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게이머는 왜 메타버스에 부정적일까?

이 글은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에서 발췌했습니다.
글 그림 하얀쥐 / 골든래빗 출판사

한때 메타버스가 이슈였습니다. 메타버스는 기술적으로 구현되거나 명확하게 증명된 개념은 아니며, 일반적으로 고차원적인 디지털 상호작용이 가능한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을 뜻하죠. 메타버스라는 신조어 아래 수많은 상상력이 발을 뻗었습니다. 메타버스에 나와 동기화된 아바타가 구현되면 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고도 어울리는 의상을 고를 수 있다거나, 굳이 현실에서 만남을 갖지 않고도 풍부한 상호작용과 함께 원거리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다거나, 모두가 공유하는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게임이나 디지털 시설을 창조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이런 상상이 근시일내에 이루어질 것처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현실적이지 않았고 메타버스 열풍은 이내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 사그라들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비현실적인 관측들이 난무했는지만이 의문으로 남았죠.

 

 

게임 콘텐츠 크리에이터 라즈부텐(Razbuten)은 그의 영상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에게 게임은 어떤 것일까?’에서 게임이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아내가 어려운 게임들을 새로이 배워나가는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디지털 상호작용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흥미롭게 소개되었죠. 이전 장에서 이야기했듯, 게임은 심각할 정도로 높은 진입장벽과 전환비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와의 감각적 상호작용은 그중 가장 큰 장애물이죠. 라즈부텐은 아내가 ‘비디오 게임이 더 현실적으로 상호작용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게임이 생소했던 그의 아내는 게임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상호작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토로했습니다. 그녀는 게임 특유의 목표 수행 과정에 익숙하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묘사된 3D 이미지였기 때문에 각 게임이 보다 현실적으로 상호작용되기를 기대핬던 겁니다. 하지만 게임은 무궁무진한 메타버스가 아니라 닫힌 공간 안에서 정해진 목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죠. 게임을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디지털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겁니다.

오래 게임을 즐겨온 사람들은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이 대충 어디까지 상호작용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데 익숙합니다. 게임에 긴박한 음악이 흐르고 주변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건 일자로 된 경로를 열심히 달리라는 뜻입니다. 뒤로 돌아가는 문이 닫히면, 그 공간에서 자잘한 것들을 탐색하게 하기 위해 동선을 제한했다는 뜻이죠. 적을 공격했는데 일정 비율 이하의 대미지만이 들어간다면, 그건 그 보스를 처리하는 다른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는 뜻이구요. 무너지는 건물에서 책상 밑에 숨거나, 닫힌 방 안에서 문을 부수려 하거나, 작달만한 나뭇가지로 보스의 눈알이라도 찌르려고 하면 게임은 그에 맞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고 그에 따른 상호작용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물론 게임 언어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이 단순한 명령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더욱 실감나고 자유로운 게임 세계를 원하고 있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서 더욱 고도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을 만들거나, 대사와 동선을 교묘하게 배치해서 더 그럴듯한 연출을 하기도 합니다. 게임 산업과 그 수요는 커질 대로 커졌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 역시 그 한계까지 밀어붙여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과는 무관하게요.

난데없이 메타버스라는 이름의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했을 때, 게임 커뮤니티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메타버스는 게임과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기술과 감각 측면에서 그 목표가 비슷하니까요. 17년 전 〈파이널 판타지 VII〉가 섬세한 머리카락이 구현된 3D 애니메이션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현재까지도 머리카락이 몸에 부딪히는 표현은 게임 산업에서 도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MMORPG나 오픈월드 게임이 가상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비전을 펼쳤지만, 그 장르는 이제 채워넣기용 반복 콘텐츠가 강제되는 게임이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죠. 게임 업계는 디지털 상호작용의 한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며, 그 구성원들에게 메타버스는 허황된 개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슈는 증강현실과 AI 열풍으로 이어지면서 디지털 상호작용이 우리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를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 주제를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고 때때로 그 안에 숨겨진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VR기기가 우리 감각을 디지털 세계로 밀착시켜주는 것으로 선전될 때, 그것이 목으로 화면을 움직이는 불편한 컨트롤러라는 것이 생략된 것처럼 말이죠.

 

 

디지털 상호작용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느 수준까지 구현이 가능하며, 그 안에서 이루어진 여러 행위와 그 동기는 현실과 어떻게 다를까요?

게임 업계의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더욱 실감나고 자유로운 게임 세계를 원합니다.

디지털 상호작용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제약은 무엇이며, 게이머는 어떤 동기로 가상세계에 참여할까요?

글 ・ 그림 하얀쥐

마이너한 게임 세계를 파고드는 웹툰 작가. 조형예술과 출신으로 그 전공을 살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 담론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교양만화플랫폼 이만배에서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을 연재 중이다.

 

웹툰 연재작

° 〈하얀쥐의 게임 만화〉

°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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