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에서 발췌했습니다.
글 그림 하얀쥐 / 골든래빗 출판사
“○○도 예술일까?”
한때 만화에 적용되었던 이 물음은, 으레 새로운 미디어가 태동할 때 던져지는 질문이며 그 대상은 이제 게임이 되었습니다. 어떤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나의 문화생활로 인정받기 위해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슬로건을 들어올리기도 하죠.
그런데 애초에 ‘예술’이 뭘까요?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게 파고들면 무수히 갈라지는 학문적 정의들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그런 연구와 무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예술’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널리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창작물’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적 수요와 괴리된,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
이제 와서 게임을 고유한 창작형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겁니다. 게임에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음악, 음향효과, 영상기법들이 혼재되어 있고, 그것을 버무려내는 게임 특유의 작법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더해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라는 과감한 주장을 던졌습니다. 이를 주장하는 그의 산문은 다소 증거가 빈약하며 예술성의 유무에 대해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기에, 그의 말 자체를 반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때 수많은 게임 평론가와 크리에이터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게임만이 가진 가장 논쟁적인 성질 하나를 짚어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바로 ‘게임에는 승리가 있다’라는 것. 소설, 희곡, 영화 등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없으며 오로지 경험할 수만 있기 때문에 그 내용과 의미를 재고하게 되지만, 승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게임에서는, 작품을 감상한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을 극복해내는 자기자신에 집중하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것을 똑같은 ‘감상’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게임은 감상할 수 없는, 즉 예술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게임이 고도의 문화창작물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접근방식은 다른 미디어의 그것과 똑같지 않은 겁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게임 경험 그 자체보다 그에 따른 보상이나 비교우위를 획득하려는 의도로 게임을 합니다. 이 경계는 너무나도 애매모호해서 게임을 하는 스스로도 명확히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 시작했다가 쏟아낸 시간에 비례해 보상심리를 키워나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친구들과 경쟁하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 평생의 애틋한 추억으로 남는 경우도 있죠.
여러분은 게임이라는 작품을 ‘감상’하시나요? 아니면 가상 공간의 침략자로서 무언가를 압도하고 ‘승리’를 얻으려 하나요? 에버트의 말대로 이 두 개념은 양립될 수 없는 것일까요?
만약 플레이어가 승리를 얻으려 나아가려 하면서도 그 과정에 경험 외의 실질적인 보상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고히 한다면, 그 과정을 장기적인 몰입이 전제된 ‘감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게임 경험을 이론화하여 또 다른 감상의 형태로써 구체화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일례로 곤잘로 프라스카가 제안한 개념 루돌로지(Ludology)는 수용적으로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내러톨로지(Narratology)와 구분되어 목표를 가진 플레이어의 입장을 또 다른 감상의 차원에 편입시켰습니다.
물론 이런 용어들은 게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이런 것을 신경쓰면서 게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이론의 도움 없이도 게임 커뮤니티는 최근 수년간 점점 더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임 재화를 현실 재산과 교환하여 이익을 취하는 ‘쌀먹’ 행위는 비판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며, 게임 속 성취를 인정받기 위해 대규모 온라인 환경을 필요로 하던 예전과 달리 개인의 게임 환경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타인의 공략 정보를 통해 최단 시간 내로 게임을 클리어하기보다는 스포일러당하지 않고 스스로 고민해서 게임을 헤쳐나가기도 하죠.
이제 게임 세계에서 승리를 취하는 것이 게이머의 최우선과제가 아니게 된 겁니다. 승리는 그저 이정표일 뿐, 결국 중요한 건 게이머 스스로 선택한 자신만의 경험입니다.
최근 수년간 게임 커뮤니티는 점점 더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임 세계에서 무조건적인 승리만을 쟁취하는 것은 더 이상 게이머의 최우선과제가 아니며, 스스로 선택한 자신만의 경험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overpowered” “cheat” “broken”
유희계약과 게임 자산 문제
사진의 발명의 회화의 조건을 다시 살펴보게 했듯, 베일에 싸인 게임 미디어의 정체를 살펴보는 것은 현대 예술문화의 면면을 다시 검토하는 기회가 됩니다.
글 ・ 그림 하얀쥐
마이너한 게임 세계를 파고드는 웹툰 작가. 조형예술과 출신으로 그 전공을 살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 담론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교양만화플랫폼 이만배에서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을 연재 중이다.
웹툰 연재작
° 〈하얀쥐의 게임 만화〉
°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