 팀과 몇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현지 주민들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느라 발신 통화가 몰리는 바람에 전화선은 온통 먹통 상태였다. 지진으로 인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다행히 넥스트 사옥이나 자산에는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스티브가 묵기로 한 콜럼버스의 주지사 관저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였다. 에릭은 스티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저녁 내내 진입로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스티브가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지만, 몇 시간 뒤 셀레스테의 고양이가 그의 위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벌떡 일어났다.스티브는 아침에 익숙하지 않은 영토에서 눈을 떴다. 가족의 아침 식탁이었다. 셀레스테 가정은, 에릭의 말로, “평소처럼 꽤 혼란스러운 무리”였다. “정치와 논쟁, 내부 농담으로 가득한” 여섯 명의 아이들. 주지사의 아이들은 유명인 손님에 익숙했고 연예인에 면역이 있었다. 그들은 가족 가운데 유일한 컴퓨터광인 에릭이 자신의 영웅 앞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동안, 논쟁하고 욕설을 했다.철저하게 통제된 고객 관계에만 익숙했던 한 남자에게, 그 상황은 하나의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여기, 아침 식사를 하며 서로 오렌지 주스를 건네고, 격식 없이 투덜거리며 논쟁을 벌이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식탁을 서로 간의 유대감을 쌓는 공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스티브는 서로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에릭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우리 가족이 온전한 ‘우리 가족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죠.”견과류와 과일을 먹으며 스티브는 그저 그 모든 것을 흡수했다. “자신만의 매우 엄격한 규칙을 따르면서, 새처럼 먹으면서”라고 에릭은 회상했다. 그러고 나서 딕과 그의 상사 밥 롱고가 리무진을 타고 스티브를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연설 장소로 데리러 왔다.차에 타자마자 스티브가 밥을 붙잡고 말했다. “밥, 방금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식탁에 둘러앉아 정치를 이야기하고 아침을 먹는 가족과 함께했어요. 밥, 당신은 아내를 어떻게 만났어요?”딕은 스티브가 배우자를 찾고 가정을 꾸리는 방법에 대해 세부 사항을 캐물으며 머릿속이 돌아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보면 즉시 그런 종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고 싶어 했어요”라고 딕은 말했다.스티브는 최근 여자친구 티나 레드세에게 청혼했지만, 그녀가 그를 거절한 상태였다. 티나와 스티브는 끊임없이 다투었다. 동료들은 그녀를, 아름답지만 어딘가 그에게 맞지 않는 “백설공주”라 묘사했다. 그녀는 그의 미래가 아니었다.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이 ‘정상으로부터의 시선’ 강연 시리즈의 일환으로 스티브를 초대했다. 스티브를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았기에 협소한 강의실은 금세 찼다. 교수들이 통로에 앉은 학생들에게 통로를 비워달라고 하자, 한 여성이 스티브의 수행원을 위해 예약된 앞줄 빈자리로 빠르게 옮겨 앉으며 그의 눈에 띄었다.로렌 파월이었다. 스물다섯 살의 MBA 학생. 그녀는 후에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친구가 자기를 행사에 끌고 갔다고 말했다. “스티브는 넥스트에서 일하고 있었고, 제게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전 별로 열광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열광적이었기에 같이 갔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스티브가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다 사고의 흐름을 잃었다. “그녀를 응시하면서 제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가 회상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던 중간에 할 말을 잊어버렸거든요.”관객석에서 지켜보던 넥스트의 젊은 영업사원 데이비드 베르트하이머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가 집중력을 잃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데이비드는 말했다. “무대에 오르면 그는 가장 집중력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거든요.”강연 후, 스티브는 주차장에서 로렌을 찾아 그 주말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녀는 좋다고 답하고 자기 전화번호를 주었다. 이어 스티브는 차로 걸어가 기다리고 있던 넥스트 팀에게 돌아갔다. 그날 저녁 시간에는 학술 자문위원회 만찬이 잡혀 있었다.하지만 무언가가 그를 멈추게 했다. “차로 걸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만약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중요한 고객들과 저녁을 먹겠는가, 아니면 그녀와 먹겠는가?’” 스티브는 한 이메일에 적었다.그는 로렌의 차로 달려가 물었다. “오늘 밤 저녁 어때요?”“좋아요,” 그녀가 말했다.그래서 스티브는 자신을 데리러 온 차로 돌아와 말했다. “전 오늘 회의에 안 들어갑니다.”“예? 뭐라고요?” 데이비드가 물었다.“응, 그냥 기분이 내키지 않아요. 그냥 안 갈 겁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대신 스티브와 로렌은, 세인트 마이클스 앨리라는 레스토랑에서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로렌은 뉴저지주 웨스트밀퍼드에서 자랐다. 숲과 접한 집이었다. 그녀가 겨우 세 살이었을 때, 해병대 비행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공중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학교에 갔는데 사람들이, 제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내 안에 상실이 있다는 것을”이라고 그녀는 〈보그〉에 말했다.그녀의 어머니는 교사였고, 불행한 재혼을 했으며, 로렌은 일찍부터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배웠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두 개의 학위를 받기 위해 장학금을 받는 법, 월스트리트로 가는 법 등. 스탠퍼드에서 MBA를 시작할 무렵, 그녀는 이미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에서 경력을 쌓은 뒤였다. 한 동료가 〈보그〉에 표현한 대로, 그녀는 “노동자 계급의 딸이며,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스티브는 후에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을 바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계획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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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2일 ·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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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성장 05] 마블, 아이언맨 회사를 살리다

📅 2026년 9월 30일 · 👁 47

[비즈니스 성장 05] 마블, 아이언맨 회사를 살리다기업의 성공 여부는 시장의 변화에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존 체임버스John Chambers, 전 시스코Cisco 회장 겸 CEO1939년 만화책의 첫 황금기에 설립된 타임리 퍼블리케이션스Timely Publications(마블의 1961년 이전 사명)을 살펴보자. 당시 이들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본가인 막강한 DC 코믹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언제나 2인자 위치였지만 재무 상태는 건실한 기업이었다.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캡틴 아메리카를 필두로 여러 인기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 계기였다. 마블은 이를 발판 삼아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1950년대에는 정부의 만화책 윤리성 조사가 있었다. 1960년대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경쟁사가 사라졌지만 마블은 끝까지 버텼다. 오히려 마블은 잭 커비Jack Kirby와 스탠 리Stan Lee 같은 새로운 창작자를 기용했다. 이를 통해 DC 코믹스를 맹렬히 추격했다. 마블 특유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는 새로운 세대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는 종교에 가까운 강력한 팬덤으로 이어졌다.하지만 1993년부터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근시안적이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결정을 남발했다. 이는 고스란히 빚더미로 돌아왔다. 50년 넘는 역사와 헐크, 엑스맨, 판타스틱 포, 스파이더맨 등 5천 개가 넘는 캐릭터를 보유한 브랜드가 어쩌다 위기를 맞게 된 걸까? 재앙은 너무나 순식간에 닥쳤다.당시 경영진은 결정적 순간에 시장 맥락을 완전히 잘못 읽었다. 만화책과 카드 교환 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계속 올렸다. 가판대 시장의 몰락이 가져올 파장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장 활발했던 고객층인 수집가들이 시장을 떠나는 신호도 놓쳤다. 심지어 제품의 질까지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경영진의 내부 파벌 싸움까지 더해지면서 이 상징적인 브랜드는 안팎으로 완벽한 폭풍을 맞았다.열성적인 팬덤과 평단의 찬사도 재앙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6년 12월 27일, 마블은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직원의 3분의 1이 해고되었고 막대한 부채가 남았다. 2000년 한 해에만 1억 5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마블은 불투명한 미래와 함께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다.아이언맨 : 비주류 캐릭터의 반란2008년 〈아이언맨〉이 전 세계 극장을 휩쓸었을 때, 마블은 부활 수준을 넘어 캐릭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섰다. 마블이 일궈낸 이 기적은 변화하는 시장 맥락 속에서 적절한 성장 경로를 정교한 실행 순서와 조합으로 실행한 결과다. 이 전략은 너무나 성공적이었고, 최근 몇 년 동안 마블은 시장의 맥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버렸다.비결은 간단했다. 마블은 브랜드의 진짜 가치가 만화책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7년 토이 비즈와 마블 엔터테인먼트 그룹이 합병하며 파산 상태를 벗어났고, 마블 엔터프라이즈가 탄생했다. 이후 몇 년간 적자가 이어졌지만 마블은 성장을 위해 고객 및 제품 다각화와 제품 라인업 확장이라는 명확한 비전을 세웠다.이 성장 경로들의 핵심은 기존 시장과 신규 시장 그리고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마블이 이 경로들을 선택한 것은 경쟁이 치열한 신규 시장에 뛰어들거나 미개척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회사의 운명을 거는 수준의 위험을 감수한 도박이었다.말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간단하다. 이 사례에서 고객 및 제품 다각화는 새로운 독자층(고객)을 위한 신규 캐릭터 제작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블은 더 큰 승부수를 던졌다. 마블은 본업인 핵심 사업을 유지하며 혁신을 시도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존 자산(제품)을 활용한 것이다. 바로 마블만의 독보적인 상징적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은 이미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덕분에 마블은 자신의 자산들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매체를 고민했다. 그렇게 제품을 다각화하기로 했고 결국 영화를 선택했다.하지만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기업인 마블도 고객 및 제품 다각화를 추진하다가 큰 손해를 본 적이 있다. 테마 레스토랑인 마블 마니아, 인터랙티브 CD-ROM, 스카이박스와 함께한 트레이딩 카드(카드 교환)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1998년에 문을 연 마블 마니아 1호점은 불과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CD-ROM과 트레이딩 카드 계획은 빛조차 보지 못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논의할 때는 좋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출시 시점에는 이미 시장 맥락이 변해 있었다.마블은 시장 환경의 변화를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제품을 다각화하고 싶었고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마블은 영화 제작사들과 손을 잡기로 했다. 파트너십 경로와 고객 및 제품 다각화 경로를 결합해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의 시도들처럼 이 노력 역시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드러났다.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비즈니스에서 충성도 높은 핵심 팬층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보통 전체 사용자의 10~20퍼센트에 불과한 이들이 프랜차이즈 전체 가치의 80퍼센트 이상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 전략은 이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핵심 팬들과의 유대감을 깊게 다지는 동시에, 이들의 열정을 발판 삼아 브랜드를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나가야 한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스파이더맨, 엑스맨, 블레이드 같은 캐릭터들이 20세기 폭스나 소니와 맺은 라이선스 계약은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그 이득은 영화사들의 몫일 뿐, 마블의 것이 아니었다. 영화 〈블레이드〉는 적당히 성공했다. 〈엑스맨〉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성기를 다시 열었다. 〈스파이더맨〉은 4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블레이드〉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7천만 달러를 벌 때 마블이 손에 쥔 돈은 고작 2만 5천 달러에 불과했다. 〈엑스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류상으로는 훌륭한 아이디어였을지 모르나 새로운 전략 없이는 제 살 깎아먹기에 불과했다. 마블이 맺은 파트너십 구조는 파트너 사에는 막대한 매출을 주었지만 마블에는 비참한 결과만 남겼다.가장 어두운 시기, 마블은 위기를 벗어날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인데버Endeavor의 콘텐츠 에이전트 데이비드 메이젤David Maisel이 마블에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최고의 자산을 다른 회사에 헐값으로 넘기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제작 스튜디오를 직접 차리면 수천 개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활용해 영화나 비디오 게임 같은 새로운 매체로 진출할 수 있고 동시에 충성도 높은 고객 기반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면 수익도 100퍼센트 독점할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마블은 고객 및 제품 다각화로 완전히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진을 포함한 인적 구성, 제품, 자산 투자 등 모든 면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고민 끝에 마블은 어벤져스를 포함한 핵심 캐릭터 10명을 담보로 잡혔다. 그리고 메릴린치와 7년간 5억 2,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마블 스튜디오가 탄생했다. 당시 마블의 선택은 말 그대로 기업의 존립을 건 도박이었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면 마블은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화 흥행을 통한 자금 수혈 덕분에 마블은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운 좋게도 계약 체결 두 달 뒤 뉴라인 시네마가 보유했던 아이언맨 판권이 마블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이언맨은 메릴린치 계약에 포함된 10명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영화를 만들려면 마블이 직접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그럼에도 마블은 단호했다. 마블은 실사 영화로 제작된 적 없는 캐릭터로 첫 단추를 끼우고 싶어 했다. 아이언맨이 적격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2008년에 개봉한 〈아이언맨〉은 5억 8,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역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후 아이언맨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약 25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거둬들였다. 이 성공은 마블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또한 최대 경쟁사인 DC 코믹스를 압도하며 영화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발판이 되었다.마블 유니버스마블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거나 적절한 조합과 실행 순서를 결합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약간의 운도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원작 만화의 역사를 계승한 마블 유니버스가 탄생했다.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 영상을 만났다. 만화책 책장을 넘기며 역사적인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오는 장면이었다. 눈썰미 좋은 팬들은 80대인 스탠 리의 카메오 출연을 즐겼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에 열광했다.마블은 수십 년 전 만화책에서 썼던 방식을 영화에 도입했다. 특정 시리즈에서 조연으로 신규 캐릭터를 소개한 뒤 인기를 얻으면 단독 영화로 독립시키는 방식이었다. 성공하면 다시 팀 프로젝트에 합류시켰다. 이러한 섞기과 맞추기를 통해 마블은 무한에 가까운 이야기와 캐릭터 조합을 만들어 냈다. 설령 작품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해당 캐릭터를 다시 무리 속에 섞어두고 다른 후보로 대체하면 그만이었다.마블은 만화책이라는 한정된 제품에 매달리지 않았다. 대신 고객 및 제품 다각화를 밀어붙여 이 모든 것을 이뤄냈다. 마블은 영화 제작에 사활을 걸었다. 변화하는 시장 맥락에 맞춰 제품군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인쇄물 비중을 줄이고 영화 비중을 높였다. 유명 캐릭터와 비주류 캐릭터, 팀 프로젝트를 정교하게 섞어 제품 조합을 전면 재편했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등장과 상호작용의 실행 순서를 치밀하게 설계했다.마블은 화려하게 돌아왔다. 2009년 8월,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파산 선고 11년 만의 일이었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2000년으로부터는 불과 9년 만에 마블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돌려주었음은 물론,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고 수많은 신규 고객까지 사로잡았다. 2017년 12월 디즈니의 폭스 인수는 마블 유니버스의 확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인수는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지형을 다시 그리고 있다.마블 : 핵심 인사이트마블이 마블 마니아 레스토랑이나 CD-ROM, 스카이박스와의 새로운 트레이딩 카드 사업처럼 실패로 끝난 여러 시도 이후 고객 및 제품 다각화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마블은 없었을 것이다. 이 경로에서 실패는 학습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기업 문화가 중요하다. 성장을 자극할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고난을 견뎌낼 내부적 강인함이 없다면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혁신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20세기 폭스나 소니와의 파트너십은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익 모델 측면에서 마블이 계속 고집할 길은 아니었다. 이런 계약을 맺을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는 파트너십 경로에 대한 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마블의 경우, 고객 및 제품 다각화는 기존 자산(캐릭터)을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로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덕분에 마블의 본질인 스토리텔링을 유지하면서 충성 고객층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고객이 왜 당신의 브랜드를 좋아하고 지갑을 여는지 정확히 파악하라. 어떤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지 결정할 때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위험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 된다.

[NeXT 스티브 잡스 03] 영웅과 멍청이 롤러코스터
[NeXT 스티브 잡스 03] 영웅과 멍청이 롤러코스터

[NeXT 스티브 잡스 03] 영웅과 멍청이 롤러코스터

📅 2026년 9월 28일 · 👁 58

영웅과 멍청이 롤러코스터 넥스트의 기계공학 디렉터 켄 헤이븐과 함께 마그네슘 큐브의 산화 피막 표면을 살펴보는 스티브 잡스.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 1987년.팀의 법적 승리 후, 대니얼과 그의 아내 수전은 스탠퍼드 컴퓨팅 담당 디렉터 마이클 카터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원래는 작고 조용한 금요일 저녁 자리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저녁 준비가 한창일 때, 스티브가 소송 종결을 축하하기 위해 대니얼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대니얼이 마이클의 집에 있다는 것을 듣자, 스티브는 자신과 여자친구 티나 레드세도 이 아늑한 모임에 스스로 초대했다. 그러더니 다시 전화해서, 자신의 선불교 스님 고분 오토가와도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마이클은 당시의 아내에게 몸을 돌렸다. “스님이래. 뭘 드시지?” 하고 물었다. 아내는 파테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의 스님은 일반적으로 채식을 하는 일본 선종 전통에 속해 있었다. “이런.” 하며 마이클이 냉장고를 확 열었다.마이클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그날 밤이 끝나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허둥지둥 채소 파에야를 만드는 와중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별빛 아래, 선불교 스님이 황토색의 흘러내리는 가사를 입고 도착해 있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작은 무리와 함께 웃고 있었다.대부분의 불교 전통에서 스님들은 흡연이나 음주 같은 삶의 과잉을 삼가고, 자신을 공경하는 재가신도들과 떨어져 검소하게 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의 스님은 자신만의 깨달음의 법도를 따랐다. “존자”와 같은 종교적 존칭으로 불리기를 거부했고, 자기 때문에 어떤 파티의 전통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마이클은 허겁지겁 준비한 것을 차려냈다. 닭고기와 조개를 빼낸 채소 파에야였다.❖단순함과 미니멀리즘을 강조하는 일본 선에 대한 스티브의 헌신은 그의 디자인 접근 방식뿐 아니라 삶의 방식에도 반영되었다. 회의에서 스티브는 이미 회사 컴퓨터의 형태를 허공에 양손으로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같은 모양을 계속 그려냈으니, 바로 정육면체였다.스티브는 1985년에 공개된 커넥션 머신이라는 1.5미터짜리 검은 정육면체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것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에 나오는 검은 모노리스처럼 서 있었고, 반투명 패널 사이로 수천 개의 빨간 LED가 거대한 두뇌의 시냅스처럼 깜빡였다. 그 기계는 MIT 컴퓨터과학자 대니 힐리스의 발명품으로, 그는 6만 4,000개의 프로세서를 자신이 “20차원 하이퍼큐브”라 부르는 것으로 연결하여 인공지능을 구축하고자 했다. “언젠가, 어쩌면 곧, 우리는 인간 정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 사고하는 기계를 만들 것입니다”라고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적었다. 디자이너 타미코 티엘과의 협업을 통해 그는 이 수학적 개념을 인상적인 물리적 형상으로 만들었다. 여덟 개의 작은 큐브가 융합되어 하나의 큰 큐브를 이루는 형상이었다. 그것은 미술 작품처럼 보였고, 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기도 했지만, 커넥션 머신은 실제로 과학 실험을 위한 슈퍼컴퓨터로 기능했다.스티브는 조안나 호프먼을 통해 커넥션 머신을 알게 되었고 강박적으로 빠져들었다. 여기에, 컴퓨터의 형태가 단순한 기능과 함께 감성적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증거가 있었다. 정육면체 형태는 법적 문제도 해결해주었다. 애플과의 소송 합의에 따르면 넥스트는 모니터를 컴퓨터 본체 위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 이것이 스티브를, 디스플레이 아래가 아니라 옆에 놓이는 완벽한 정육면체 설계로 이끌었다.스티브는 조안나에게 커넥션 머신을 누가 디자인했는지 알아내라고 했다. 넥스트 컴퓨터를 그 사람이 디자인해주기를 원했다. 조안나가 타미코의 행적을 추적했을 때, 그녀는 이미 예술가가 되기 위해 독일로 떠나 있었다.대신 스티브는 유럽의 한 디자인 회사를 고용하여 완벽한 정육면체를 디자인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화해서 말하더군요. ‘다음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오세요. 우리가 만든 것을 보셔야 합니다. 요구하신 대로 큐브도 만들어봤습니다.’” 스티브가 회고했다. “‘그리고 컴퓨팅의 형태를 영원히 바꿀 훨씬 더 좋은 무언가도 있습니다!’”스티브는 유럽으로 날아가 “정말 환상적인 빌드업”에 자리했다. 5년 안에 모든 컴퓨터가 이렇게 생길 것이라고 디자이너들은 약속했다.“그리고 그들이 커튼을 걷어냈죠.” 스티브가 말했다. “그것은 사람 머리 모양이었어요.”경악한 스티브는 디자이너들을 해고했다.세 번째 시도로, 그는 애플과 함께 일하던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라는 디자이너에게 연락했다. 하르트무트는 곱슬머리에 굵은 콧수염을 가진 키 큰 남자로, 우상파괴적 회사 프로그 디자인을 운영했다. 초기 컴퓨팅의 차갑고 기술적인 세계에서 하르트무트는 이단아였다. 그의 만트라는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였다. 그는 컴퓨터가 인간적이고 직관적이며, 심지어 관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하르트무트는 1982년 애플과 일하기 위해 독일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 협업은 디자인 경연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여섯 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하고, 각각 10만 달러를 주고, 다섯 개의 제품을 디자인해달라고 했습니다.” 스티브가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말했다. 하르트무트와 프로그 디자인의 12인 팀이 경연에서 우승하여 애플과의 계약을 따냈다.하르트무트는 먼저, 애플의 기존 제품이 투박하고 영감이 없다는 평가를 제시했다. 이에 스티브는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실험할 전권을 주었다. 하르트무트의 첫 번째 성과는 애플 IIc였다. ‘스노 화이트’라 명명된 깔끔한 흰색 미학이 특징이었다. 이 외관은 애플의 다음 세대 기술을 위한 시각적 청사진이 되었다. “하르트무트가 우리를 구해주었고, 세계 최고의 제품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라고 스티브는 넥스트에서의 그의 작업에 대해 말했다.1986년 무렵 하르트무트는 존의 영혼 없는 컴퓨터 제조 방식에 환멸을 느꼈다. 애플과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한 뒤, 그는 넥스트와 새 계약을 체결하고 자기 부엌 테이블에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마침내 철학적 깊이를 가진 디자인을 추구할 자유를 느꼈다.하르트무트는 스티브의 큐브 디자인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자연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형태죠”라고 하르트무트는 말했다. 순수하고, 흠 없고, 추상적이었다. 하르트무트는 어떤 산업 제품이든 그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큐브가 사용자에게 도전하고 사색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하르트무트는 고대 기하학에서 영감을 얻었다. 훗날 이슬람 건축에서 카바에 반향된 그리스의 입방체 형태였다. 카바는 메카에 있는 신성한 검은 돌 구조물로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향하는 곳이다. 큐브에는 다른, 더 실용적인 장점도 있었다. 스티브는 후에, 여러 형태를 검토한 결과 큐브가 “마더보드, 칩, 하드웨어 기능 같은 것들을 넣는 데 있어서 단연 가장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1.3기가바이트(GB)까지 넣을 수 있고, 내년까지는 3GB도 가능합니다. PC보다 작은 면적의 30센티미터짜리 큐브에 넣을 수 있는 것이 꽤 놀랍습니다.”하르트무트와 스티브는, 카바와 커넥션 머신처럼 큐브를 검은색으로 만들기로 했다. 학자들을 위해 설계된 기계인 만큼, 검은색이 진지함과 힘, 신비감을 부여할 것이라 느꼈다. 또한 애플의 밝은 흰색과 의도적으로 대비되는 것이기도 했다.스티브는 새 컴퓨터를 “학자의 워크스테이션”이라 부르며, 사업 계획서에 이 기계가 “향후 5년간 학습에 혁명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적었다.❖스티브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로고도 필요했다. 네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스티브에게 작품을 선보였지만, 그는 그들의 작업이 평범하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때, 넥스트의 10번째 직원으로 이전에 애플에서 데스크톱 아이콘을 디자인한 인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수전 케어가, 스티브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디자이너 폴 랜드에 관한 책과 기사 모음을 건넸다. “가장 명쾌하고 탁월한 작가이자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고 그녀는 후에 회상했다.폴은 미국 디자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스티브처럼, 로고가 회사의 가치에 대해 본질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단순함은 미학적 이상일 뿐 아니라, 내용이든 형식이든 쉽게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함축합니다”라고 그는 1985년의 유명한 저서 《디자이너의 예술(A Designer’s Art)》에 적었다.일흔둘의 폴은 다부지고 안경을 쓴 인물로 브루클린 억양에 미술사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 그리고 스파게티에 케첩을 뿌리는 것 같은 괴팍한 습관의 소유자였다. 그는 IBM과 UPS, 웨스팅하우스, ABC의 상징적 로고를 만들었다. 예일 대학교에서 강의했고(예일 대학교 출판부 로고도 그가 디자인했다), 인근 코네티컷주 웨스턴에 자신이 설계한 모더니즘 주택에서 작업했는데, 그 집은 색종이와 테이프로 만든 책과 모형들로 넘쳐났다.그리고 그가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로고들 가운데 몇 개를 만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디자인 작업에 컴퓨터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스티브가 후일 넥스트 기기를 그에게 보내자, 폴은 상자를 열어보고 조수에게 말했다. “이걸로 뭘 하라는 거야? 차고로 가져가.”폴은 어리석은 사람을 너그럽게 봐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일에서 교수로 있을 때 그의 비평은 너무 잔인하여, 한 학생이 못 참고 그의 귀를 주먹으로 친 적도 있었다. 포드 자동차가 폴에게 로고 재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그는 50명의 임원이 모인 회의실에 들어서서 즉시 물었다. “여기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러고는 나머지 49명이 보고 있는 가운데, 그 한 사람에게만 발표를 했다.IBM에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일할 때, 한 동료가 적은 바에 따르면, 폴은 영국 팀의 결과물이 “IBM에서 만든 최악의 작업으로, 구상도 형편없고 만듦새도 형편없으며, 체계도 없고 그저 싸구려 같다”고 평했다. 한번은 IBM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포트폴리오 리뷰를 마치면서, 폴이 디자이너에게 나이를 물었다. “서른둘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아직 배울 시간이 많군요”라고 폴은 말했다.디자이너가 떠난 뒤, 폴은 동료 톰 하디에게 돌아서서 물었다. “제가 그 친구한테 너무 심하게 했나요?”“그는 비판이 탁월함에 도달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라고 톰은 설명했다. 폴의 생각에는, 잔인할 정도의 정직함이 일종의 친절이었다.스티브는 폴의 디자인이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열망과도 부합했다. “폴의 작품은 나에게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지적입니다”라고 스티브는 회고했다. “그의 작품 중 어떤 것이든 그 내면을 뜯어보면, 그 안에서 일어났던 지적 문제 해결의 깊이를 발견하게 됩니다.”스티브가 처음으로 폴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바로 넥스트 로고 옵션을 몇 가지 제시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닙니다”라고 폴은 말했다. “제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대가를 지불하시게 될 겁니다.”폴의 가격은 10만 달러였다. 넥스트가 로고를 사용하든 안 하든.엄청난 금액이었지만 스티브는 동의했다.“보통 어떤 심벌을 회사 이름과 연결시키는 데 10년이 걸리고 돈도 1억 달러가 듭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스티브는 도전적으로, 처음부터 상징적인 로고를 선택하여 그 대기 기간을 건너뛰고 싶었다. 폴은 코네티컷의 자기 디자인 팀에게, 넥스트 프로젝트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스티브가 위대한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좋은 클라이언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잠재적 걸림돌이 있었다. 폴은 IBM과 독점 계약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와 일하려면 IBM의 허가가 필요했다. 스티브는 IBM CEO 존 에이커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예외를 요청했다.그 통화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자, 스티브는 부회장 폴 리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며칠간 끈질기게 밀어붙이자, 폴 리조는 스티브에게 저항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실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 장애물이 제거되자 스티브는 폴 랜드와 계약할 수 있었다.폴은 스티브를 만나기 위해 팰로앨토의 넥스트 사무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날아왔고, 스티브는 폴에게 회사의 비전과 첫 번째 제품인 큐브가 어떻게 보일지를 설명했다.폴은 주의 깊게 들었다.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리고 떠났다.❖스티브의 거액 로고 지출은 넥스트 내부에 우려를 자아냈다. 애플 소송이 이미 시간과 상당한 자원을 소진시킨 터였다. 이제 회사에는 투자자도, 판매할 제품도 없는데, 스티브가 로고에 여섯 자릿수를 쏟아부은 것이다. 21세기 기준으로도 신생 스타트업이 쓰기에는 큰 금액이었다.스티브가 자기 돈 700만 달러로 넥스트를 출범시켰기에 회사 재무팀은 그가 애플 시절보다 더 검소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는 심지어 직원들에게 규율과 통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는 익숙해진 샴페인 취향을 버리지 못했다”고 CFO 수전 반스는 말했다. 옛 습관이 다시 나타나면서 회사의 자금 소진율이 올라갔다. 호화로운 지출, 집착적 디테일, 비타협적 취향. 스티브는 넥스트 이미지의 모든 면이 완벽하기를 원했다. 뉴욕의 광고 대행사를 원했다. 일류 홍보 회사를 원했다. 회사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과 얼굴, 직책을 기억할 수 있는, 명문대 출신의 리셉션 데스크 안내원도 원했다. 하지만 10만 달러짜리 로고 비용은 그 모든 것의 정점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넥스트 직원들 사이에서 내부 농담을 낳았다. 밀리로고(milli-logo)라는 새로운 비용 측정 단위였다. 1밀리로고는 100달러였다. 고급 컴퓨터 모니터는 20밀리로고 정도, 디자이너 소파? 70이나 80밀리로고. 스티브가 우연히 이 농담을 엿들었는데, 그는 웃지 않았다.사무실 화장실 타일 줄눈이 잘못된 색으로 시공되었을 때, 스티브는 모든 타일을 다 걷어내고 약 2만 달러를 들여 교체했다. 이 에피소드는 또 다른 단위를 탄생시켰다. 밀리그라우트. 20달러.스티브의 사치스러움이 완전히 무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사업의 메커니즘을, 거의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꿰뚫고 있었다. 애플에서 그는 현금 흐름을 마스터했다. 고객에게는 빨리 받고 공급업체에게는 천천히 지불하는 것이었다. “저는 누구보다 대차대조표를 잘 만들 수 있어요”라고 그는 수전에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검소함으로 이루어낸다면, 그 공은 절대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넥스트에서 그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수전의 재무 분석가 중 한 명이 이 전환을 포착했다. “재무팀인 우리 모두는 오렌지의 조각들을 보고 있는데, 스티브는 오렌지 전체를 계속 보고 있어요.” 다시 처음부터 만드는 대신, 스티브는 비싸더라도 확실한 기반에 계산된 베팅을 하고 있었다. 수전에 따르면, 그는 넥스트의 잠재력을 너무나 강하게 확신했기에, 더 싼 대안을 거짓된 절약으로 보았다. 폭스바겐을 메르세데스로 바꾸려 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메르세데스를 사는 것이 낫다는 논리였다.그리고 수전의 재정적 감독에 대한 스티브의 개방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책임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그는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자기 돈이었으니까.그의 지출 우선순위는 또한 팀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 타일 시공처럼 일상적인 것에도 회사의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폴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 코트 호텔에 틀어박혀 로고 작업에 돌입했다. 스티브는 전화로 자신의 비전을 더 상세히 설명했고, 폴은 들으며 낙서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음 며칠간 호텔 메모지와 냅킨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했다. 폴은 ‘NEXT’를 원 안에 양식화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한번은 검정으로 한번은 흰색으로. X를 강조하여 E와 T에 스며들게 했다. 심지어 X 주위의 공간을 채워 나비넥타이처럼 보이게 시도하기도 했다.그러다가 허츠 렌터카 브로슈어의 뒷면에, 폴은 ‘NEXT’를 대문자로 큐브 안에 대각선으로 배치했다. 폴에게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느껴졌다. 그는 큐브 그래픽을 가지고 노는 발상 작업을 재미있어 했고, 스티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문제를 발견했다. 한눈에 보면 대문자 ‘NEXT’가 ‘EXIT(출구)’라는 단어로 쉽게 오인될 수 있었다. 이상적이지 않았다.그는 문자 E에 관심을 돌려 연관 개념들을 끄적였다. 교육(education), 전문성(expertise), 탁월함(excellence), 계몽(enlightenment), 심지어 ‘e=mc²’까지. 결국 소문자로 하기로 결정하여 ‘NeXT’를 만들었다.“소문자 ‘e’는 좋은 대비를 이루고 더 독특하다”고 그는 후에 메모했다. 폴은 해결책에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적절한 서체와 색상을 선택할 시간이었다. “서체는 다소 중립적으로 유지하고, 메시지는 어떤 의미 있는 개념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적었다. 그는 강렬한 색상을 선택했다. 글자당 하나씩, 주홍과 노랑, 초록, 그리고 체리 핑크의 인상적인 색조인 세리즈. 회사의 젊은 에너지를 포착하기 위해서였다.그는 그 결과물을 “대비의 연구”라고 묘사했다. 큐브 안의 다채로운 글자들은, 그가 적었듯이, “크리스마스 실의 격식 없고 친근하며 자발적인 분위기와 함께 고무 인장이 풍기는 권위”가 넘쳤다.폴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의 인쇄소 모스버그사에 교정쇄를 보냈다. 모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결정적인 마지막 변경이 거의 우연히 일어났다. 폴의 조수 밥 번스가 기억하기로, 폴이 봉투 뒷면의 스탬프 형태로 큐브 로고를 무심코 28도 기울여놓은 적이 있었다. 인쇄소 주인의 아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했다. 폴도 동의했고, 그 미묘한 각도가 로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폴이 우연의 산물로 본 것을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는 우주적 운명으로 보았다. 로고의 28도 기울기는 하르트무트가 주장하기로 신비로운 조화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피타고라스 철학에서 28은 “완전수”로, 그 약수들의 합과 같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수가 우주 질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었다.몇 주 뒤, 폴은 로고를 스티브에게 프레젠테이션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다시 날아왔다. 재클링 하우스에서 저녁을 먹은 뒤, 폴은 스티브에게 최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의 창작 여정을 추적한 정성스럽게 준비된 소책자를 건넸다. 스티브는 바닥에 앉아 각 페이지를 천천히 읽었다.소책자에는 폐기된 옵션들과, 최종 디자인으로 이어진 각각의 진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스티브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그의 미소가 커져갔다. 마침내 정확히 28도 기울어진 검은 큐브, 그 안에 ‘NeXT’가 두 줄로 나뉘어 쓰인 최종 디자인에 도달했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 폴을 꼭 껴안았다. 폴은 놀란 표정이었다.폴은 스티브를 좋아했고 그들의 파트너십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보적이었다. 그가 밥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 친구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는 가혹한 감독관이야.” 밥은 생각했다. ‘오십보백보군.’폴의 판단은 옳았다. 폴이 스티브를 위한 최종 교정쇄를 마무리할 때, 그는 소책자에서 스티브에게 보여준 정확한 노란색 음영, 팬톤 115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차이를 거의 감지할 수 없었는데, 스티브는 즉시 그걸 알아챘다. “스티브가 그 노란색을 싫어합니다”라고 수전 케어가 폴에게 적었다. “이건 주황색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당신이 로고 책에서 사용한 것과 비슷한 ‘진짜 노란색’을 원합니다. (하지만 소소한 자비에라도 감사하세요. 그가 빨강, 초록, 세리즈는 마음에 들어 합니다.)”스티브의 꼼꼼함은 넥스트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와 브로슈어, 사무실 진입로 표지판까지 확장되었다. 그는 회사 레터헤드에 전화번호와 팩스번호가 정확히 정렬되기를 원했다. 전설적인 제지회사 크레인의 카드지에 인쇄된 회사 명함이 충분히 두껍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요, SJ가 더 두꺼운 것을 원합니다”라고 수전이 폴에게 적었다. “모호크 슈퍼파인에서 나온 것이면 어떨까요?”넥스트 팀도 스티브의 눈에 띌 것을 대비해 높은 미적 기준을 유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경력에서 가장 공들인 작업이라 불렀으며, 한 줄의 기울기나 캡션의 형태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그들은 내부 문서조차, 어색한 줄 바꿈이나 들쭉날쭉한 여백을 피하기 위해 다시 쓰곤 했다.그의 강렬함을 통해서든, 그의 취향을 통해서든, 혹은 규율에 대한 강요를 통해서든, 스티브는 직원들이 결코 잊지 못하는 디자인 문화를 창조했다. 많은 이들이 높은 기준과 탁월한 작업을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자부심을 사랑했다. 수년이 지난 뒤에도 다수는, 넥스트가 자신이 일해본 가장 마법 같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어디도 가까이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스티브의 피드백은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려웠으며, 신랄했다.광고 대행사 프레젠테이션 도중, 스티브는 이미 긴장한 임원들의 말을 자르며 요청했다. 전화번호부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전화번호부가 도착하자 그는 몇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게 여러분에게 듣고 있는 그 헛소리보다 더 재미있는 읽을거리군요.” 방 안이 얼어붙었다.그는 또한 변덕스러웠다. 넥스트 팀원들은 그것을 ‘영웅-멍청이 롤러코스터’라 불렀다. 그 전에 같은 경험을 했던 애플 출신들로부터 물려받은 표현이었다. 스티브는 어떤 작업을 한참 칭찬해놓고, 다음 순간 돌아서서 방 가득한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었다. 뭐가 맞는 건지 절대 알 수 없었다.폴은 스티브의 변덕에서 위험 신호를 느꼈다. 스티브가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난 뒤, 이 로고 디자이너가 그의 말을 끊었다. “이보게, 지금부터 제품이 나올 때까지는 자네 자신이 곧 제품이야. 그러니 사람들에게 잘하게.”허를 찔린 스티브가 힘없이 대답했다. “글쎄요, 노력해볼게요.”방 건너편에서 넥스트의 리셉션 데스크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력이란 없습니다, 스티브.” 그녀가 말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뿐입니다.”❖1986년 3월, 팀의 첫 번째 수련회로부터 4개월 뒤, 넥스트 직원들은 두 번째 모임을 위해 버스를 타고 다시 페블비치로 향했다. 스티브는 다시 한번 파도가 보이는 회의실 앞에 섰는데, 이번에는 검은 터틀넥 위에 체크무늬 버튼다운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뒤편 스크린에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빛을 비추었다. 첫 번째 슬라이드를 클릭하자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허니문은 끝났다.’“우리가 회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그 가운데 4개월은 소송에 시달렸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결론은, 세상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상이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얼마나 적시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가입니다.”출시까지 15개월이 남은 상황에서, 팀은 여전히 뚜렷한 제품 비전 하나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었다. 자물쇠가 달린 박스에 담아온 엉성한 워크스테이션 시제품 하나가 가진 전부였다. 회사의 힘겨운 디자인 프로세스가 현실의 데드라인과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좌절감이 표면으로 올라왔다. “도대체 우리가 뭘 한다는 건지, 어떤 기능이 있고 이게 무슨 물건인지, 누구한테서도 명확한 그림을 못 받고 있어요”라고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 버드가 수련회 중 어느 시점엔가 말했다.스티브는 팀 프레젠테이션 도중 폭발했다. “아, 이건 정말 화가 나는군요.” 그는 팀이 시장 출시 일정을 논의하는 동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스티브는 무력감의 결과를 예견했다. 또 한 달이 지나갈 것이고, 그가 우려하기를, 여전히 흥미로운 어떤 것도 개발 중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고 또 한 달, 그 후 또 한 달.수전이 출시 날짜를 미루자고 제안하자, 스티브가 폭발했다. “아뇨, 일정 미루는 건 잊어버리세요… 그저 출시만 보세요!” 그가 좌절할 때 그는 추해 보였다고 넥스트 직원들은 회상했다.진짜 전투는, 그가 말했다, 단순했다. 제품이 나오기 전에 돈이 바닥나지 않는 것. 아이러니한 것은, 스티브의 무절제한 지출이 넥스트를 위태로운 길로 이끌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큰소리를 쳤기 때문에, 수전이 말한 바로는 거래업체들이 넥스트의 은행 잔고가 2,000만이나 3,000만 달러는 될 것이라 추정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수련회에서 수전은 지출 문제를 제기했다. 어쩌다 보니 10만 달러가 회사의 표준 지출 단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스티브의 로고가 정상적인 경비의 기준선을 설정한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브는, 팀이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고 새 장비를 사는 것을 비판했다. “우리가 작은 돈을 아끼는 걸 하지 않는데, 그게 다 쌓입니다… 그 스타트업 정신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두 달 뒤, 재정적 규율에 대한 스티브의 의지는 매우 개인적인 과속 방지턱에 부딪혔다. 애플이, 스티브를 모든 사람이 알게 만드는 데 일조한 바로 그 광고 대행사 차이엇데이를 해고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존 스컬리는 애플의 5,000만 달러 광고 예산을, 오랫동안 흠모해온 격식 있는 대행사 BBDO에 넘겨버렸다.“스티브는 차이엇데이가 받은 처우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감정을 느꼈습니다”라고 수전은 회상했다. 이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그는 자기 돈 2만 2,000달러를 들여 〈월스트리트 저널〉에 전면 광고를 냈다. 일반 노동자의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스티브의 전면 광고는 빈정대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차이엇데이. 진심으로.” 그리고는 순수한 도발로 전환했다. “개인용 컴퓨터 산업이 이제 ‘건설자’에서 ‘보호자’에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카피는 이어졌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 산업을 창조하고 키운 개인들에게서, 산업을 현 상태로 유지하며 미미한 미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일할 사람들에게로.” 광고는 개인적 메모로 끝났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애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됩니다.”언제나처럼, 스티브의 지출은 그의 우선순위를 반영했다. “넥스트에서 스티브의 동기의 상당 부분은 애플을 까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스컬리를 까는 것이었죠”라고 대니얼이 회고했다.스티브가 개인적 원한을 갚는 데 자기 돈을 쓰는 동안, 넥스트에 투입한 스티브의 시드 자금 700만 달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수전의 판단으로는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가 되었고, 그녀는 빨리 움직이고 싶었다. 절박해지기 전에 자금 조달 계약을 확정하면, 공동 창업자들이 나쁜 조건에, 어쩌면 회사 통제권을 넘기는 나쁜 조건에 내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돈이 필요하지 않을 때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라고 수전은 설명했다. “등을 벽에 대고 싶지는 않잖아요.”스티브와 수전이 마침내 투자자 유치 작업에 나섰을 때, 그들이 내건 청사진은 거창했다. 그들은 투자 제안서에 “이례적으로 재능 있고 경험 많은” 팀과 획기적 기술, 그리고 4,000만 달러의 기업 가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은 거의 없었다. 개발된 제품도 없었고, 언급할 만한 매출도 없었다.일관되게 거절당했다. “한 월스트리트 증권사는 심지어 우리를 뜯어먹듯이 비난하며, 애플이 그를 고소했으니 스티브는 중범죄자라고 비난했습니다”라고 수전은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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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성장 04] 블록버스터 vs 넷플릭스, 무분별한 확장이 부른 몰락

📅 2026년 9월 27일 · 👁 83

[비즈니스 성장 04] 블록버스터 vs 넷플릭스, 무분별한 확장이 부른 몰락“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잭 스위거트Jack Swigert, 아폴로 13호 사령선 조종사블록버스터가 한때 비디오 대여 시장을 지배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985년 댈러스에서 문을 연 블록버스터는 9년 만에 바이아컴에 84억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됐다.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밝은 조명의 블록버스터 매장은 미국인의 주말 풍경 그 자체였다. 매주 금요일이면 수천만 명의 사람이 최신 비디오를 빌리기 위해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요 영화 제작사들의 전폭적 지원과 검증된 수익 모델을 갖춘 블록버스터는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면허’를 가진 거대 기업이었다.하지만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급격한 성장과 공격적 확장, 무리한 인수합병은 결국 독이 되었다. 블록버스터는 심각한 성장 정체에 빠졌다.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블록버스터는 도미노 피자, 맥도날드와 공동 프로모션 파트너십을 맺었다. 광고 캠페인을 퍼부었고 해외로 눈을 돌려 시장 확장 가속화를 밀어붙였다. 일부 매장에서는 비디오 게임기나 세가 제네시스 게임을 팔기 시작했다. 오디오 카세트와 CD 판매까지 검토했다. 심지어 1992년 올림픽 경기 테이프의 마케팅 권리를 확보하는 등 고객 및 제품 다각화에 온 힘을 다했다. 1990년 6월, 미국 내 블록버스터 매장은 1,200개를 넘어섰다. 하루에 하나꼴로 새 매장이 문을 열 정도였다.블록버스터는 동시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디오 대여 산업 자체의 둔화 조짐은 너무나 뚜렷했다. 1988년 114퍼센트라는 경이적인 수익 성장률을 기록했던 블록버스터는 1989년 93퍼센트, 1990년 48퍼센트로 성장세가 꺾였다. 1991년 1분기 실적은 결국 실망스러운 수준에 머물렀다.당시에도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서 가족들이 선택하는 사실상 유일한 대여점이자 시장 선도 기업이었다. 블록버스터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엄청난 수의 비디오테이프를 앞세웠다. 이를 통해 신규 고객을 쉽고 지속적으로 끌어 모았다. 하지만 이는 고객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로열티 카드를 출시하는 것과 고객의 진심 어린 충성도를 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과 전 세계 24개국 9,100개 매장에서 하루 300만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스타벅스에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블록버스터가 대여 빈도를 높이기 위해 고객 경험 경로로 방향을 틀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외부 시선으로 볼 때(그리고 고객 입장에서 볼 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블록버스터에서 비디오를 빌리는 과정은 고역에 가까웠다. 인기 있는 최신작은 늘 재고가 부족했다. 고객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통로를 끝없이 헤매야 했다. 어렵사리 영화를 찾아도 케이스 안의 내용물이 맞는지, 테이프가 제대로 되감겨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빌린 비디오를 2~3일 뒤에는 번거롭게 매장까지 가서 반납해야 했다. 연체되는 일도 허다했다. 때로는 대여비보다 비싼 과도한 연체료 때문에 고객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터무니없는 연체료가 고객들이 블록버스터에 등을 돌리고 대안을 찾게 만든 결정적인 기폭제였을 것이다.연체료 없는 비디오 서비스의 등장블록버스터가 시장을 평정하고 수많은 가정에 즐거움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는 곧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블록버스터는 시장의 맥락이 변하는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인터넷이 각 가정으로 빠르게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의 취향도 함께 변했다. 이는 새로운 경쟁 세력이 등장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이러한 변화를 이끈 주인공은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이었다.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동네 블록버스터 매장에 영화 〈아폴로 13〉을 늦게 반납했다. 그 결과 40달러의 연체료를 물게 되었다. 이 일에 분노한 그는 연체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년 뒤 넷플릭스를 설립했다. 넷플릭스의 시작은 미미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닷컴 붐의 선두 주자로서 인터넷 기술을 활용했다.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과 제품을 앞세워 블록버스터의 고객층을 공략하며 시장을 뒤집기 시작했다.“레드박스나 넷플릭스는 우리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짐 키스, 블록버스터 전 CEO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가 가장 취약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비디오를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을 더 간편하게 만들어 블록버스터 이용 고객이 느끼던 번거로움을 제거했다. 특히 블록버스터의 핵심 수익원이었던 연체료를 없애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다.또한 넷플릭스는 아주 초기부터 사용자 선호도와 과거 대여 이력, (현재의 아마존처럼) 위시리스트 데이터를 분석해 영화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는 두 번째 성장 경로인 고객 기반 확대 경로를 완벽하게 활용한 사례다. 그들은 우편 서비스를 통한 영화 대여 서비스라는 본질에 집중하면서 고객이 더 자주, 더 많이 지출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 초기부터 성공을 거두었다.“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집에서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회사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본질적으로 텔레비전 네트워크에 가깝다. 넷플릭스의 방식은 HBO나 쇼타임이 수년 동안 해온 방식과 비슷하다. 자체 제작 콘텐츠를 갖추고 있지만 그 콘텐츠는 극장이 아니라 TV에서 상영된다. 넷플릭스가 크게 성공하길 바란다. 우리는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위협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마크 조라디, 시네마크 CEO넷플릭스가 세력을 넓히는 동안 블록버스터는 기술과 소비자 취향의 변화를 외면했다. 넷플릭스가 설립된 지 5년이나 지난 2004년에야 블록버스터는 온라인 DVD 대여 시장에 뒤늦게 발을 들였다. 2006년 11월에는 넷플릭스의 안마당을 겨냥해 토털 액세스 DVD를 출시했다. 이를 통해 제품 라인업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영화를 빌려 우편으로 받은 뒤 오프라인 매장에 반납하면 무료 대여 쿠폰을 주는 방식이었지만 너무 늦은 대응이었다. 2007년 블록버스터의 온라인 가입자가 200만 명에 머물 때, 넷플릭스는 이미 630만 명을 돌파하며 멀찌감치 앞서나갔다.블록버스터는 몰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과거의 여러 인수와 제휴 사례를 보면 블록버스터에게도 제품군을 확장하려는 의지와 열망은 분명히 있었다. 2000년에는 엔론Enron과 손잡고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를 구축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원래 20년간 지속될 계획이었던 파트너십은 불과 몇 달 만에 끝났다. 엔론은 블록버스터가 서비스에 필요한 영화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 우려해 파트너십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실제로 블록버스터 뮤직, 블록버스터 블록 파티, 토털 액세스 DVD 대여 서비스 등 화려한 제품 라인업 확장을 시도하고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블록버스터는 결정적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찼다. 2000년 당시 신생 기업이던 넷플릭스를 단돈 5천만 달러에 인수할 수 있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블록버스터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과거에 너무 오래 매달렸다. 그사이 시장 맥락과 고객은 블록버스터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변했다. 넷플릭스는 블록버스터의 고객을 흡수하며 무섭게 세력을 확장했다. 넷플릭스가 시장에서 트랙션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할수록 블록버스터가 느끼는 압박은 극에 달했다.이 시점에서 넷플릭스가 내린 결정의 실행 순서가 매우 결정적이었다. 만약 넷플릭스가 DVD 우편 대여 서비스를 건너뛰고 곧장 스트리밍 서비스로 직행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닷컴 버블 붕괴 때 사라진 수많은 기업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넷플릭스는 이미 검증된 시장인 DVD 대여 분야에서 고객을 선점했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현재도 이 분야에서 4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비즈니스에서 압도적인 운영 효율성을 달성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블록버스터를 안방에서 몰아내고 승리한 넷플릭스는 이제 훨씬 더 강력한 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특히 2017년 524억 달러를 들여 폭스를 인수한 디즈니 같은 콘텐츠 공룡들이 위협적이다. 디즈니의 CEO 로버트 A. 아이거Robert A. Iger는 넷플릭스,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과 경쟁하기 위해 회사의 모든 역량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집중시키고 있다..블록버스터 vs 넷플릭스 : 핵심 인사이트블록버스터는 처음부터 제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품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고객이 매장에서 빌려가는 비디오 자체가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제작사의 결과물을 쌓아둘 방대한 재고와 거대한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만 집착했다. 블록버스터는 고객이 구매하는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놓쳤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영화를 즐기는 경험이었다. 결국 고객이 제품을 얻는 방식인 유통 채널이 바뀌기 시작하자 블록버스터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블록버스터는 성공에 취해 안주했다. 비디오 대여 시장의 오랜 선두 주자라는 위치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 결국 넷플릭스가 미래 비즈니스에 끼칠 위협도 예측하지 못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자 고객들은 달라졌다. 기술을 통해 더 쉽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다. 그 결과 모든 기업이 가치 제안과 시장 진출 방식을 재검토해야 했다. 이제 가장 강력한 적은 시장 내 경쟁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오히려 운영비가 낮고 인터넷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가상 매체가 더 위협적이었다.블록버스터는 온라인 시장 진입도 늦었지만 자신만의 강점도 살리지 못했다. 블록버스터는 방대한 고객층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넷플릭스가 가질 수 없는 압도적 우위를 내세웠어야 했다. 바로 온라인 대여, 매장 반납 전략이다. 이를 통해 시장을 휩쓸어야 했지만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데 그쳤다. 그사이 넷플릭스는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서비스로 블록버스터의 고객층을 야금야금 파고들고 있었다.여러 성장 경로를 동시에 추진하려면 실행 순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블록버스터는 성장이 정체되자 방향을 수정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성장 경로를 한꺼번에 조합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블록버스터는 여러 경로에 얽매여 끌려 다녔다. 어느 한 경로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그로스 IQ 03] 레드불, 태국인 약사와 오스트리아인 기업가의 의기투합
[그로스 IQ 03] 레드불, 태국인 약사와 오스트리아인 기업가의 의기투합

[그로스 IQ 03] 레드불, 태국인 약사와 오스트리아인 기업가의 의기투합

📅 2026년 9월 25일 · 👁 81

[그로스 IQ 03] 레드불, 태국인 약사와 오스트리아인 기업가의 의기투합“우리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소비자를 제품이 있는 곳으로 기꺼이 찾아오게 만든다.”— 디트리히 마테시츠Dietrich Mateschitz, 레드불 공동 창업자 겸 CEO1984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의 치약 영업 사원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태국 출장 중 한 약사를 만났다. 시차 적응에 힘들어하던 그에게 약사 찰레오 유비디야Chaleo Yoovidhya가 현지 음료인 끄라팅댕Krating Daeng을 권했다. 끄라팅댕은 태국어로 ‘붉은 황소’, 즉 레드불을 뜻한다.수 세기 동안 인류는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차, 커피, 청량음료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더 강력한 자극을 원했고 마침내 카페인 이상의 성분을 포함한 에너지 음료의 시대가 열렸다. 그 중심에 레드불이 있었다. 에너지 음료 시장은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60퍼센트나 성장했으며 2012년 미국 매출만 125억 달러에 달했다. 창업자 마테시츠는 “우리가 시장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기업으로서 이보다 더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본래 끄라팅댕은 장시간 근무하는 노동자와 트럭 운전사를 위한 무탄산 음료로 개발되었다. 이후 스포츠 이벤트에 제품을 무상 제공하는 전략으로 태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음료의 진정한 진화는 마테시츠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태국 현지 음료를 글로벌 시장에 맞게 변모시킨다면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음료를 세련된 파란색과 은색 캔에 담고 로고를 수정했으며 파격적 전략에 기반한 마케팅 캠페인을 전개했다.레드불이 처음부터 성공 가도만 달린 것은 아니었다. 초기 동유럽 시장에서는 거의 외면 받다시피 했다. 그러나 1997년 미국 시장 진출을 기점으로(경로 5 고객 및 제품 다각화, 경로 3 시장 확장 가속화)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 레드불은 전 세계에서 연간 620억 캔 이상 판매되는 에너지 음료의 독보적 상징이 되었다.1987년 오스트리아에서 출범한 레드불은 먼저 특유의 단맛을 줄이고 탄산을 추가하는 레시피 수정(경로 4 제품 라인업 확장)을 통해 서구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레드불은 에너지 음료의 대명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거대 음료 기업 사이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콜라를 “코크”, 인터넷 검색을 “구글링”이라 부르듯 이제 많은 사람이 브랜드와 상관없이 모든 에너지 음료를 “레드불”이라 부를 만큼 강력한 정체성을 구축했다.변방에서의 공격코카콜라와 펩시의 라이벌 관계는 비즈니스 역사의 고전이다. 두 기업은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수십 년간 이른바 콜라 전쟁을 벌였다. 1886년 약사 존 S. 펨버턴.이 코카콜라 레시피를 개발한 지 12년 뒤, 또 다른 약사 케일럽 브래덤에 의해 펩시콜라가 탄생했다. 이후 두 회사는 톱스타 마케팅, 끊임없는 신제품 출시, 용기 디자인 변경, 독점 파트너십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로를 꺾으려 애썼다.두 진영의 팬들은 상대방 제품으로 갈아탈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충성도가 높았다. 하지만 레드불이라는 신생 기업이 등장하며 판도가 뒤집혔다. 레드불은 기존의 광고 방식에서 벗어나 입소문 전략을 택했다. 레드불은 코카콜라나 펩시와 직접 부딪히는 대신 에너지 음료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냈다. 그 결과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비경쟁 시장을 구축했다. 따라서 레드불은 경쟁사의 눈치를 보거나 성장 정체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대학 캠퍼스 내 입소문 확산, 소비자가 스스로 가치를 깨닫게 만드는 맥락 설명, 익스트림 스포츠 후원 등 파격적 전략은 레드불을 2002년까지 전 세계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는 절대 강자로 만들었다.이 기간 레드불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초기 5년 동안은 오스트리아 자국 시장에서 고객 기반 확대 경로를 추진하며 내실을 다졌다. 199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장 확장 가속화 경로를 밟으며 해외로 뻗어 나갔다. 본거지에서 인지도를 쌓고 충성 고객을 확보한 뒤 확장하는 이 치밀한 순서는 글로벌 시장 안착의 핵심 동력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글로벌 확장을 시도했다면 공급망 붕괴를 겪거나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성장 기회를 너무 일찍 노출하는 실수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시 거대 탄산음료 브랜드들이 레드불의 행보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거대 기업들은 흔히 과거의 성공에 취해 시장 맥락의 변화를 놓치곤 한다. 카테고리 주변부에서 움직이는 작은 기업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경쟁에 휘말려 주도권을 빼앗긴다. 실제로 2011년 기준 레드불의 전체 탄산음료 시장 점유율은 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에너지 음료 시장에서는 44퍼센트를 장악하며 연간 46억 캔을 팔아치우고 있었다.현재 레드불은 기존 성장 경로들에 고객 및 제품 다각화 경로를 결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만약 제품 다각화를 너무 서둘렀다면 오히려 초기 충성 고객들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레드불의 다양한 맛 제품들은 오리지널의 명성을 탄탄하게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파격적 마케팅, 전략적 파트너십, 명확한 차별성 그리고 높은 고객 참여가 결합된 레드불의 전략은 경쟁사들이 그들을 리더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들었다.고객 파악고객 기반 확대 경로를 추구하려면 고객을 피상적으로 아는 수준을 넘어 속속들이 이해해야 한다.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무엇을 기대하는지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레드불의 성공이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레드불은 초기부터 눈에 띄는 파격적 전략을 활용해 모험을 즐기는 18~34세의 Y세대 남성층을 명확히 겨냥했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모이는 대학 캠퍼스와 익스트림 스포츠 현장에 마케팅 역량을 총동원했다. 시간이 흐르며 레드불은 포뮬러 레이싱의 최상위 스폰서가 되었고 직접 F1팀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스노보딩, 클리프 다이빙, 더트 바이크 레이싱은 물론 전미 스톡 자동차 경주 협회NASCAR 같은 거대 스포츠 협회와도 강력한 제휴를 맺었다.레드불은 일대일 고객 확보를 위해 수백만 달러의 광고비를 쏟아 붓는 대신, 정서적 브랜딩을 통해 소비자와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러한 유대감은 브랜드의 DNA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고객이 레드불에 기대하는 본질 그 자체다. 레드불의 성공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라고 설득해 얻은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고객 스스로가 레드불 라이프스타일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도록 강력한 세계관을 창조해 낸 결과다.소비자를 제품이 있는 곳으로 데려오는 전략레드불은 단 한 번도 제품을 판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레드불은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브랜딩과 강력한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이미지를 판다. 제품은 그 이미지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곁들여질 뿐이다.2013년, 레드불은 광고 문구와 관련된 소송을 1,300만 달러 배상으로 합의하며 마무리했다. 20년 넘게 사용해 온 ‘레드불이 날개를 달아준다Red Bull gives you wings’라는 문구가 문제가 되었다. 이 소송을 통해 우리는 레드불이 실제는 물론, 비유적으로도 날개를 달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브랜드 이미지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았다. 레드불의 이미지는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그 결과 레드불은 일반적인 콜라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2배 가까운 가격을 받기도 했다.레드불은 선점자 우위를 바탕으로 난공불락의 교두보를 구축했다. 경쟁 기업들이 고객을 가로채려면 이 요새를 반드시 무너뜨려야만 했다. 1999년 록스타 에너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레드불은 위협받지 않았다. 2002년 한센 내추럴 코퍼레이션이 몬스터 에너지를 출시할 때까지도 심각한 위기는 없었다. 음료 업계의 거물인 펩시는 2013년에야 마운틴듀 앰프를 내놓으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카콜라는 2014년까지 기다린 끝에 풀 스로틀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 브랜드는 바로 다음 해인 2015년에 몬스터 베버리지에 인수되었다. 이 시점들을 다시 짚어보자. 레드불은 1987년에 출시되었다. 이는 펩시와 코카콜라가 레드불에게 20년이 넘는 독주 기회를 거저 준 것이나 다름없다.레드불은 압도적 시장 점유율과 강력한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시장을 장악했다. 레드불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객 기반 확대 경로를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지리적 확장을 통한 시장 확장 가속화 경로로 넘어간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충분한 기반을 닦은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에너지 음료 시장은 계속 성장했다. 레드불은 다양한 맛과 저칼로리, 저설탕 제품을 추가하며 제품 라인업 확장 경로로 이동했다. 이 결정까지 다시 거의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당시 에이미 테일러 마케팅 부사장은 〈USA 투데이〉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녀는 새로운 맛을 추가하는 행위가 브랜드의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라고 밝혔다. 테일러는 “맛은 이 분야의 진입 장벽이며 레드불에게도 마찬가지다. 미국 진출 1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고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새로운 맛을 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전략의 본질은 결국 기존 고객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레드불은 올바른 실행 순서를 선택했다. 초기부터 신제품을 쏟아내며 무리하게 다각화하지 않았다. 단순히 새로운 고객을 쫓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브랜드 가치가 희석되지 않았고 기존 고객이 사랑했던 본질도 훼손되지 않았다. 고객 기반 확대 경로를 선택할 때는 공략 시장이 성장 중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경로에 시간과 돈,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크다. 레드불은 성장하는 시장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쥐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음료 시장은 2025년까지 848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레드불 : 핵심 인사이트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하기로 했다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사업 초기에는 목표에만 집중해야 한다. 비슷한 영역의 거대 브랜드들과 경쟁하느라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레드불의 경우 탄산음료나 에너지 음료 분야의 기존 강자들과 싸우느라 힘을 뺐다면, 의도했던 성장 궤도에서 벗어났을 것이다.고객 기반 확대 경로는 단순히 기존 고객에게 더 비싼 제품을 파는 업셀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경로의 핵심은 고객의 정의를 확장하는 데 있다. 현재 다른 브랜드에 돈을 쓰고 있는 유사한 구매자들까지 우리 고객으로 확보해야 한다. 기존 고객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구매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재 고객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방법은 있다. 직접적 판매 활동이 아니더라도 정교한 타깃 마케팅과 광고 캠페인을 통해 그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기존 고객이 제품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직접 만들어 준다면 시장 확장 가속화는 훨씬 쉬워진다. 레드불은 대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파티장, 도서관, 커피숍, 바 등을 직접 찾아갔다. 이 과정을 통해 핵심 타깃인 대학생들과 직접 접촉했다. 레드불은 고객 스스로 제품을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강력한 입소문을 퍼뜨릴 수 있었다. 만약 잠재 고객들이 특정 지역에서 당신의 제품이 출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면 그것은 성장을 위한 최고의 신호다.제품을 시장의 화제로 만들기 위해 파격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다고 레드불처럼 반드시 F1 팀을 소유하거나 후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약 3만 7천 미터 높이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레드불의 행보에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레드불은 항상 이벤트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마케팅 활동에서 타깃 고객을 최우선에 두었고, 제품 판매는 그 다음 순위로 밀어뒀다.레드불은 콘텐츠와 이벤트를 마치 유능한 세일즈 팀처럼 활용한다. 레드불의 모든 활동은 한 가지 개념으로 요약된다. 타깃 고객이 사랑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 음료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 흥미를 느낄 만한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