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한 사람의 의해 만들어지고 창조되지 않는다. 원칙도 마찬가지다.
“진리는 한 사람의 의해 만들어지고 창조되지 않는다.
길과 길이 이어져 전 인류가 도달하는 동산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생 철학은 행복보다 불행하지 않기를 추구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행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불행하지 않을 수는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철학은 흔히 ‘염세주의’ 한 단어로 요약되기도 합니다.
이젠 너무 옛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1990년대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그당시 우리나라에는 IT 프로덕트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제품은 아래아한글과 V3 안티바이러스, 다음커뮤니티 정도였습니다. 소프트웨어의 불모지에서 오늘날처럼, 카카오톡, 네이버, 배달의민족, 야놀자, 무신사, 엔카, 쏘카, 당근마켓 같은 IT 프로덕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3D 업종이라고 천대받던 과거, 그 과정을 넘어 개발자 골드러시 시기가 있었던 덕일 겁니다.
프로덕트 하나가 탄생하고 꽃을 피우는 데 헤아릴 수 없는 피, 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흔히 개발자로 퉁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가 중요한 축으로 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2009년 경 하둡 분산 플랫폼이 보여준 강력한 분산 연산과 대용량 저장 능력은, 그간 서류보관함에 쌓여 있던 아날로그 데이터를 전정기가 흐르는 디지털 데이터로 변모시키는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데이터에 관심이 없던 기업도 데이터를 하둡에 쌓기 시작했죠. 데이터가 쌓이고 나면 뭐합니까? 보관만 하면 돈먹는 하마가 되니까 뭔가 해야겠죠? 그래서 데이터 분석이, 데이터 분석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데이터양이 많아도 너무 쌓이는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요. “너무 빅데이터니까 그냥 기계한데 시키자!”는 움직임이, 겨울잠을 자던 인공지능 기술을 깨우게 됩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니 아주 좋습니다! 바둑도 두고, 자율주행도 하고, 음성인식도 됩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나서 뭘해야 할까요? 자사 프로덕트에 붙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붙이는데 의의를 두지만 나중에는 매출을 견인하는 핵심 요소가 되죠.
약 30년간의 흐름을 요약해 담았습니다. 과거에는 한 프로덕트를 유능한 개발자 혼자면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는 잡스와 워즈니악이죠. 워즈니악은 1970년대 후반에 애플 I을 혼자 개발했습니다. 곧이어 애플 II도 개발했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 애플의 (엄청 많은 인력이 만든) 후속작 맥킨토시보다 애플 II가 훨씬 많이 팔렸습니다. 빌게이츠는 이미 고등학생 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팔아서 돈을 벌었지만, 지금 엑셀은 수천 명이 만듭니다. 사용자가 프로덕트에 거는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더는 1인 개발의 시대에 살아서는 프로덕트를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없습니다. 애플 앱스토어 초창기에 1인 개발자의 게임이 다운로드 1위, 톱 10에 즐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적어도 프로덕트 매니저(PM 또는 PO), 개발자, 디자이너가 함께 일해야 출시가 가능합니다. 더 깊이 있고 명확하게 시장을 파악하여 제품의 포지션을 결정하려면 데이터 분석가 역시 꼭 필요합니다. 프로덕트는 적어도 이 넷의 협업으로 만들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죠.
저는 그간 《개발자 원칙》, 《데이터 과학자 원칙》을 기획하고 엮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프로덕트 매니저 원칙》을 엮었습니다. 〈원칙〉시리즈는 “앞서 경험한 선배가 발견한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업의 방정식”을 풀어줄 9명의 선배의 글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습니다. 처음부터 옴니버스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일까요?
서두의 글은 쇼펜하우어가 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에서 따온 문장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길과 길이 이어져 전 인류가 도달하는 동산이 진리라니, ‘역시 집단지성이 정답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진리는 한 사람의 의해 만들어지고 창조되지 않는다. 원칙과 원칙이 이어져 전 인류가 도달하는 동산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한다”로 응용해봅니다.
원칙은 진리가 아닙니다. 더 많은 원칙과 원칙이 이어져야 합니다. 각양각색의 경험을 담은 원칙을 〈원칙〉시리즈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실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에는 때로는 상반되고, 겹치고, 낯선 원칙들이 이 책에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각각의 원칙이 의미있는 이유는, 원칙과 원칙이 거부반응과 융합이라는 소용돌이를 거쳐 우리가 자연스럽게 동산에 이르도록돕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동산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 개개인의 몫이기도 합니다.각각의 원칙을 스스로 톺아보고 씹고 소화해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길 빕니다.
그러면 쇼펜하우어의 말 ‘적어도 행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불행하지 않을 방법’처럼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 나만의 원칙’을 얻게 될 겁니다.부디 이 책에 실린 “앞서 경험한 선배가 발견한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업의 방정식”이 거인의 어깨를 너머 머리에 오르는 디딤돌이 되길, 강력한 팀워크를 만들어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는 길로 이끄는 소통의 채널이 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