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게이머는 어떻게 게임의 주인공이 되는가

이 글은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에서 발췌했습니다.
글 그림 하얀쥐 / 골든래빗 출판사

게이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임이 뭘까요? 조작이 빨라 반응하기 힘든 게임? 퍼즐이 복잡해서 높은 지적 능력이 필요한 게임? 재화를 모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드는 게임?

플레이어로서 게임이 유독 버겁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을 때’입니다. 정보가 없으면 기대를 할 수 없고, 기대를 할 수 없으니 게임플레이 동기가 사라져서 눈앞에 놓인 자잘한 과제조차 훨씬 어렵게 느껴지죠.

각 게임에서 요구하는 플레이어의 능력과 자세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게임은 항상 초반 구간에서 플레이어에게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플레이어가 그 내용을 적절히 수행하면 게임이 끝나게 되는 것이구요.

일명 ‘방탈출 카페’에서는 이 과정이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방탈출 게임은 비디오 게임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게임 경험이 마무리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방탈출 카페에서는 게임의 본질적인 두 요소, 게임 마스터가 가르치고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구간이 더 거칠게 나뉘어집니다. 공포의 강도나 퍼즐 난이도 등을 안내해 플레이어를 준비시키고, 힌트를 얻는 방법이나 상호작용되는 물품을 상세히 알려준 후, 칼같이 문을 닫고 플레이어를 게임 구간 안에 방치합니다.

 

 

비디오 게임 역시 비슷한 과정이 포함되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지시받는 느낌과 방치되는 느낌 모두 부정적인 게임플레이 요소로 간주됩니다. 실제로는 ‘지시받고 방치되는’ 구간이 반복되어야 게임이 온전히 굴러가는 것이지만, 연출을 통해 그 과정이 ‘깨달으며 헤쳐나가는’ 구간으로 포장되어야 하는 것이죠.

흔히 ‘너무 어려운 게임은 인기가 없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가장 인기있는 게임들조차 잠깐의 놀이라고 하기엔 상당한 양의 학습량을 필요로 하니까요. 게임 안 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그렇게나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그저 재미로’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죠.

하지만 대부분 게이머에게 있어서 이러한 학습과정은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습니다(그런 게임들은 보통 인기가 없습니다). 그저 재미로 했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더라 하는 식이죠.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배우게 하는 것이 좋은 게임의 필수요소니까요. 그러니 게임은 사실 대량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주입해내는 고도의 학습장치인 셈이죠.

게임 만화를 시작하기 전, 아내의 임용도서를 빌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기본적인 교육학 내용, 수많은 선구자들이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힘써온 기록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 내용은 게임에서 겪은 여러 상황과 겹쳐 보였고, 교육학 도서는 마치 게임 마스터의 트릭북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그 내용은 제가 게임 만화를 시작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육자와 게임 마스터는 사실상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비슷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도 당연할 겁니다. 플레이어가 숙지해야 할 게임 정보는 필수교육 내용에 비하면 미미한 양이긴 하지만, 높은 성적 등의 실질적인 보상 없이 플레이어에게 규칙을 가르쳐야만 하니까요. 어떤 측면에서는 일반교육보다 더 큰 허들을 안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생겨나 게임플레이 속 학습과정을 일반교육이나 업무, 마케팅 등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몇몇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이뤘지만, 최초의 기대만큼 극적인 결실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실제 유통되는 게임에 담긴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포인트나 진행도 따위를 이용하는 데에 그쳤던 겁니다. 그런 소소한 강화물만으로는 게임이 가진 효과를 재현하지 못했죠. 역설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의 실패로 인해 실제 게임들이 무한히 더해지는 숫자나 그에 따른 비교우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게이미피케이션보다 복잡다양하고 방탈출 게임보다 친절하게 게이머들을 안내하고 몰입시키는 과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아는 게임플레이가 단순히 승리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내부를 면밀히 살펴보면 수많은 트릭과 노하우가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임플레이는 학습과정과 비슷하지만, 게이머에게 게임은 공부만큼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재미로 했더니 어느새 게임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있었던 거죠. 게임에는 게임 밖 소비자를 한 명의 주인공으로 빚어내는 수많은 트릭과 노하우가 숨어있습니다.

 

글 ・ 그림 하얀쥐

마이너한 게임 세계를 파고드는 웹툰 작가. 조형예술과 출신으로 그 전공을 살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 담론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교양만화플랫폼 이만배에서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을 연재 중이다.

 

웹툰 연재작

° 〈하얀쥐의 게임 만화〉

°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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