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게임 괴담의 진실 | 도박과 오락 사이

이 글은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에서 발췌했습니다.
글 그림 하얀쥐 / 골든래빗 출판사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이 종료된 후, 2023년 게임 이용률은 전년 대비 11.5% 감소한 62.9%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인구의 2/3에 육박하는 비율로, 상대적으로 게임을 덜 한다고 알려진 여성조차도 그 과반수가 게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나이가 많은 게이머 세대로 여겨지는 40대 남성의 게임 이용률도 74.7%에 달합니다.

이제 게임은 안 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흔한 취미입니다. 그런데도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죠. 독서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독서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별 불편함이 없지만,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게임 이야기를 듣는 것에는 상당한 단절감이 있습니다. 또한 영화를 잘 보지 않던 사람이 추천받은 영화를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게임을 잘 하지 않던 사람이 새로운 게임을 시도하는 것은 부담이 큽니다.

 

 

게임은 이용률에 비해 그 경험이 공유되고 해석되기 힘든 미디어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그만큼 쉽게 타자화되어 오해를 사기도 하죠. 이로 인해 게임은 때때로 불필요하게 악마화되거나, 또는 진짜로 유해한 사행성 게임들이 법의 울타리를 빠져나기도 합니다. ‘어차피 놀이일 뿐’이라며 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화현상이 되어버렸는데도요.

게임 문화를 문화예술적 담론에 포섭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놀이하는 인류(호모 루덴스)이니 게임 문화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든가, 우리 일상도 게임하는 것과 같으니 게임을 접목하여 사고(게이미피케이션)해볼 수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담론들은 게임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게임 문화 바깥에서 생각하는 ‘적당히 게임 같은 무언가’는 실제 게이머 경험과는 심각할 정도로 괴리가 크기 때문이죠.

 

 

게임 문화는 마이너하지 않지만 게임 담론은 여전히 마이너합니다. 이는 그 경험의 덩어리가 너무 크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미디어에 비해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시간이 너무 긴데다 새로운 게임을 할 때마다 새 조작법과 규칙을 익혀야만 하죠. 따라서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더 나아가 아예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5년간 게임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게임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며, 게이머들 역시 새로운 게임을 알아보는 것보다는 이미 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훨씬 더 편안하게 느낀다는 사실.

전환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 게임 미디어의 특징이라면,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귀찮은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요?

게임과 관련하여 서로를 이해하려면, 게임의 구조나 정의 따위를 설파하기에 앞서 게이머를 둘러싼 환경을 확인해야 합니다.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게임이기에, 순수한 내적 경험만을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이 필요합니다.

 

그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렇게 얻어낸 것이 어떻게, 얼마나 지속되는가?

그것이 나와 타인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게이머의 머리속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이 소용돌이칩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가볍게 OTT 영화 한 편 보는 것과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장기간 집중력있게 참여하지 않으면 진행조차 되지 않는 것이 게임이기에, 플레이어는 늘 단순한 소일거리 이상의 동기를 찾아내려 합니다. 플레이어 자신이 그걸 ‘그냥 재미’라고 부를지라도요.

게임이 상당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으면 하기 힘든 활동이라는 사실은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더 심화시켰습니다. 이해의 골이 깊을수록 부정적인 해석이 득세하는 법. 그저 심심풀이 삼아서 한다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것이 게임이다보니, 필시 현실에서 얻기 힘든 것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 또 완전한 거짓도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게임 담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이야기도 여기서 시작해야겠죠. 게임은 가짜 성취이며, 강박적인 숫자놀음이고, 경쟁사회에 대한 한풀이, 또는 도박이라는 인식에서부터요. 특히 우리나라의 게임 관리 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행성 게임의 폐해에 의해 출범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선 ‘게임은 곧 도박, 또는 그와 비슷한 불로소득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라는 인식부터 재검토해야 합니다.

도박의 우리말인 ‘노름’은 ‘놀다’의 ‘놀-‘에 명사형 ‘-음’이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어간의 본뜻에서 멀어졌기에 ‘놀음’이 아닌 ‘노름’이라 소리대로 적습니다. 불확실한 결과에 도전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놀이로써 함께해왔으며 그 연장선에는 유해한 도박에 이르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순수한 놀이와 위험한 도박을 진정으로 구분해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글 ・ 그림 하얀쥐

마이너한 게임 세계를 파고드는 웹툰 작가. 조형예술과 출신으로 그 전공을 살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 담론을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교양만화플랫폼 이만배에서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을 연재 중이다.

 

웹툰 연재작

° 〈하얀쥐의 게임 만화〉

° 〈하얀쥐의 게임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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