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신은 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개를 보낸다고 한다.
나에게는 왜 닭이 왔을까.
7년 동안 닭과 살며 나는 그 답을 얻었다.
수탉 목청 자랑에 동네 평화 찢어지고
가출 닭 잡으러 귤밭을 질주해도
절묘하게 평화로운 바닷마을 닭 다이어리
푸바오와 고양이가 장악한 동물 판에 푸더더덕 날아든 당신의 첫 ‘닭 에세이’
‘치킨도 아니고, 웬 닭?’ 싶은가?
한번 닭을 알고 나면 당신도 ‘닭밍아웃’을 할지 모른다.
“닭의 모든 생애가 아름답다!”라고 외치며!
사력을 다해 알을 깨고 나오는, 스스로 쟁취하는 삶의 상징 – 병아리
지극한 아름다움과 지극한 고통 사이의 왕복달리기 – 수탉
무정란과 유정란을 따지지 않고 모두 품는 마음 – 암탉
‘지구상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은 동물이자, 가장 많이 도축된 공룡’, 닭에게서 보고 배운 아름다움과 삶의 힌트를 전한다.
★ 출판사 리뷰
기획 변명 – 나는 왜 닭 책을 만들었나?
늙고 가난한 농부가 있다. 그저 착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그에게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 상대는 장애가 있어 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 신부의 가족은 우리 돈 4만 원쯤 되는 결혼 지참금을 받고 그녀를 치워 버렸다. 첫날 밤, 신부는 실수를 할까봐 하반신을 침대 밖으로 내놓고 구부정하게 잠을 잔다. 농부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보살피고, 신부도 조금씩 마음을 연다.
남들이 보기엔 비참한 존재들의 조합일지언정, 둘의 인생에는 없던 감정—‘설렘’과 ‘의지’가 감돌기 시작한다. 일단, 집을 짓기로 하는데 재료도 장비도 없다. 둘은 지천에 널린 흙으로 벽돌을 빚는다. 물론 맨손으로. 비가 내리면 허탕이 되기 일쑤였는데, 두 몸은 느리고 불편했지만 끈질겼다. 마침내 집이 서고 어느 날 밤, 창 밖으로 노란 빛이 새어 나온다. 단칸방 흙바닥에서 작은 상자를 들여다보며 소근거리는 부부. 상자에서 터져 나오는 빛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이 가여운 이들에게 황금이라도 선물한 걸까?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의 한 장면이다. 흙먼지가 벽돌이 되고 집이 되는 과정이 ‘과연 이게 될까?’ 싶도록 힘겹게 흘러가다, 이 장면에서 보는 이는 겨우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3년 전이라면 훈훈하게 보고 넘겼을 터인데, 이 장면을 여러 번 떠올리며 곱씹었다. 상자 안에서 빛을 발하는 물체가 작고 동그란 덩어리, 바로 병아리였기 때문이다. 꿈도 희망도 없던 사람이 이제 그것을 가져보려 할 때, 감독은 그 자리에 병아리를 두었다.
나는 진짜 정말로 결코 병아리든 닭이든 관심이 없었다. 3년 전, 어떤 글을 만난 후 달라졌을 뿐이다. 그해 여름, 제주도의 한 단체에서 에세이 단행본 기획하기 수업을 요청했다. 온라인 수업이었다. 첫 수업 날, 제주도민 여섯 명의 얼굴이 모니터에 조로록 떴다. 어떤 주제로 책을 만들지 물었는데, 한 참가자가 말했다.
“남편이 뭘 자꾸 만들고 키워요. 지금은 닭을 키우는데 그 얘길 쓸까 봐요.”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배시시 웃었다. 눈에 훤히 보였다.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치는 남편, 수습하느라 고생하는 아내의 한풀이렸다! 그런데 일주일 후, 과제를 검토하다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글은 한풀이가 아니라 남편 관찰기였다. 그것도 애정이 깃든! 이후 나는 으레 닭의 안부를 물으며 수업을 시작했고, 마지막 수업에서는 이런 말을 내놓았다.
“닭 책을 좋은여름에서 만듭시다.”
다른 참가자들은 환호를 보냈고, 당사자—효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읽은 것이라곤 첫 과제로 제출했던 한 꼭지뿐이었으니 그럴 법하다. 모든 초고가 그렇듯 완성형 글은 아니었지만, 나는 다음 세 가지 표현에 매료되었다. 1. 초승달 같다고 묘사한 암탉의 몸통 2. 사춘기 중학생 같다는 중닭의 행동 3. 유령이 되어 나타난 죽은 병아리들, 그리고 병아리 유령이 무섭지 않을 것 같다는 글쓴이의 마음.
이렇게 저작 경험이 없는 저자와, 다른 작가의 글을 출판한 적 없는 출판사의 ‘과연 뭐가 되려나?’ 싶은 합작이 시작되었다. 우리 프로젝트에는 출간 기획서도 마감도 없었다. 경쟁 도서도 마케팅 방안도 없었다. 효영은 오랜 기억을 들추거나 요즘 일어난 에피소드를 포착해 공유 문서에 짬짬이 기록했고, 나도 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나면 문서에 접속해 글을 읽었다.
3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길어지는 문서를 읽다가 나는 알아차렸다. 글은 「한풀이—나 이렇게 고생해요」에서 「남편 관찰기—이 사람 흥미롭다」로, 그러더니 「닭밍아웃—나 이렇게 닭을 사랑해요」로 슬금슬금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닭에게 가장 푹 빠진 사람은 저자 자신이었다.
나는 곧 제주도로 날아갔다. 현장감 넘치는 기획을 위해 현장 시찰, 아니 닭장 시찰은 필수였다. 인터넷으로 아무 닭, 아무 닭장 사진을 참고하는 것은 의미 없었다. 효영과 필의 세계에서 나이 들고 있는 The 닭들, 저자의 묘사와 내 상상이 과연 어떻게 같고 다른지 봐야 했다. 온라인 회의와 전화로 소통하다가 처음 마주한 저자와 필의 얼굴, 그리고 닭! 나는 사람들과 짧게 반가움을 나누고는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사진 찍어주세요.”
내 품 안에는 닭 한 마리가 폭 안겨 있었다. 발치에서 서성이던 닭을, 우리 집 고양이에게 하던 버릇으로 번쩍 들어 안아 버린 것.
“아아, 선생님! 수탉을 그렇게 함부로 들면 큰일나요.”
수탉 에피소드가 나오기 전이었으니 나는 수탉의 포악함을 몰랐던 것. 안은 나도, 안긴 수탉도 멀뚱멀뚱할 뿐, 촬영은 친구 사이의 인생네컷처럼 수월했다. 당시 수탉 입장을 추측해 보면, 처자식 앞에서 인간에게 아기처럼 안기다니 모양 빠지는 건 맞지만, 낯선 자가 경계심이라곤 하나도 없이 자기 물건 들어 올리듯 답삭 해버리니 혼쭐 낼 타이밍을 놓친 것 아닐까?
제주 블루스에 머물며 ‘3박 4일 끝장 쓰기 캠프’를 진행했다. 일과 후 효영은 제주 블루스로 넘어와 글을 쓰고, 나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서 효영이 넘기는 글들을 검토하다가 이내 닭처럼 졸았다. 아침 식사로는 당연히 집 달걀 후라이를 대접받았다. 나는 아일랜드와 덴마크에서 자급자족 공동체 생활을 했는데, 그때도 우리 농장 닭들이 낳은 달걀을 먹었다. 그때의 달걀은 그저 달걀이었다. 그것을 낳은 닭이나, 그것이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사실과는 연결 짓지 못했다. 하지만 필이 영혼을 담아 지은 닭장에서, 효영이 수탉에게 쪼여 가며 돌본 닭이 오늘 아침 낳은 달걀은, 그저 달걀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똑같이 생긴 병아리들이 하나하나 구별된다는 이 양계 가족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글을 쌓는 도중 효영은 여러 차례 되물었다. “이런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정말요?” 닭을 테마로 책을 준비 중이라고 주변에 흘렸을 때, 대부분 “윽! 닭 무서운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앞으로 독특한 기획들로 책을 만들겠다고 하니, 이 책의 펴낸이는 “닭 책도 내는데 뭔들”이라며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닭이 마지노선인가!). 모든 손사래와 의구심에게 나는 답했다.
“네. 닭의 모든 생애가 아름다우니까요.”
호기로운 말이었지만 사실 막막한 말이기도 했다. 효영이 내 말에 기대어 원고를 쌓아가는 동안 사실 나의 우주는 뒤틀리고 있었다. 선물 삼아 만든 책 『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2019)와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2020)가 고마운 사랑을 받아 얼떨결에 출판사를 등록했지만, 과연 지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출판을 한다며 손을 놓았던 그림에 대한 미련도 올라왔다. 40대 중반이 되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끝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출판은 닭 책을 마지막으로 하고, 붓을 다시 잡아야 할지 매일 고민했다. 그 와중에 건강 문제, 거주지 문제, 사무실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사태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초고가 나왔다. 처음엔 기획자, 제작자의 입장으로 검토하다가 결국엔 독자가 되어 그저 읽어 내렸다. 특히 암탉에게 푹 빠져들었다(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 ‘일 가정 일 암탉’ 법 제정에 찬성한다. 가장 와닿은 점은 암탉이 무정란, 유정란을 구분하지 않고 품는다는 사실이었다. 결과를 보장받으려 들지 않고 그저 품는다. 유정란이라고 다 병아리가 되지 않고, 태어났다고 다 살아남지도 않는다. 닭의 우주에서 죽음은 너무 쉽다. 대신 암탉은 죽음보다 더 많은 알을 매일매일 낳는 것으로 죽음에 지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았다. 눈앞에 놓인 선택지들을 품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어느 것이 유정란이고 무정란일지 미리 알고 싶어 안달했다. 그러면서 시간에 지고 불안에 지고 있었다. 효영이 내 사정을 알고 귀감이 되라며 글을 썼을 리 만무하다. 신이 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개를 보내고,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게 닭을 보낸다면, 이 타이밍의 나에게 닭 원고를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하게 지금의 소임을 계속하는 것이 희망, 그 자체라는 가르침이었을까?
가난한 연인에게, 전쟁 폐허 속 민초들에게, 문학판에 진저리가 난 시인에게, 방황하는 초보 출판인에게 닭이 있었다. 닭은 무엇도 보장할 수 없는 곳에서의 시작,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었다. 맨손으로 흙벽돌을 만들던 농부와, 무정란을 소중히 품던 암탉을 상기하며 나는 효영에게 말했다. “우리 책 삽화는 제가 그릴게요.” 비가 내려 벽돌이 진흙 덩어리가 될지, 사려 깊은 닭치기가 유정란을 구해다 몰래 넣어 줄지는 가봐야 알 일이다.
우리가 푸바오도 고양이도 아닌 ‘닭’을 데려온 사연은 여기까지다. 아무쪼록 효영의 첫 글, 좋은여름의 첫 기획작을 즐기시길 바란다. 유정란인지 무정란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우리의 우주에서.
2024년
기획자 하정 씀
★ 저자의 말
금요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상을 치우면 ‘그’의 주말 의례가 시작된다. 먼저 나무 조리대에 덧가루를 흩뿌리고, 냉장고에서 발효종을 꺼내 그 위에 조심스레 올린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더해 발효종과 잘 섞이도록 반죽한다. 반죽을 통에 넣어 그대로 두었다가 30분 후 꺼내어 다섯 번 접는다. 다시 30분 쉬기 – 접어주기를 서너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판이하다. 발효기와 이스트 같은 촉진제 없이 자연 발효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저녁에 시작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너끈히 빵을 구울 수 있지만, 한겨울엔 목요일 오후에는 시작해야 토요일 아침에 빵을 먹을 수 있다. 시간만 간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이스트 역할을 하는 천연 발효종은 냉장고에 두고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워야 한다. 온도나 습도가 어긋났다가는 과하게 발효돼 시큼해지거나, 발효가 덜 되어 제 역할을 못한다. 그러니 그의 주말 의례는 주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끈질기게 신경쓰고 지켜봐야 한다.
이 지난한 과정을 군말 없이, 아니 기쁘게 하는 사람이 내 남편 ‘필’이다. 필은 바지런히 몸을 움직여 직접 만들고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홈베이킹뿐이랴, 가구도 만들고, 술도 담그고, 집도 짓는다. 필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조직이라는 수레바퀴를 굴리는 수많은 톱니 중 하나로서 매일을 성실하게 반복했다. 그랬던 그가 달라진 것은 우리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부터다.
우리는 경기도 신도시에 살다가 10년 전 제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첫 집은 임대한 단독주택이었다. 아파트에서는 꿈도 못 꾼 ‘실외 공간’이 주어진 것이다. 이럴 때 보통은 대파나 바질처럼 재배하기 쉬운 채소로 텃밭을 시작하기 마련 아닌가? 필은 달랐다. 그가 사온 것은 싱그러운 대파 대신 미끄덩한 지렁이 한 상자였다. 음식물 처리를 맡기고 싶다면서. 일 년 반 뒤에는 넓은 마당과 텃밭이 있는 시골집을 빌렸는데, 때마침 육아휴직에 돌입한 필은 생산력, 창조성을 폭발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쓸 책상과 의자를 직접 짜고 내 손에 꼭 맞춤한 나무 코바늘을 깎아 주었다. 지렁이에 순서를 빼앗겼지만 텃밭을 가꾸어 각종 채소를 공급했다. 이어서 천연 발효빵을 굽고, 누룩을 빚어 이화곡주를 담그고, 맥주를 만들고,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갔다. 필 덕분에 제주 생활을 계획하며 꿈꾸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전원생활이 현실로 펼쳐졌다.
평화… 풍요… 필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메주까지만 쑤었다면 나는 이 책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제주도, 마당 있는 집, 다정한 남편, 건강한 아이들, 자급자족 생활은 부러움이나 동경의 대상일 뿐이니까. 이 책의 기획자가 말했다. “부러움은 인스타그램에서 느낍시다. 책은 글쓴이가 고난에 빠져야 나오는 거예요. 독자는 글쓴이의 위기를 원한다고요.”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필은 내 입에서 “뭐라고?” 소리가 나오는 것들을 기르고 싶어 했다. 상추를 ‘기르고’, 발효종을 ‘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름들을 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벌? 필은 “벌을 치고 싶다”고 했다. 야산 깊숙이도 아니고 집 마당에서. 우리 둘만 사는 집이라면 모를까, 애가 자라는 집 마당에서 벌이라뇨? 대번 반대했지만 직접 딴 꿀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나는 옆눈으로 흘겨보면서도 입은 슬금슬금 웃는, 괴상야릇한 표정으로 양봉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필은 양봉에 진심이었다. 꿀을 따겠다기보다 화학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벌을 키울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일종의 실험에 가까웠다. 화학 물질인 파라핀으로 만든 관행 벌통이 아니라 천연 밀랍을 이용한 벌통을 직접 만들고, 벌에게 치명적인 진드기인 응애를 퇴치하는 방법도 고안했다. 여러 모로 공부하고 정성을 쏟은 덕에 ‘자연을 위해 벌을 키우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까지 이르렀다.
이후 필은 개미, 도마뱀, 각종 바다 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을 키웠다. 가능하면 ‘알’ 단계에서 시작했고 도구도 기성품을 사는 법이 없었다. 처음부터 오롯이 자기 손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르기를 좋아했다.
“아유, 남편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필은 모든 일을 알아서, 사고 없이 해냈다. 도와달라거나, 저질러 놓고 뒤처리를 맡기지 않는다. 따라서 옆 사람이 골치 아플 일도 없었다. 그저 “이번엔 뭘 만드시나~” 하고 팝콘을 옆구리에 끼고 지켜보다가 떨어지는 꿀이나 얻어 먹으면 그뿐!
딱 그럴 때쯤 사건이 일어난다. 벌이 분봉˚하는 시기를 미리 알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바람에 겪었던 사소한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비하면) 일이랄까. 창 밖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슬쩍 내다봤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컴컴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창에 바싹 붙었다. 가로세로 5m쯤 되는 텃밭 하늘을 벌 떼가 까맣게 뒤덮었다. 철새 도래지에서 수천 마리의 철새 떼가 펼치는 공중 군무를 본 적 있는가? 정말 장관이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와아~~~”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런데 벌의 군무는, 그냥 온몸을 굳힌다. “악!” 소리가 절로 난다. 그 침착한 필이 우왕좌왕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소한 사건 하나 더. 겨울에 숲길을 산책하다 보면 마른 나뭇가지에 거품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는 사마귀 알집을 왕왕 만난다. 예상했겠지만 필은 사마귀를 키워 보겠다며 가지째 꺾어 와서는 유리 어항에 넣어 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두었다. 새끼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입구는 종이로 막았다. 겨울이 한 발 물러났지만 바닷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씨였고, 사마귀는 완연한 봄이 되어야 부화할 터. 그러나 볕이 잘 드는 실내 어항 속 사마귀 알들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판단했고, 어항 입구를 막은 종이는 끝없이 밀려 나오는 사마귀 새끼들의 독립 의지를 막지 못했다. 어린 생명체란 대체로 예쁘다. 하지만 사마귀 새끼는…. 갓 부화한 그것은 투명에 가까운 연두색으로 1cm가 채 못 된다. 그런데 생김새는 성체와 똑같다. 게다가 수천 마리. 초미니 투명 사마귀가 거실 벽과 천장을 다글다글 기어다닌다고 상상해보시라. 어린 생명에게 이런 표현을 다는 게 미안하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징그러움’이 몰려온다. 투명 사마귀 떼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인도주의 아니 충도주의蟲道主義에 다소 반하므로 말을 줄이겠다.
필의 다채로운 사육 종목 중 그를 가장 만족시킨 것은 양계, 즉 ‘닭’이었다. 양계란, 올림픽으로 치자면 철인 3종 경기처럼 모든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었다. 알부터 시작하고, 부화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 수 있으며, 인간과 정서적 소통도 가능하고, 심지어 먹거리가 된다.
필이 양계를 시작한 계기는 이렇다. 세를 얻어 들어온 시골집에 닭장이 있었다. 끝! ‘닭장이 있었다’가 ‘필’을 거치면 ‘닭을 친다’는 결과가 나오는 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 책이 펼쳐지고 있음을 일러둔다. 집을 보러 왔다가 빈 닭장을 발견했을 때, 필의 머릿속에 펼쳐졌을 불꽃놀이를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나무가 크면 그림자도 길다는 것. 양봉이 꿀 몇 병과 곤란한 상황 한두 번을 가져다 주었다면, 양계는 매일 아침 암탉들이 낳는 달걀 수보다 많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전능과 무력, 당연과 모순의 순간들을 데려왔다. 필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양계라는 세계에 우연히 발 하나 들여놓은 것뿐인데, 이후 우리 가족에게 밀려온 복잡미묘한 감정과 화두를 풀어놓으려 한다. 필의 ‘실험과 생명의 농장’ 구성원 중 왜 닭이냐 물으신다면, 닭의 온 생애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닭이란 후라이드치킨 아니면 냄새나고 아둔한 존재, 또는 징그럽거나 무서운 동물일 것이다. ‘닭’과 ‘아름답다’의 매칭은 낯설지만, 닭을 알고 나면 당신도 말할지 모른다. “닭의 온 생애가 아름답다”라고.
이 책은 양계기를 빙자한 관찰기다. 각자의 취미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나의 반려남자, 제주에서 태어난 두 아이, 후라이가 될 팔자를 고치고 병아리로 거듭난 수퍼마켓 유정란, 천수를 누리며 늙어가는 암탉, 알아듣거나 말거나 제주어를 흩뿌리며 지나가는 이웃들, 그리고 내 편인 듯 찬란한 순간들을 쏟아내다가도 일순 가혹하게 돌아서는 제주 자연까지. 우리 집 닭장을 둘러싼 존재와 풍경의 관찰기를 내놓으니 포근한 봄날, 암탉 품 속의 병아리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즐겨주시길.
2024년
양계인 효영 씀
★ 책 속으로
양봉이 꿀 몇 병과 곤란한 상황 한두 번을 가져다 주었다면, 양계는 매일 아침 암탉들이 낳는 달걀 수보다 많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전능과 무력, 당연과 모순의 순간들을 데려왔다. 필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17페이지)
수탉 듀오의 깃털은 힘찬 터치의 수묵화처럼 장쾌했다. 몸통에서 꽁지털까지 진갈색에서 검정으로 바뀌는 신비한 그라데이션이 펼쳐졌다. 새까만 눈동자는 결연하고, 볏은 마침내 수평선을 박차고 떠오른 태양처럼 당차게 하늘을 향했다. 수탉이 이토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니, 나는 속절없이 홀리고 말았다. (33페이지)
필은 무심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는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전이하거나 확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대신하고 어떤 무리를 대표해 지옥을 다녀올 뿐이다. 후딱, 혼자서. (37페이지)
닭 가족은 안전하고 익숙한 것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풍족한 닭장을 벗어나, 마당 밖으로 나가, 까만 돌담 위를 한 줄로 조로록 달려, 난생 처음 보는 황금빛 귤밭으로 러시해, 수많은 귤나무 중 하나를 골라 새 집으로 삼았다. 녀석들의 짧았던 모험이 한 편의 서부 개척시대 영화처럼 그려졌다. 세간살이를 마차 하나에 욱여넣고 새 땅과 황금을 찾아 질주하는 한 가족. 고난과 위험을, 애써 당도한 곳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막함을 짓누르고 뜻을 모아 달리는 가족, 멋있다! (50페이지)
병아리가 떠날 때는 사람도 집도 무거워진다. 작은 것들의 죽음은 큰 슬픔과 죄책감을 남긴다. 어떤 밤에는 병아리 영혼이 유령이 되어 나타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어미 품에서 튀어나오듯 어딘가에서 퐁퐁퐁퐁 셀 수 없이 튀어나온 노란 병아리 유령이 어둑한 거실을 환하게 채운다. 유령이라고 해도 조금도 무섭지 않을, 그 보드랍고 무해한 것들의 영혼이 말이다.
(72페이지)
달걀은 많기도 적기도 하다. 암탉이 주는 대로 감사히 여기며 오늘의 쿠키를 만들면 된다. “쿠키 구울까?” 하고는 아이 손을 잡고 닭장으로 가는 설렘이야말로 베이킹의 필수 재료다. (80페이지)
김수영은 ‘되잖은 원고 벌이’를 하며 살 바에야 차라리 닭을 키우기로 한다. 걸핏하면 전염병이 돌아 떼죽음이요, 어렵게 구한 사료는 도둑맞아, 되는 일이 없다. 돈 벌려고 시작한 양계지만 수지는 한번도 맞지를 않고, “사람은 굶어도 닭은 굶길 수 없다”며 결국 돈을 융통하러 나선다. 양계를 ‘저주받은 사람의 직업’이라 토로하던 시인은, 노오란 병아리들의 평화로운 한때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다가 주억거린다. “병아리는 희망이다.” (85페이지)
우리는 닭을 기르기 전이나 지금이나 고기를, 닭을 먹는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 닭들이 생을 마감한다면, 녀석들의 남겨진 몸이 우리에게 영양분이 되는 것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황선미 작가의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 2002)의 막바지, 소임을 다한 늙은 암탉은 어미 족제비에게 목을 내어 준다. 내 몸으로 아기 족제비들을 먹여 살리라며. 존재와 존재는 보통 서로의 기억에 남지만, 그렇게 서로의 몸에도 영원히 이식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126페이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에서 이사갈 집에 당도하지 못하고 엄마 아빠와도 생이별한 ‘치히로’는, 마녀가 운영하는 온천장에서 생명을 부지하는 대신 이름을 빼앗긴다. 이름을 되찾자 엄마 아빠에게 걸렸던 마법도 풀리고 비로소 집에 갈 수 있게 된다. 우리도 드디어 우리 집을 가졌을 때, 귀한 알을 낳아주고, 각종 코믹 슬랩스틱으로 웃음을 주는 소중한 닭들에게 이름을 주기로 한 것이다. (132페이지)
해변 산책에 구레를 데려간 적이 있다. 서귀포 사계해변, 한쪽 발목에 끈을 맨 채 모래 사장에 발을 디딘 구레.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밀려드는 파도 앞에 멈추어 서더니, 짙푸른 바다와 회색 하늘이 맞닿아 만든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빨간 볏은 거센 바닷바람에도 바다를 가르듯 곧게 섰고, 뺨의 솜털은 포슬포슬 흩날렸다. (162페이지)
암탉은 무정란, 유정란을 구분하지 않고 품는다. 결과를 보장받으려 들지 않고 그저 품는다. 유정란이라고 다 병아리가 되지 않고, 태어났다고 다 살아남지도 않는다. 닭의 우주에서 죽음은 너무 쉽다. 대신 암탉은 죽음보다 더 많은 알을 매일매일 낳는 것으로 죽음에 지지 않는다. (193페이지)
가난한 연인에게, 전쟁 폐허 속 민초들에게, 문학판에 진저리가 난 시인에게, 방황하는 초보 출판인에게 닭이 있었다. 닭은 무엇도 보장할 수 없는 곳에서의 시작,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었다. (194페이지)
목차
들어가는 글 _양계 변명—나는 왜 닭 책을 쓰는가
1부. 봄날의 닭을 좋아하세요?
__야! 닭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하라
__양계 입문자를 위한 강령
__닭 인생은 닭의 것
__수탉의 기원 Origin of rooster
__병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__순환의 동그라미
__암탉은 건드리지 마라
2부. 사려 깊은 닭치기
__폭풍 속으로
__크리스마스엔 닭을 선물하세요
__뒷걸음질 치지 않고
__기른 닭을 먹습니까?
__닭이 이름을 가지려면
__암탉천하
__장래희망은, 귀여운 할머니 닭
__닭의 우주에 어서 웰컴
__가계도—집과 닭의 생애
__양계 가족의 핸드폰 안에는
나가는 글 _기획 변명—나는 왜 닭 책을 만들었나 / 기획자 하정
저자 효영
제주 서귀포 서남쪽 시골 마을에서 암탉 여덟, 강아지 하나, 어린이 둘, 반려남자와 산다. 매일 아침 강아지와 동네를 달리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달걀을 꺼낸다. 하나씩 천천히, 또박또박, 매일의 삶을 정성껏, 따뜻하게 살고 싶다. 달걀 후라이는 써니 사이드 업. 무조건 반숙!
instagram _ @hyoyoung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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